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8월 4일 노동자연대TV 온라인 토론회 발제 내용을 평어체로 바꾼 것이다.


2019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살인 혐의를 받는 탈북어민 2명을 강제 북송한 사건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싼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비롯한 여러 정치 세력들의 입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탈북어민 강제북송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살펴보겠다.

우파의 위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탈북어민 강제북송 문제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우파가 강제북송을 “반인륜적 범죄”라고 비난하며 탈북민들을 위하는 양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우파 정부들은 탈북민을 정치 상황에 따라 이용하며 냉혹하게 다뤄 왔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 등 제3국을 떠도는 탈북민 8만여 명을 국내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3국에 수용소를 지어 수용하려 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탈북민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조작했고, 그 여동생은 허위 자백을 강요한 뒤 추방했다. 윤석열은 바로 이 조작의 실질적 책임자인 이시원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일부는 강제북송이 국제법상 난민의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월 인천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한 미얀마인들의 입국을 거부해 강제송환 위험에 내몰았다. 이들은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정적 공격용으로나 들먹이는 것이다.

우파는 대부분 탈북민의 인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지율 하락에 대응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려고 탈북어민 강제북송 쟁점을 이용할 뿐이다.

민주당의 위험천만한 사법 민주주의 부정

그러나 우파의 공격이 위선적이라고 해서 문재인 정부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탈북어민들을 강제 북송한 것은 잔혹한 짓이다.

북송은 당사자들의 의사를 거슬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탈북어민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점은 여야 모두 인정하는 팩트다. 얼마 전 통일부가 공개한 북송 영상을 보면, 포승줄에 묶여 눈이 가려진 채 호송되던 탈북어민 한 명이 판문점 분계선 앞에서야 북송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저앉아 저항한다.

친민주당 인사 일부는 북송이 당사자 의사를 거스른 것이었다는 점마저 흐리려 한다. 그러나 사건 직후인 2019년 11월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서 당시 통일부 장관 김연철은 탈북어민들이 자필 진술서로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점, 남한 경비정에 나포된 이후로 일관되게 귀순 의사를 표명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심지어 북송 사실을 당사자들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했다.

강제 북송되는 탈북 어민. 탈북민이 어디에서 살지는 무엇보다 그들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출처 통일부

민주당은 북송을 정당화하려고 탈북어민들이 흉악범이라고 주장한다. 도피 목적의 귀순이므로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고, 살인범을 추방한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탈북민의 ‘순수성’을 의심하며 선별 수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런 의심 때문에, 탈북민은 남한에 오면 국정원 소속 기관인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를 거친다. 이곳에서 탈북민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고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국정원·검찰·경찰 등의 합동 조사를 받는다.

이 기관의 원래 이름은 중앙합동신문센터였는데, 인권 침해 사건들이 폭로돼 악명이 높아지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실상은 변하지 않았다.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가 바로 이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반년이나 구금돼 협박과 가혹 행위를 당했었다.

탈북민은 이 기관을 나온 뒤에도 바로 그 ‘진정성’ 의심 때문에 무려 5년간 ‘보호담당관’이라는 이름의 경찰에게 감시당한다. 이는 탈북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다.

둘째, 탈북어민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혐의일 뿐이다. 자백만으로, 또는 재판을 하지 않고도 정부가 범죄 사실을 확정하는 것은 민주적 권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탈북어민들이 무죄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들이 범죄 사실을 자백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상 다른 증거는 없다. 탈북어민들을 살인범이라고 단정하는 건 다른 증거 없이 자백만으로 범죄 사실을 확정할 수 있다는 위험한 논리다. 그렇게 되면 수사기관들의 자백 강요 같은 인권 침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에서도 자백만으로는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는 것이다.

탈북어민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은 전혀 없었다. 범행이 이뤄졌다는 선박은 남한이 나포해 확보한 상태였지만 이에 대한 조사도 없었고, 북한에 수사 협조 요청을 하지도 않았다.

탈북어민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진술을 한 적도 없고, 독립된 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적도 없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도 못했다. 오직 외부와 격리된 곳에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국가기관들의 조사를 받았을 뿐이다.

민주당은 범행이 북한에서 벌어져 증거나 증인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재판을 하면 무죄가 나왔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재판을 하지 않고 정부가 범죄 사실을 확정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심지어 독재 정권하에서 벌어진 공안 탄압 사건조차 재판을 거쳤는데 말이다.

만약 정부가 일방적으로 범죄 사실을 확정할 수 있다면 정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개인들을 손쉽게 탄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법 민주주의, 즉 민주적 권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 설령 범죄 사실이 있다 해도 자기방어에 불리하지 않은 곳에서 재판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의자는 스스로를 방어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매우 억압적인 북한에서는 이런 권리를 보장받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다. 탈북어민들은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귀순을 신청한 것일 수 있다. 고문방지협약 등 국제법은 고문받을 위험이 있는 곳으로 개인을 송환 또는 인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 연쇄살인범이라 해도 사법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예외론을 용인하게 되면 민주적 권리를 일관되게 방어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힘 없고 돈 없는 보통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겪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예외론의 문제점은 국가보안법이 잘 보여 준다.

민주당은 강제북송을 하지 않았다면 흉악범이 무죄로 풀려나 거리를 활보했을 거라며 범죄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 그러나 범죄자는 교화될 가능성이 없고 사회로 나오면 해를 끼칠 것이라는 주장은 범죄의 사회적 원인을 감추는 보수적 편견을 키울 뿐이다.

