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1월 15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우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지금 윤석열은 순방과 야당 공격으로 국면 전환을 노리고, 꼬리 자르기로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뻔뻔스럽게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정부의 권위주의에서 비롯한 비극입니다. 윤석열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 등 서민층에 전가하기 위해 취임 몇 개월도 채 안 돼 통제와 탄압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탄압 자체가 본령인 국가 기관들에 직접 지시를 내렸는데, 특히 공안 대응마약과의 전쟁을 강조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반 년 만에 국가보안법 탄압을 네 차례나 자행했습니다. 집시법 개악, 촉법소년 연령 하향, 온라인 상의 국가보안법이라 불리는 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 등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총기 지급을 늘리도록 지시하고 예산을 배치했습니다.

모두 법·질서를 앞세워 민주적 권리들을 위축시키는 조처들입니다..

이런 우선순위에 따라 경찰 지휘부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10월 29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대규모 대정부 집회들이 끝나자 일제히 임무 해제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경찰청장은 캠핑장에서 놀다가 자고, 서울경찰청장은 집에 가서 잤습니다. 기동대들도 임무 해제됐습니다.

그래서 서울 도심에서 작전 태세를 유지한 경찰 조직은 마약수사팀밖에 없었습니다.

이날은 핼러윈 축제 정점인 날이어서 경찰청은 서울의 각 경찰서 마약수사팀을 주로 이태원에 집중시키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전담팀도 이태원에 왔습니다. 경찰은 마약 시약 6천만 원어치도 들고 출동했습니다. 대대적인 현장 검거를 계획한 정황입니다.

오후 6시 40분부터 112 신고 전화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8시 40분에 마약 수사팀을 현장에 투입합니다.

어쩌면 더 많은 마약 사범 검거를 위해 정복 경찰이 눈에 안 띄는 게 좋다는 계산을 했던 듯도 합니다.

그러나 이날 마약 단속 실적은 제로였습니다. 아마 사람이 너무 많아 형사들도 이동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참사가 시작된 지 30분 뒤에야 비로소 경찰은 임무를 구조 지원으로 변경합니다.

당일 상황을 보면, 경찰이 집회 대응, 마약과의 전쟁, 대통령실 경비를 우선시해 안전 대책은 열외로 취급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윤석열의 우선순위

경찰은 왜 이런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였을까요?

바로 대통령의 공권력 사용 우선순위를 따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은 취임 전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강조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약 범죄를 강조했습니다.

경찰청장 윤희근은 취임 첫 약속으로 사기 범죄와 함께 마약 범죄의 대대적 단속을 ‘국민체감약속 1~2호’라는 이름으로 내놓고 관련 수사 인력과 비중을 크게 늘렸습니다.

검찰은 검찰대로 검찰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마약범죄 수사권을 되찾았습니다.

검찰총장은 공항·항만 등을 담당하는 지방검찰청에 마약수사팀을 만들고 국경 통제를 강조했습니다.

국가정보원도 빠질 수 없죠. 국정원은 대공신고 전화 111로 마약 신고를 받습니다. 국정원은 지난 5년간 약 2조 원어치 마약 범죄를 적발했다며 올봄에 실적 홍보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이게도 참사 전 일주일 동안 윤석열 본인이 마약과의 전쟁을 집중 강조했습니다. 경찰과 내각에 직접 지시했고, 이에 따라 경찰은 1만 4000명을 동원하기로 합니다.

이태원 참사 사흘 전인 10월 26일 정부와 여당은 범정부적 역량을 동원해 1년간 마약특별수사를 벌이기로 결정합니다. 국민의힘은 내년 마약 수사 예산을 늘리겠다고 참사 열흘 뒤인 11월 8일 발표했습니다.

윤석열과 그의 행정부, 집권당의 이런 우선순위에 따라 이태원 핼러윈에 대한 정부 대책도 마약 수사에 강조점이 놓였습니다. 당일 참사 이전 이태원 현장에 있던 경찰은 117명이었고, 그 중 최소 79명이 마약 수사 관련 요원들이었습니다.

총괄 안전 책임을 맡아야 할 서울시와 용산구청은 이런 정부 움직임을 보고 무책임하게 손을 뗀 걸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의 우선순위는 바로 대통령 윤석열의 우선순위였습니다.

제 생각에 좌파 다수가 이태원 참사 후 윤석열 퇴진 투쟁을 기피하는 것은 참사의 진정한 원인을 보지 못하고 지엽말단에 주목한 탓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특히, 윤석열과 참사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지 못하는 듯합니다. 단지 상관관계가 아닙니다. 인과관계입니다.

