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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가 코소보와 세르비아 간 갈등에 개입할 준비를 하다

2017년, 코소보에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는 나토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 (왼쪽) ⓒ출처 NATO

코소보와 세르비아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토군이 “개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코소보 경찰은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경찰을 향해 발포하자 국경 검문소 두 곳을 폐쇄했다.

동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일부 국가에게만 독립국으로 인정받는 코소보의 정부는 항의에 밀려 일단 한 발 물러섰다. 코소보 정부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세르비아가 아니라 코소보에서 발급한 차량 번호판을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이런 조처가 자신들에게 알바니아계가 다수인 코소보 국가를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이번 소요는 여러 발칸 반도 국가들과 코소보의 파란만장한 역사에서 비롯한 것이다.

코소보는 한때 세르비아의 자치구였고, 당시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일부였다. 그 전에 제2차세계대전 동안 코소보는 대부분 알바니아의 일부였다.

민족간·종교간 긴장은 계속 높았고, 대다수가 무슬림인 코소보인들은 국가의 탄압을 받았다. 1980년대 초 정부는 알바니아계 학생들이 조직한 자치권 요구 시위를 진압했다.

코소보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휘말려 들었다. 당시 서방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 행세를 했다. 1989년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코소보의 특별 자치 지위를 축소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탄압했다. 나토는 이를 빌미 삼아 세르비아를 78일 동안 무자비하게 폭격했다.

밀로셰비치가 보기에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유고슬라비아 전역의 노동자들이 긴축에 맞서 자신들의 통치자·사용자에 맞서 싸우려는 상황을 타개하는 데 유용했다. 그가 부추긴 세르비아 민족주의는 이전의 “공산주의” 공식 이데올로기의 대체물 구실을 했다.

그러자 훗날 크로아티아의 대통령이 되는 프라뇨 투지만과 같은 다른 집단의 지도자들도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투지만은 독일의 부추김 속에서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다.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무슬림으로 나뉘어 있던 유고슬라비아의 보스니아 공화국에서 이런 민족주의의 동학으로 인해 끔찍한 내전이 일어났다. 1992년~1995년에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적어도 200만 명이 이재민이 됐다. 결국 세르비아는 패배했고 코소보는 유엔의 보호국이 됐다.

이 사건은 러시아 지배계급이 서방의 동진(東進) 의지를 확신하게 된 핵심 계기 중 하나였다. 또, 러시아 지배계급은 서방이 자신의 적국들을 상대로 “정권 교체”를 꾀하려 한다고도 확신하게 됐다.

코소보는 2008년에 독립을 선언했으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서구 열강의 속국이 되었다.

러시아·중국·유럽연합·미국 같은 제국주의 열강은 끊임없이 세르비아-코소보 분쟁을 이용하려 했다. 이들은 옛 유고슬라비아 소속 국가들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기를 바란다.

올해 5월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는 “발칸반도 서부 국가들이 모두”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세르비아와의 긴장을 해소하라고 코소보에 촉구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책략의 하나였다.

현재 코소보에는 나토군 약 4000명이 있다. 이들은 지금은 소규모인 분쟁을 전면전으로 확대시킬 능력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나토의 확전은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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