탈북민·난민 선별 논리

탈북어민 강제북송을 정당화하는 민주당의 주장은 탈북민을 포함한 난민에 대한 편견을 이용한 것이라는 측면에서도 고약하다.

난민 중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은 각국 정부가 난민을 배척하는 핵심 논리의 하나로 이용해 왔다. 위험인물을 선별해야 한다며 자의적으로 난민의 입국을 거부하거나 추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난민 신청자들이 별 근거도 없이 감옥 같은 외국인보호소에 갇히거나 공항에 억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외국인 범죄율은 내국인에 비해 더 낮다. 2011~2019년 인구 10만 명당 외국인 범죄율은 내국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난민에 대한 편견과 난민의 취약한 처지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기도 한다. 2015년 11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가 프랑스 파리의 축구 경기장을 공격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는 이 비극을 ‘제2의 국가보안법’으로 불리는 테러방지법 제정의 불쏘시개로 이용했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항공편으로 국내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한 시리아인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시리아 난민들이 테러리스트인 양 인상을 풍기고 테러방지법 제정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주장대로 범죄 혐의만으로 탈북민 추방을 정당화한다면 탈북민과 난민들은 더욱 취약한 처지로 내몰릴 것이다. 또한 국가가 이 취약한 처지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의적으로 이용하기도 더 쉬워질 것이다.

좌파들의 태도

그런데 아쉽게도 주요 좌파 정당들은 탈북어민 강제북송 문제에서 사실상 민주당을 방어하거나 침묵하고 있다. 진영논리와 함께, 남북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이 작용하는 듯하다.

7월 25일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북송어부사건은 당시 국민의힘도 양해했었고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따른 제도의 미비가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진보당은 이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자민통계 언론인 〈민중의소리〉는 7월 7일 사설에서 “정치적 판단의 최고 영역이라고 할 남북관계에서 불거진 문제들을 이용해 전 정부와 야당을 ‘친북세력’쯤으로 몰아가는 건 심각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들의 공통점은 당사자인 탈북 어민의 의사, 그들에게 제기된 살인 혐의의 진실, 북송의 진상, 그리고 피의자 자기방어를 위해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할 민주적 권리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말이다. 과연 제도의 미비와 남북관계에 대한 정치적 판단 때문에 인권과 민주적 권리를 희생시켜도 되는 것일까? 여야가 합의하면 진실이 되는 것일까?

한반도는 제국주의 강대국들로 인해 그 주민들의 의사를 거스른 분단을 겪고 전쟁까지 치렀다. 남북 간의 긴장 고조는 남북 모두에서 인권과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는 빌미가 되기 일쑤였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를 염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며 분단과 남북 갈등의 희생자 중 하나인 탈북민의 인권이 짓밟히는 걸 용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는 것은 평화를 원해서, 그리고 이산가족이나 탈북민 같은 사람들의 처지가 나아지길 원해서일 것이다. 그러니 좌파는 탈북어민 강제북송 같은 문제를 외면하면서, 남북 갈등의 희생자였던 탈북민들이 이번에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도록 방관해선 안 된다.

민주당은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한다면서도 한반도 긴장을 낳는 제국주의에는 결코 저항하지 않는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한미 군사훈련을 지속해 북한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북한 당국은 문재인을 향해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이라고 했고, 결국 몇 달 뒤인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점들에 비춰 봤을 때 민주당 세력에 공조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탈북민의 인권을 외면하는 것은 좌파가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지금 많은 좌파 단체들이 탈북어민 강제북송 같은 중요한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특히 노동계 주요 조직인 민주노총이 침묵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또, 이 사건이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이용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난민·이주민 단체들이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는 것도 아쉽다.

이주의 자유와 국제주의

문재인 정부가 탈북어민들을 강제 북송한 이유가 남북관계를 고려한 것이든, 다른 난민 배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든, 이번 사건은 민주당 세력이 그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탈북민을 희생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를 비난하는 우파도 탈북민을 장기판의 말로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혁명적 좌파는 이를 폭로하며 탈북민을 방어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좌파들의 외면과 침묵은 우파들이 ‘인권 운운하는 좌파의 위선’이라며 파고들어 탈북민을 이용할 기회를 열어 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탈북민 문제가 우파 전유 쟁점처럼 돼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탈북민은 제국주의 열강의 점령, 전쟁, 그 뒤로 이어진 남북 대결, 미국의 대북 압박으로 점철된 한반도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탈북민들은 자유로운 왕래가 가로막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남한에 입국하는 과정에서도 잠재적 간첩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남한 사회로 진입하고 나서도 늘 순수성을 의심받으며 심각한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교류하기 힘들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남북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국경에 별로 제약받지 않는다. 보통의 탈북민들이 목숨 걸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널 때, 김정은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스위스에서 호화로운 유학 생활을 했다.

1989년 1월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이 방북해 북한 정부와 금강산 사업에 합의하고 돌아온 것은 노태우 정부의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황석영 작가, 문익환 목사, 임수경 학생, 문규현 신부의 방북은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지배자들이 신성불가침의 주권으로 여기는 국경 통제는 그들의 권력을 강화할 뿐 보통 사람들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당국의 국경 통제가 아니라 이주의 자유를 지지해야 한다. 탈북민이 남한에서 살지, 북한에 돌아갈지, 혹은 제3국으로 떠날지는 무엇보다 그들 자신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

그래야 탈북민의 고통을 덜 수 있다. 또, 지배자들이 탈북민과 난민 등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것에 맞설 수 있다. 남북 대중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유대를 맺을 수 있어야 장차 남북 노동자들이 단결해 아래로부터 저항에 나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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