좌파 다수의 관점은 일부 각료 등 실무자 책임론이나 또는 추상적인 국가책임론, 막연한 시스템개선론 등에 머무는 경향이 있습니다. 윤석열은 간접적 책임만 있는 듯하니 ‘사과’를 하라는 입장입니다.


경찰의 성격과 기능

윤석열의 경찰 정책을 살펴보면,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범죄와의 전쟁, 경찰 통제 강화, 경찰 무장과 권한 강화가 그것입니다.

윤석열은 경찰에서 전임 대통령 문재인이 임명한 인사들부터 솎아냈습니다. 문재인이 임명한 경찰 수뇌부를 모두 날리고, 경찰청장에 정보 경찰 출신 윤희근을, 행안부 경찰국장에 경찰 끄나풀 출신으로 보안경찰 간부가 된 김순호를 임명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후에 정부가 맨 먼저 꼬리 자르기 한 용산서장도 전임 대통령 문재인이 임명한 인물입니다.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한 것은 경찰을 관리·통제하는 통로를 늘린 것입니다.

한편, 윤석열은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는 당근책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통상 벌어진 범죄를 사후에 수사하고 재판에 넘기는 검찰과 달리, 경찰은 방대한 조직을 전국적으로 운영하면서, 치안·정보(사찰)·수사 기능을 모두 담당합니다.

그래서 경찰은 기존 질서 수호를 위해 두드러지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그 기능과 규모와 상명하복 위계가 군대에 비견할 만합니다.

지배계급에 대해 갖는 경찰의 이런 중요성 때문에 행정안전부 소속 일개 기관인데도 올해 경찰청 예산은 12조 3천억 원으로, 여성가족부의 여덟 배가 넘습니다.

이런 특별한 조직이므로 정부는 경찰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려고 하고, 경찰도 거의 언제나 정부 핵심부에 충성합니다.

그래서 경찰은 힘 있는 자들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노동자 등 서민층 사람들은 무시합니다. 이번 112 신고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112센터가 왜 그랬을까? 파출소는 왜 그랬을까? 등 지엽말단에 집착하면 혼란에 빠집니다. 경찰의 본질을 봐야 합니다. 경찰은 상명하복 조직으로 대통령과 정부의 방향성, 강조점, 지시 등이 경찰 배치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용산경찰서에서 이태원 인파 밀집 대책 의견이 묵살된 이유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전의 이태원 축제 관리 경험에서 비롯한 의견이 나왔겠지만, 정부의 우선순위가 바뀐 데다 이제 용산서는 대통령실이 관할지에 있는 경찰서로서 서 전체의 강조점이 대통령실 경비로 바뀌었습니다. 청와대 시절, 종로경찰서가 집회·시위 통제에 이골이 났듯이 말이죠.

그런 곳의 서장은 별 탈만 없다면 승진도 잘 됩니다. 그러니 용산서에서도 경찰 전체의 상명하복 관행 속에서 이태원 인파 밀집 대책이 쉽게 묵살된 거죠.


윤석열이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윤석열은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걸까요?

지배계급이 겪고 있는 경제·안보 등 복합적 위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이 위기가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죠. 특히 물가 급등과 급속한 금리 인상은 모두 노동자 등 서민층 사람들의 생계를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더욱이 금융 위기 가능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 물가가 오른 거라고 거짓말하며 긴축 기조 위에서 금리 인상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순식간에 시장에 자금 경색이 찾아왔습니다.

이 위기는 설상가상으로 세계 경제 위기, 미·중 갈등 격화가 초래한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결되기도 어렵고, 자본가들끼리도 서로 유리한 해법을 두고 쟁투를 벌입니다. 최근 한미 간 전기차 보조금 갈등도 그런 사례죠.

자본가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위기의 고통을 합심해 노동계급에 전가하려고 합니다.

윤석열은 그런 임무를 본격화하려다가 공공요금 인상, 물가 급등 방치, 금리 인상 등만으로도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져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윤석열은 자신의 지지 기반에 충실하려 합니다. 자본가와 국가 관료, 각 기관 운영자 등 말입니다. 자본주의하의 민주주의가 진짜로 민주적이지 않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죠.

대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중의 삶을 공격해야 합니다. 이런 조건하에선 정치의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정치·사회 불안정이 더 커집니다. 이런 상황에선 권력자들이 기존 질서의 유지를 위해 권위주의적 수단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한국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수 정부들이 갈수록 권위주의적이 돼 가는 이런 맥락 속에서 그런 흐름을 정당화하는 핑계 하나가 바로 ‘범죄와의 전쟁’입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시스템 실패’의 원인을 가리고 호도하는 사기극입니다.

