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이 추모다 11월 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윤석열 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재혁

이태원 압사 참사의 원인에 정부의 무대책·무대응이 있다는 것이 계속 드러나면서, 정부에 대한 공분이 커지고 있다.

11월 5일 서울시청 건너편 세종대로에서 열린 집회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추운 날씨에 첫 추모 집회임을 감안하면, 매우 많은 숫자다.

애도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로 번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오마이뉴스〉가 유튜브에서 진행한 이 집회 생중계는 15만 명이나 시청했다.

오후 5시에 집회가 시작했는데도 집회 한 시간이 넘어서도 계속 사람들이 집회장으로 들어왔다. 경찰은 집회장과 차로를 분리하는 펜스를 두 차례나 넓혀야 했다. 집회 시작 즈음에는 중장년층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청년들이 늘어났다. 집회가 다소 늘어지게 진행됐는데도 집중도도 높았다.

참가자들 다수가 서울광장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에 들렀다가 집회장으로 향했다. 애도가 정치적 분노로 발전하는 것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집회 주최측이 윤석열 퇴진을 주장하며 정부 책임을 선명하게 제기한 것은 오히려 대중의 분노에 방향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선명하게 묻는 발언, 퇴진 구호에 큰 박수를 보내거나 구호를 따라 외쳤다.

정부 책임 참사에 대한 애도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나?

참사 직후 사고 수습 등을 위해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던 야당들도 며칠 지나지 않아 대통령 사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해임, 국회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 여당은 물론이고 〈조선일보〉 등 우파 언론들까지 야당과 정부 비판적 추모 촛불 집회들을 싸잡아 ‘순수한 애도를 정치에 이용한다’며 비난의 핏대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참사 자체가 정치적인데, 그에 대한 애도가 어떻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윤석열이 이태원 참사에 최대 책임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 참가자가 이날 <노동자 연대>가 반포한 리플릿을 손팻말로 활용하고 있다 ⓒ이재혁

정부가 제공해야 할 안전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은 탓에 서울 도심의 인도에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기는 참극이 벌어졌다. 정부 자신의 강조점(법질서를 앞세운 공안과 범죄[마약]와의 전쟁)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윤석열도 참사를 표현하는 행정부의 용어마저 (정부에 유리하게) 제한함으로써 가장 정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참사 이틀 만에 작성된 경찰청 기밀 민간 사찰 보고서에서는 유가족들이 뭉쳐 정치화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보고가 담겨 있었다. 경찰은 11월 4일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윤석열과 오세훈의 조화를 내팽개친 유족을 끌어냈다.

보통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간단한 교통 통제조차 거부한 정부가 사람들의 애도 표현을 통제하겠다는 것이야말로 극도로 정치적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사악한 정치이다.

이런 일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애도가 분노로 바뀌고 있다고 토로한다. 당연하다. 그런 분위기 탓에 수만 명 규모의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를 주도해 온 촛불승리전환행동 측이 11월 5일 이태원 참사 추모 촛불 집회를 개최한다고 한 것이 주목을 받았다.

진상을 알고 책임자 처벌해야 진정한 애도가 시작된다

집회의 메시지도 모호하지 않고 분명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박주환 신부는 분향소에서 윤석열과 오세훈이 보낸 화환을 내동댕이친 유족을 경찰이 끌어낸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을 끌어낼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시민들은 이들을 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유가족 장훈 씨는 윤석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애도를 강요하는 것을 비판했다.

“유가족에게 애도는 내 가족이 왜 죽었는지 분명히 알고 가해자들 모두 제대로 처벌받고 그 후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내 가족이 왜 이런 참사에 희생됐는가를 알아야 애도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습니다. … 일각에서는 일단 애도부터 하자고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애도는 책임자들이 책임을 지고 처벌받을 사람들이 처벌받은 다음 시작할 수 있습니다.”

11월 5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 가 열리고 있다 ⓒ이재혁

한편, 참사 현장에 있었다는 김운기 씨는 발언에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시민들이 무질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심폐소생술을 하고, 큰 길로 사람들을 옮기고, 차후에 도착한 안전요원들을 돕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스컴에 나온 것처럼 춤을 추는 행위는 있었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이 [시민]의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우려고 했습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국가의 외면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사건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발언이었다.

사과가 아니라 퇴진

안타깝게도 다수 좌파 단체들이 모인 전국민중공동행동과 민주노총 등은 대통령 사과, 국무총리 퇴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를 걸고 이 단체들은 다음주에 별도 추모 촛불 집회를 열려고 한다.

그런데 대중, 특히 청년들의 분노가 이미 정부의 수장인 윤석열에게 향하고 있고,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추모 촛불 집회에 수만 명이 모이고 있음을 봐야 한다.

현 시점에서 대통령 사과 요구는 점차 윤석열로 분노가 향해 운동이 발전해 가는 한 단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의 커져 가는 분노를 제약하고, 초점을 흐리고, 퇴진파를 고립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잘못된 구호임을 뜻한다.

이미 주류 언론들은 윤석열이 “죄송한 마음”이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대통령이 사과했다고 떠들고 있다. 실권도 없는 총리 사퇴(또는 윤석열에 의한 행안부 장관 해임)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윤석열에게 퇴로를 제공하는 타협점을 뜻한다.

11월 5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가 열린 서울 숭례문 인근에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재혁

그 점에서는 주최측 공동대표인 김민웅 목사의 이날 발언이 옳다.

“[사과를 요구할] 때는 지났습니다. 그런 사과는 결코 진심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국민을 또 다시 속이는 기만일 뿐입니다. 지금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한편 당연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책임질 자들에게 자칫 피할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됩니다. 도주로를 열어 주는 것이 됩니다. 대통령이 스쳐 지나가듯 죄송하다고 한 말이 어느새 첫 공식 사과로 변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속이려 듭니다. 우리는 이들의 처벌을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것은 참사의 가장 큰 책임자가 윤석열 자신이라는 것이다.

당일 경찰 지휘부와 일선 경찰 부대들의 초점은 윤석열 퇴진 집회와 양대노총 공공부문 집회 대응,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특히 마약 범죄를 주요 초점으로 삼았다) 수행에 있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과 공공서비스 공격(민영화 등), 범죄와의 전쟁(특히 마약과의 전쟁을 강조) 모두 윤석열이 대선에서 약속해 직접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들이다. 10월 29일 이태원 핼로윈 축제에 대한 정부의 무대응은 바로 윤석열의 강조점이 실행에 옮겨진 것의 결과다.

책임이 이렇게 분명한데도, 윤석열에게 책임을 묻기를 회피한다면, 진정한 애도는 시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11월 5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 가 열리고 있다 ⓒClara Delort
11월 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 집회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승진
11월 5일 오후 서울 시청역 인근 도로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승진
11월 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 촛불 집회’ 가 열리고 있다 ⓒ조승진
11월 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 집회 참가자가 윤석열 퇴진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조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