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주의경향(IST)의 창립자 이가엘 글룩스타인(유대계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필명은 토니 클리프)의 저작 《소련 국가자본주의》[국역: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 국가자본주의론의 분석》(책갈피)]가 영국에서 재출간된다. 사라 베이츠가 국가자본주의론을 살펴보고, 옛 소련과 동유럽의 스탈린주의 국가체계가 붕괴한 오늘날에도 이 저작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유를 밝힌다.


국가자본주의론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변질되면서 형성된 사회를 규명하려는 시도였다. 그 사회는 진정한 사회주의보다는 서구 자본주의와 더 유사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전통의 창시자 토니 클리프는 1940년대 중반에 국가자본주의론을 발전시켰다. 당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인지 여부를 두고 견해가 첨예하게 나뉘어 있었다.

1940년대 중반에 국가자본주의론을 발전시킨 토니 클리프 ⓒ출처 <소셜리스트 워커>

토니 클리프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을 동원하고 당시 구할 수 있던 자료를 더할 나위 없이 꼼꼼하게 조사해, 소련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은 언제나 소련·동유럽 경제의 동역학을 이해하는 방법 그 이상이었다.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비판을 명료하게 해명하고,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사회주의의 진정한 전통이 부활하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국가자본주의론은 소련, 소련의 위성국들, 중국, 쿠바 등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니었다. 국가자본주의론은 좌파의 다수가 의회와 생산수단 국유화를 통해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서방에서도 의미가 있는 이론이었다.

요컨대, 국가자본주의론은 사회주의를 ‘위로부터’ 구현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경우들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었다.

그런 주장은 오늘날에도 허다하다.

혁명

클리프는 러시아 혁명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분석하는 데서 먼저 출발했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이는 전 세계에 파장을 미쳤다.

역사상 최초로 보통 사람들이 사회의 운영을 맡았다. 자신들의 일터를 접수하고 소비에트(평의회)를 건설해 사회를 어떻게 운영할지 집단적으로 결정했다.

러시아 제국 전체가 혁명가들의 통제 하에 들어왔지만,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당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국제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이전의 러시아 제국이 “소수민족들의 감옥”이었다고 했다. 이전에 제국에 속해 있던 국가들이라도 이제 원한다면 얼마든지 [분리까지 포함해] 독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혁명이 살아남으려면 경제적 선진국들로 확산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내전과 외국의 침공으로 이 신생 국가[혁명 러시아]는 황폐해졌다. 그러자 노동자 권력과 거기서 비롯한 이상은 빛이 바래 버렸다.

가장 헌신적인 노동자의 다수가 제국주의와 반혁명에 맞선 전선에서 목숨을 잃었다. 혁명의 심장이었던 공장들은 전쟁과 기근으로 폐허가 됐다.

한때 치열한 논쟁이 살아 숨쉬던 소비에트는 빈사 상태가 돼 [당과 국가] 관료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관료층이 등장해 노동자 통제를 대체했다. 바로 그 관료층이 이오시프 스탈린 권력의 원천이었다.

1924년 레닌 사망 후, 스탈린과 그 지지자들은 권력을 장악하려고 이전의 혁명 지도자들을 살해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1928년 스탈린은 “5개년 계획”으로 러시아 경제를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5개년 계획”으로 급격한 공업화 과정을 밀어붙여, 러시아가 서방 경제 및 서방의 전쟁 기구들과 경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계획은 러시아 전체 국민 소득의 5분의 1 이상을 빨아들였는데, 이후 계획들에서 이 비율은 더 높아졌다. 스탈린은 이전의 혁명적 국제주의를 폐기하고 이를 “일국사회주의”라는 새 원칙으로 대체했다.

즉, 러시아가 나머지 세계와 유리돼 산업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산업화는 농민들에게서 막대한 잉여를 추출해서만, 그리고 농민들을 토지에서 내몰아 공장으로 몰아넣음으로써만 이룰 수 있었다.

지배계급

스탈린의 관료들은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기능을 했고, 노동자들과 노동자들이 이룬 혁명의 성과 일체를 공격했다.

이런 동역학 속에서는, 민간 엘리트층이 아니라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꼬리를 문다. 국가는 누가 소유하는가? 답은 물론 지배계급이다.

즉, 민간(개인) 자본가들이 아니라 소련 국가가 자본을 축적하고, 세계 시장의 지배를 두고 경쟁한 것이다. 그러나 서방 자본주의와 달리 소련 국가는 국내의 경쟁 없이 그렇게 했다.

