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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

※ 이태원 참사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전망은 “👉 이태원 참사, 왜 윤석열 책임인가?”를 참조하시오.

11월 5일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집회 ⓒ조승진

〈뉴스토마토〉가 의뢰한 이태원 참사 여론조사에서는 정부 책임론이 73퍼센트를 넘었다. 〈경향신문〉 조사에선 참사를 책임질 주체로 대통령실이 가장 많이 꼽혔다(33.3퍼센트).

실제로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의 직접 지시(공안 대응과 마약 범죄와의 전쟁 강조)와 그의 정책 기조의 우선순위(경제 위기 고통 전가 위해 권위주의적 수단을 강화하기)에 따른 결과다.

따라서 참사에 대한 분노와 항의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윤석열 퇴진 요구다.

윤석열이 참사 일주일 만에 “죄송한 마음” 운운했지만, 정부의 대응 기조는 ‘정부 책임 없다’이다.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꼬리자르기 수사 본격화, 민주당사 압수수색, 국가보안법 탄압, 〈노동자 연대〉 신문 판매 사찰 등이 벌어졌다.

이태원 참사를 부른 정책 기조와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이다.


각료 해임 요구는 윤석열의 책임 전가에 이용된다

윤석열이 참사의 사실상 책임자이다. 따라서 윤석열의 책임은 사과로 그칠 수준이 아니다.

10월 29일 윤석열 퇴진 집회가 끝난 뒤 집회 대응에 전념했던 경찰 지휘부는 일제히 임무 해제 상태로 들어갔다. 이후 작전 태세를 유지한 유일한 경찰 조직은 마약수사팀뿐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것도 용산경찰서가 이태원 거리 축제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이유의 하나다.

그런데도 윤석열 자신은 남 일처럼 경찰·소방 지휘부를 질책하고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역대급 책임 전가를 하는 윤석열에게 각료 해임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윤석열의 책임 전가에 이용된다.

관례를 봐도,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 터졌을 때 내각 일부가 물러나는 것은 대통령 보호를 위해서다. 윤석열도 지금보다 더 불리해지면 사과 요구에 양보하며 일부 각료를 경질할 수 있다.

이런 제스처를 통해 윤석열 반대 운동을 분열시키고 퇴로를 열려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해양경찰 해체를 공표했다. 동시에, 당시 국무총리 정홍원,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 이주영이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그러나 정홍원은 다음 총리를 못 구해 총리직에 복귀했고, 이주영은 8개월 뒤에야 ‘사퇴’했다.)

그러나 내각 일부를 속죄양 삼아 위기를 벗어난 박근혜는 참사의 한 원인인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조처들을 다시 추진했다.

결국 세월호 인양, 박근혜 처벌 등 최소한의 정의라도 구현된 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승리한 덕분이었다.

국정조사 요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민주당과 정의당은 대통령 사과, 책임 각료 경질과 함께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정의당의 요구를 민주당이 수용한 것이다.) 정의당은 현재 국정조사 요구를 다른 무엇보다 앞세우고 있다. 국정조사 요구를 국민의힘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이 국정조사를 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가장 중요한 요구로 제출하는 것은 매우 비효과적이다.

정치적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치고 경찰 수사가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밝힐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다. 재판에 가도 책임자 처벌이 쉽지 않고, 특히 고위 지휘부로 갈수록 더 그렇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강제력 있는 수사가 이럴진대 하물며 국정조사는 그런 권한도 없고 대통령실·국민의힘의 방해를 받고, 그 때문에 계속 타협할 수밖에 없다. 늘 그랬듯, 국정조사는 몇몇 고위관료들 불러다 호통만 치다 끝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대중의 관심사를 말만 일삼는 국회로 옮겨가게 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정한 책임을 실질적으로 물을 가장 중요한 동력인 거리 운동을 부차화할 수 있다.


‘심판’론의 문제점 — 2008년 촛불의 교훈

민주노총 등은 대통령 사과와 총리·장관 사퇴,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전국민중행동 등과 함께 11월 12일(토) 전국노동자대회 직후,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 추모 촛불”을 연다.

시민 추모 촛불 집회는 윤석열 퇴진 집회와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개최된다. 민주노총이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와 사실상 경쟁하는 집회를 개최해, 퇴진 운동과 선을 그은 것이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교육지에서 “10만 조합원 총궐기로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을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정권 심판”은 무의미하거나 기껏해야 선거를 의식한 용어다. 민주노총 등은 사실상 2024년 (4월 10일) 총선까지 (1년 5개월)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을 물러나게 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공을 당할 것이다. 7월 2일 전국노동자대회 ⓒ이미진

2008년 촛불 운동의 기시감이 든다.

2008년 6월 10일 100만 명이 참가해 촛불 운동이 정점에 이르자 많은 참가자들이 이명박 퇴진을 외쳤다. 그러나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 지도부 다수는 이명박 퇴진 요구 제출을 거부했다.

