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가 작성된 직후인 10월 20일에 리즈 트러스가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시장이 거부한 자유시장주의자” 44일만에 사임한 트러스 총리 ⓒ출처 Number 10(플리커)

현재 영국 보수당 정부의 위기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상태를 잘 보여 준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크리시나 구하는 이렇게 지적했다. “금융 시장이 자체의 중앙은행이 있는 선진국 정부를 굴복시켜 핵심 재정 정책 목표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몇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두 가지 커다란 추세에서 비롯한 일이다. 첫째,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국 자본주의 정당인 보수당의 쇠락이다.

보수당이 2017년과 2019년 총선에서 승리했는데도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기이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보수당은 1980년대~1990년대 초에 누리던 수준의 득표율과 득표수를 회복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보수당은 심각하게 분열했고 전통적인 기업 기반으로부터 갈수록 이반했다. 당내 우파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2016년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서 뜻하던 바를 이뤘다. 보수당·자유당 연립 정부가 추진한 긴축 정책에 크게 힘입은 결과다.

다른 나라의 중도우파 정당들도 지난 15년 동안 혹독한 경제 불안정과 이글거리는 대중의 불만 속에서 쇠락해 왔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 따른 정치적 혼란 끝에 보리스 존슨이 총리직을 거머쥐었다. 존슨은 강경 브렉시트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해 2019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순전한 기회주의자인 존슨은 이후 국가를 이용해 경기를 부양했다.

그러나 존슨의 직무유기와 부패로 그 정부는 처음에는 마비됐고, 그 뒤 무너졌다. 브렉시트를 두고 당내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난 시점에서 벌어진 존슨의 몰락은 보수당을 산산조각 냈고, 보수당은 주로 상대에 대한 증오로 뭉쳐 있는 파벌들로 전락했다.

덕분에[방휼지쟁 속 어부지리로 — 옮긴이] 리즈 트러스와 쿼지 콰텡이 이끄는 조그마한 초(超)대처주의 그룹이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패거리는 두 번째 커다란 추세에 부딪혔다. 그것은 값싼 자금의 시대가 적어도 당분간은 끝났다는 것이다.

2007~2009년 세계 금융 위기 이래로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극도로 낮게 유지하고 찍어 낸 돈을 경제 시스템에 풀어서 자본주의가 다시 위기에 빠지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2020년에 시작된 급격한 물가 상승을 잡으려는 움직임에 앞장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계속해서 큰 폭으로 금리를 올렸고 이는 다른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면서 금융 시장과 경제 정책 결정 과정이 불안정해졌다.

보수당 정부의 전임 총리인 데이비드 캐머런과 보리스 존슨은 영국 중앙은행을 안전장치로 삼고 거기에 의존할 수 있었다. 재앙을 피하는 데 필요한 값싼 자금을 중앙은행이 제공해 줄 것이라고 믿고서 말이다.

그러나 트러스와 콰텡은 자신들이 현 중앙은행 총재인 앤드루 베일리에게 의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베일리의 우선순위는 다른 중앙은행장들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해결사라는 신임을 유지하고 금리를 계속 높이는 것이었다.

콰텡의 재앙적인 [대규모 감세 정책 등] “재정 이벤트”는 정부가 바로 그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했다.

콰텡은 정부 부채를 늘려서, 줄어든 세금을 메우려 했다. 하지만 금리가 올라 추가 부채의 비용은 훨씬 비싸졌다.

그에 따른 패닉이 영국의 여러 연금 펀드를 위협하자 베일리는 영국 국채를 사들이는 개입으로 연금 펀드를 구제했다.

그러나 베일리는 지난주 금요일(10월 14일)까지만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많은 논평가들은 이를 콰텡을 궁지로 몰기 위한 책략으로 풀이했다.

이제 콰텡은 사임했고, 트러스는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이 글은 트러스가 총리직을 사임하기 전에 쓰여졌다. — 옮긴이] 그러나 보수당에 재출발의 희망은 없다. 지난 몇 주 동안의 소동은 영국 자본주의의 장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특히, 막대한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려면 해외 차입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드러났다.

새 재무장관 제러미 헌트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트러스가 헌트를 자를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트러스가 보리스 존슨의 숙정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유럽연합 잔류파의 한 명인 헌트를 재무장관으로 지명해야만 했다는 사실은 트러스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한 전직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헌트는 정부의 최고경영자 구실을 할 것이다. 총리의 구실은 이사회 의장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이번 월요일(10월 17일)에 헌트가 발표한 긴급 패키지는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감세를 철회하고 긴축을 시행해서 700억 파운드 규모의 정부 재정 공백을 메우겠다는 내용이었다.

한편, 주택담보대출 상환금이 올라 영국의 180만 가구는 소득의 10분의 1을 잃게 될 것이다. 트러스와 콰텡이 보잘것없는 인물로 마땅히 잊혀지더라도 우리는 그들이 저질러 놓은 대처주의 정책의 대가를 오랫동안 치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