서방과의 쟁투가 가장 뚜렷이 나타난 영역은 군비 축적이었다.

서방의 탱크·총기·미사일에 맞대응하기 위해 생산이 막대하게 늘었고, 노동자들은 5개년 계획에서 생산을 2배 혹은 3배 증산하라는 목표를 할당받았다.

1938년이 되면 군수산업이 전체 생산의 약 29퍼센트를 차지했다.

클리프는 이렇게 주장했다. “군수산업은 소련 경제 체제에서 결정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기에 노동시간은 늘었고, 임금은 줄었으며, [노동자들의] 처지는 점점 열악해졌다.

1940년 8월 1일 소련 정부는 농업 노동자들이 수확기 동안 “아침 5시나 6시에 시작해 일몰시까지” 일해야 한다는 명령을 발표했다.

숙청

그러나 장시간 노동보다 훨씬 더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931년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는 거의 200만 명 가까이 수용돼 있었다.

한때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지도자였던 안테 칠리가는 오랜 시간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 칠리가는 숙청이 한창이던 1930년대에 수용소 수용자의 수가 약 1000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했다.

스탈린은 강제 수용소, 빡빡한 배급제, ‘질서’를 지키는 경찰 국가를 동원해 [1917~1923년] 혁명기에 쟁취된 것 일체를 쓸어버렸다.

기근이 기승을 부렸고, 사람들은 비참한 조건 속에서 살아야 했다. 클리프는 이렇게 썼다. “한편에서 부가 축적된다는 것은, 다른 한편에선 빈곤이 축적된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지만, 국가 관료는 호화롭게 살았다.

소련의 소득세율표에 나타난 연소득 범위는 단돈 1800루블에서 자그마치 30만 루블에 이르렀다. “특권층과 천민”이 모두 있는 사회였던 것이다.

클리프는 이렇게 썼다. “정부의 고위 관리나 기업 경영자 또는 성공한 작가 등에게는 모스크바에 저택이, 크림반도에 여름 별장이 있고, 자가용 한두 대 굴리고 하인 몇 명 부리는 일 등등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비상 상황에서 노동자들한테서 최대한의 생산량을 쥐어짜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전시에조차 각 계급의 생활 상태는 극단적으로 달랐다.”

클리프는 소련이 이런 식으로 “관료의 가차없는 지령에 따라 국가의 수중에 집중된 현대 산업 경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클리프는 이렇게 썼다. “소련에서는 시초 축적기의 영국보다 훨씬 더 많은 피가 흘렀다. 스탈린은 영국이 수백 년 걸려서 이룬 것을 수백 일 만에 해치웠다.”

소련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에게서 뽑아낸 막대한 잉여를 산업 확장에 투입함으로써만 이를 이룰 수 있었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개괄한 것과 똑같은 과정이었다.

축적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자본들 간 상품 판매 경쟁 때문에 개별 자본은 “축적을 위한 축적”을 하게 됨을 보여 줬다.

여기에는 이중의 함의가 있다. 이는 심각한 경제 위기의 새 시기를 불러올 것임과 동시에, 지배계급을 타도할 잠재력이 있는 노동계급을 만들어 낸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그 어떤 보안 경찰이나 강제노동수용소도 노동계급을 무기한 억누를 수는 없다.

1968년 억압적인 스탈린주의 체제에 맞서 일어난 체코 프라하의 봄 ⓒ출처 미국 중앙정보국

클리프는 《소련 국가자본주의》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 이론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그것이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 줬다.

클리프는 국가자본주의가 경제 위기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 균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서방 자본주의의 위기들과 근원이 비슷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다른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죄다 무너질 때, 클리프는 놀라지 않았다. 동독을 비롯한 그 나라들에서 노동자들이 정치체제 타도에 결정적 구실을 했음이 명백해졌을 때도 클리프는 놀라지 않았다.

클리프 이론의 생명력 덕에, 그가 창당을 주도한 사회주의노동자당은 ─ 다른 좌파 대부분과 달리 ─ 소련과 동유럽 몰락으로 전혀 사기저하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 이론과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사상[이 옳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여겼다.

스탈린주의 국체들이 거의 다 몰락한 오늘날, 러시아가 혁명적 노동자 국가에서 실패한 국가자본주의로 전락한 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다소 불분명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끔찍한 일들은 아직도 살아남아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재출간에 부치려고 새로 쓴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클리프의 책은 스탈린주의의 참사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 주는 데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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