대책회의 지도부 다수는 이제 거리 투쟁을 멈추고 국회(당시 용어로 “제도권”)로 공을 넘기자고 주장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전국 선거가 없는데도 정권 ‘심판’이라는 선거용 구호를 꺼내들었다.

대책회의 지도부는 퇴진 요구 제출 문제를 토론해 보자며 시간을 끌어 대중의 정권 퇴진 열기를 식히고는, 결국 “MB OUT”(이명박 꺼져라) 구호를 “심판”으로 대체했다.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대선에서의 심판을 뜻하는 것이었다.(이 심판론은 그 선거들을 앞두고 민주당-민주노동당의 “전략적 야권연대”로 이어졌다.)

이렇게 (퇴진이 아니라) 심판론으로 투쟁의 열기가 식자, 7월 초에 이명박은 반격에 나섰다.

대책회의 활동가들은 수배를 당했고, MBC PD수첩,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등이 언론 탄압을 받았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국가보안법 탄압을 받았고, 노동자연대는 국가정보원이 사주한 인터넷 댓글 비방 공작에 시달렸다.

지연된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재개하려고 이명박이 권위주의적 수단들로 반격을 가한 것이다.

두 달 뒤인 2008년 9월 세계 금융 공황이 터지자 이명박은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바로 이 맥락 속에서 2009년 1월 용산 참사라는 비극적 살인 진압이 벌어진 것이다.

답답한 상황의 돌파구는 선거가 아니라 2011년 봄 아랍 혁명과 서구에서의 광장 점거 물결 속에서 한국의 거리 운동도 회복되면서 열렸다.

그러나 이런 투쟁의 잠재력이 또다시 대선 심판론에 의해 제약되면서 계급간 세력균형이 대중 운동 쪽으로 유리하게 기울지 않아 2012년 박근혜 집권을 막지 못했다.

이런 돌아보기가 중요한 이유는 윤석열도 이태원 참사 직전, 다가오는 금융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 등 서민층에게 떠넘길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격을 위한 정책 우선순위와 경찰력 배치 우선순위가, 막을 수도 있었을 이태원 참사를 막지 못하게 일조했던 것이다.

지금 윤석열을 물러나게 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공을 당할 것이다.


2019년 조국 수호 촛불과 지금의 퇴진 촛불은 똑같은 게 아니다

노동운동과 대다수 좌파는 빠르게 바뀌는 정치·경제 상황에서 불가피한 격돌을 준비하며 투쟁을 대담하게 전진시키기보다는 망설이고 주저하는 듯하다.

이런 점이 공안세력과 검찰에 포착되지 않을 리 없다. 민주노총이 퇴진 요구와 거리를 두는 촛불 집회를 하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 윤석열 정부는 민주당사 압수수색과 통일운동 활동가들에 대한 체포·압수수색을 했다. 검찰은 택배노조 지도부에 대해서도 2월 투쟁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많은 좌파들이 윤석열 퇴진 촛불 운동을 민주당의 (재집권을 위한) 총선 승리와 이재명 대선자금 수사 저지를 위한 열성 지지자들의 운동 정도로 보는 듯하다.

물론 퇴진 촛불 지도부는 2019년 조국 수호 촛불 지도부와 인물 면에서 겹친다.

그러나 2019년 조국 수호 촛불은 개혁 염원 배신으로 대중이 실망과 환멸을 느끼고 있던 문재인 정부를 방어하는 집회였다.

반면, 지금의 윤석열 퇴진 촛불은 윤석열 정부가 (심각한 정치·경제 위기에 직면해) 우익 본색을 드러내며 제1 야당을 탄압하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이다.

레닌은 올바른 투쟁 계획을 내놓으려면 계급 세력 관계가 계속 바뀌는 것을 그때그때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두 촛불을 같이 볼 수 없다. 거의 같은 인사들이 주도하지만, 성격이 다르다. 2019년에는 진보성이 없었고, 지금은 진보성이 있다. 집회 참가자들도 단순한 맹목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아니다.

좌파가 윤석열 퇴진 운동을 선뜻 지지하지 못하는 것은, 반윤석열 정서와 투쟁의 주도권을 민주당 진보파에게 계속 내주게 될까 봐 두려워서다.

묘하게도, 퇴진 촛불과 선긋기를 하는 좌파들의 다수는 정작 2019년 조국 수호 촛불을 지지했다. 또, 검찰 수사권 박탈이라는 사이비 개혁을 (때로 주저하면서) 지지하기도 했다.

2019년 당시 조국 수호를 지지했던 좌파들은 지지의 대가로 선거법 개혁을 통한 의석 확대를 기대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특히, 올해 대선에서 이재명에게 개혁 염원 대중의 지지를 상당히 빼앗기며 존재감이 더 약화됐다.

아마 이런 경험이 현재 퇴진 촛불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 꽤 작용하는 듯하다.

그러나 돌아보기는 나중에 하고 당장 윤석열에 대한 정면 공격과 효과적인 반격에 나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