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 10일 민주노총 차기 지도부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후보 등록이 이제 막 끝났기 때문에 아직 각 후보 진영의 주장과 실천을 비교·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우선 노동운동 위기와 혁신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 선거에서 제기될[또는 제기돼야 하는] 쟁점 중 일부를 다루려 한다.

|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

최근 비정규직 조직화 방안으로 지역 일반노조 건설이나 비정규직 조직화 기금 조성 등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 조직화에는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조 조직화의 증대가 단순히 ‘조직 사업’의 누적된 결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경험은 노조 조직률의 대규모 증가가 대체로 계급 세력 저울과 그에 영향을 미친 주요 투쟁들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에서 노조 조직률이 가장 급격히 증가한 시기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와 1996∼97년 대중파업 때였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일상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세의 초점이 되는 투쟁에서 승리해 계급 세력 저울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지도록 애쓸 필요가 있다.

예컨대 지난해 울산건설플랜트 노조나 현대하이스코 노동자들이 싸울 때 나머지 노동운동이 더 강력한 연대를 건설해 이 투쟁들을 완전한 승리로 이끌었다면 노동운동은 지난해 하반기에 더 유리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러한 승리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를 고무하는 한편 기업주들이 이를 탄압하기를 주저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 점에서 지난해 현대차나 기아차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저지른 배신 행위는 재앙이었다. 지난해 7∼8월 일부 정규직 활동가들이 참가한 비정규직 조직 사업으로 한때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조합원은 3천명으로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그 뒤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정규직 노조 지도부의 배신 이후 비정규직 조합원 수가 절반으로 줄어버렸다. 

비슷한 맥락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부적절한 비정규직 타협안을 제출하고 민주노총의 다수 지도자들이 이를 옹호한 것은 옳지 않다. 조직 노동운동의 주요 단체들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구실을 해서는 안 된다.

현장 투사들은 민주노동당의 수정안 철회를 공식 요구하고 인내심 있게 투쟁을 건설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또, 반전운동 등 정치투쟁이 경제투쟁[과 조직 확대]을 고무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 산별노조 건설

지난 몇 년 동안 산별노조 건설은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가장 광범한 공감을 얻는 대안이었다. ‘민주노총 조직혁신위’는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적 돌파구는 산별노조 운동의 성패에 달려 있다”(〈민주노총 조직혁신안〉, 이하 혁신안)고 말한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을 이토록 강조하는데도 산별노조 운동은 “정체와 답보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혁신안)

부분적으로 이것은 산별노조 건설 과정이 현장조합원들의 주도력과 투쟁에 바탕을 두기보다 조직 형식과 교섭 구조를 둘러싼 논의에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이다. 업종 중심이냐 지역 중심이냐를 둘러싼 논쟁도 형식주의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산별노조라는 조직 형식이 기업과 업종을 뛰어넘는 단결 ―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 을 자동으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별노조의 성공적 건설은 그러한 단결과 연대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 과정은 일상 투쟁에서 노동자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것은 물론 그러한 연대를 회피하거나 배신하는 특정 노조 지도자들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포함해야 한다. 구권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의장은 “계급적 산별노조를 만들자고 하면서 사내하청지회를 … 독자적인 단위로 만드는 것을 당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산별노조 건설 과정이 현장조합원들의 능동성과 전투성을 제약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산별노조 건설 과정은 현장조합원들의 투쟁과 전투성에 의존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예컨대 1934년부터 고양돼 1936년 GM 플린트 공장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파업에서 절정을 이룬 1930년대 미국 CIO(산별노조회의)의 등장 과정이 그랬다. 

1937년 2월 GM 플린트 공장 노동자들이 44일 간의 공장점거 파업 끝에 전미자동차노조(UAW)를 인정하는 내용의 협약을 쟁취한 후 자동차 산업은 물론 모든산업 부문에서 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과 점거파업 물결이 솟구쳤다. 미국 주요 산별노조의 기초가 모두 이 투쟁 물결 속에서 건설됐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산별협약 10장 2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투쟁을 지속한 서울대병원노조를 비난하고 징계한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현장조합원의 투쟁보다 교섭 구조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관료적 보수성의 전형이다. 이러한 관료적 통제 시도는 기업별 노조의 산별노조 가입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 사회적 대타협

1월 19일 열린우리당 대권 주자인 김근태가 민주노총을 방문해 “사회적 대통합을 위한 테이블” 참가를 강조했다. 노무현과 신임 노동부 장관 이상수도 얼마 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러나 ‘사회적 교섭’ 참가의 쓰라린 경험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의 노동운동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 참가는 투쟁의 날을 무디게 만들고 노동자들 사이에 혼란과 분열을 조장해 왔다.

지난 18일 신년 연설에서도 노무현은 “대기업 노조[의] 높은 고용보장”을 지적하며 노동자들의 양보를 거듭 요구했다. 또, 정부와 여당도 비정규직 개악과 노사관계로드맵 처리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대통합을 위한 테이블”이든 노사정위든 투쟁의 초점을 흐리고 분란을 조장할 소지가 있는 기구에 참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는 26일에 출범하는 ‘국민통합연석회의’에 대해서도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 노조 임원 직선제

지난 10일 ‘비정규직철폐현장투쟁단’ 주최로 〈민주노총 혁신, 어떻게 할까〉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가한 대다수 활동가들이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를 혁신의 주요 과제로 제기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원칙적으로 노조 상근간부들이 모두 현장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되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직선제 요구를 지지한다.

다만, 직선제가 노조 간부들에 대한 통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지난해 현대차 정규직노조 지도부는 ‘좌파’로 알려진 ‘민투위’ 출신이었지만 결국 비정규직 투쟁을 배신했다. 사실, 직선제가 된다고 해서 꼭 더 좌파적인 지도부가 선출되리라는 법도 없다.

무엇보다 제 아무리 전투적이고 좌파적인 노조 상근간부라 하더라도 현장조합원 대중의 행동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노조 상근간부들이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싸울 때는 그들을 지지하며 함께 투쟁하고, 그들이 투쟁을 배신할 때는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현장조합원 운동과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노동조합 민주주의 실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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