보수 정부들은 범죄 위험을 부각해 사람들 사이에서 개방, 연대, 관용보다는 위축, 불신, 무관용이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개인들이 국가에 의존하고, 법·질서를 내세운 공권력, 특히 경찰력 강화가 정당화되며, 기존 시스템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고립·위축시키기 쉽기 때문이죠.

권위주의적 수단들을 사용하는 데에 경찰은 안성맞춤이고, 그런 공작들을 포장해 주는 데는 범죄와의 전쟁이 안성맞춤입니다.


마약과의 전쟁의 본질

마약과의 전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하고자 합니다. 마약 전쟁은 모든 보수 정부가 법질서 수호를 앞세워 권위주의를 강화할 때 아주 유용한 아이템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공포와 혐오를 자아내고 성소수자, 이민자 등 특정 그룹의 소수자들을 표적이나 속죄양 삼기도 딱 좋습니다.

또한 마약 수사는 특성상 도·감청, 끄나풀 활용, 위장 잠입 공작원 침투시키기 등 공안 수사와 똑같은 수사 기법들이 합법적으로 허용됩니다. 물론 함정 수사는 조금 다른 수법입니다.

마약 수사는 경찰, 해경, 검찰, 국가정보원 등은 물론이고 식약처, 관세청, 출입국관리, 외교부, 해당 지역 지방정부 등 다양한 기관들이 범정부적 협력을 해야 합니다.

게다가 마약 수사는 국경 통제를 수반합니다. 수년 전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운다면서 멕시코 정부에 합동 ‘마약과의 전쟁’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마약과의 전쟁은 군사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습니다.

박정희는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마약 범죄를 “국가경제를 좀먹고 국가재건 과정의 장애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내란선동죄 등과 함께 국가혁명방해죄로 규정하고 군을 동원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습니다.

전두환도 이 점에서 박정희와 판박이였습니다. 1980년 5.17 쿠데타 후 마약범죄 등을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었고, 그 일부를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로 보냈습니다.

요즘 50년에 걸친 미국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말이 많습니다. 그 시작은 1971년 공화당 닉슨 정부입니다. 닉슨은 마약단속국 DEA를 신설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흑인 평등권 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멕시코 불법 이주민 등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마약과의 전쟁은 단지 혼자 마약을 했을 뿐인 청년들, 특히 흑인 청년들을 체계적으로 범죄 집단화하고 그 수렁에 가두는 효과를 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을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재소자를 수감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마약과의 전쟁은 제국주의 정책에도 이용됐습니다.

이런 선례들을 봐도, 윤석열의 경찰력 강화와 마약과의 전쟁은 정의나 사회 안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 때문에 마약 사용을 줄이지 못합니다.

마약과의 전쟁은 그저 위기 탈출용, 권위주의적 공격의 정당화용 작전일 뿐입니다.


윤석열 퇴진 투쟁에 동참하자

참사 이후 윤석열은 참사 원인이었던 정부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를 하고 있습니다.

또 뒤에서 민간 사찰 보고서를 만들고, 유언비어 단속한다더니 토끼머리띠, 각시탈 운운하며 유언비어에 맞춰 속죄양 찾기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그 주변 좌파들이 윤석열 퇴진 구호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퇴진 집회와 경쟁하는 집회를 공지한 바로 다음 날 정부는 민주당 공격, 국가보안법 수사, 〈노동자 연대〉 신문 판매 사찰 등을 단행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이태원 참사는 우연이 아니며 윤석열 정부하에서 다양한 형태로 다시 반복될 비극들의 예고편입니다.

이런 정부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혹자는 정권 교체보다 체제 교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추상적으로만 맞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체제 수호자는 누구인가요? 바로 몽둥이를 휘두를 준비 중인 윤석열 정부입니다.

체제를 바꾸려면 정치 권력 문제를 회피할 수 없습니다. 현실 도피, 현실을 바꾸려는 실천에서 도피하면서 말로 좌파연하는 수동적 급진주의는 세계를 조금치도 바꿀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윤석열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면, 또는 윤석열에게 권력의 운전대를 빼앗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위험과 보복, 반격에 직면할 것입니다.

더 많은 산업재해, 공공서비스 후퇴, 복지와 재난 대응 예산 삭감, 임금 억제와 구조조정 등 생존권 위기, 기후 위기 심화, 군국주의 행보로 안보 위기 고조 등 우리의 삶은 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위해 윤석열 정부 퇴진 투쟁에 동참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