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일각에서 윤석열 심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들은 일찍부터 윤석열 퇴진 촛불에 참가해 왔지만, 공식적으로 윤석열 퇴진 요구를 내놓고 있지 않다.

특히 진보당의 경우에는, 윤석열 퇴진 운동이 민주당 좋은 일 시킬 뿐이라고 봐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보당의 전통적인 전략(역사적인 용어로 인민전선)은 국민의힘 같은 우파 정당을 권좌에서 밀어내고 민주당 같은 중도 자유주의 정당과 연립해서 집권하는 상황을 결국 지향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직후 진보당의 한 간부는 이렇게 술회했다. “진보당 후보가 표를 많이 얻으면서도 이재명이 윤석열에게 이기는 결과를 기대했는데 둘 다 이루지 못해 아쉽다.”

사실, 참사 정국에서 진보당의 대정부 요구는 민주당의 요구와 대동소이하다: 대통령 책임, 행안부 장관 파면, 국정조사, 특별조사위 구성, 특검 실시.

11월 17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진보당 ⓒ출처 진보당

진보당이 윤석열 퇴진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운동의 동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 윤석열 퇴진 운동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해서인 듯하다.

진보당은 노동조합 기반이 만만찮은 대중 정당이므로 퇴진 투쟁의 동력을 건설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정당인데도 수동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당은 지지율 위기를 겪고 있는 윤석열을 상대로 계속 투쟁하면서(이를 “광장 정치”라고 부르고 있다) 2024년 총선에서 “심판”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거리 투쟁을 유지하되, 투쟁의 성과는 진보당에 대한 득표로 집약돼야 한다는 전략이다.

‘사업 계획’에서 나타난 진보당의 전망을 요약하면 이렇다: 윤석열이 임기 초반에 역대급 지지율 위기를 겪고 있다. 윤석열의 정치 위기가 지속되도록 일정 수준의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면 (1년 5개월 뒤) 2024년 총선에서 진보당이 선전할 수 있다.

이런 전망의 근저에는 그때까지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발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진화적인 발상으로는 역동적인 정치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총선 때까지 정치 상황이 윤석열에게 불리한 쪽으로만 발전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인기 없는 대통령이긴 하지만 윤석열이 샌드백은 아니다. 운동이 기회를 놓치면 윤석열도 바로 받아치기를 할 수 있다.

예컨대 2008년 촛불 운동이 6월 10일 100만 집회 참가 후 (퇴진이 아니라) 심판론으로 투쟁의 열기가 식자, 7월 초에 이명박은 반격에 나섰다. 그런 여파 속에서 2009년 1월 용산 참사라는 비극적 살인 진압도 벌어졌다.

또한 비록 이런 매우 나쁜 시나리오는 아니더라도 그저 민주당만이 운동의 수혜자가 되고 진보·좌파 세력은 수혜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도 나타날 수 있다.

민중주의 전략

윤석열 심판론은 어떤 당을 통해 윤석열을 심판할 것이냐는 문제를 던진다.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운동이 벌어지지 않고서는 정의당이나 진보당 또는 두 당의 연합만으로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패퇴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진보당은 민주당을 윤석열 심판의 도구라고 실제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윤석열 심판 구호에는 민주당의 존재가 암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촛불 운동에서도 이명박 퇴진 요구 대신에 이명박 심판론이 제출됐다.

그런데 그 ‘심판’은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제휴로 나타났다.

2012년 대선에서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해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투표 직전에 자진 사퇴했다.

진보당이 윤석열 퇴진 촛불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진보당이 민중주의(진보 포퓰리즘) 전략을 폐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진보당이 민주당과 반국힘 동맹 전략을 추진한다는 것과 그 전략이 실제로 가동되느냐는 별개 문제다.

민주당이 지배계급의 부정적 시선을 의식해 진보당과의 제휴를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자신들이 급조한 비례 위성 정당에 진보당이 참가하는 것을 거부했다.

투쟁을 선거에 종속시키기

윤석열 심판론은 선거를 대중투쟁보다 우위에 놓는 것(선거주의)이다. 현재 진보당과 정의당 등 좌파 정당들은(노동당도) 모두 2024년 총선을 향해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자본주의하의 선거에는 막대한 자금과 조직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본가들의 지지를 받는 명시적 자본주의 정당들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정치 과정의 일환이다.

반면, 대중 투쟁이 분출해 새로운 정치 바람이 불지 않는 한 좌파 정당에는 매우 불리한 영역이다.

선거를 당 활동의 중심에 두는 정당들은 소규모일수록 오히려 일찍부터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등장한 투쟁은 자신들이 미리 설계한 선거 마스터플랜과 충돌할 수 있다. 대중 투쟁과 선거의 동학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선거의 경우 후보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유권자든 농촌 연계 소도시에 거주하는 유권자든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므로) 자기 선거구에서 개별 유권자를 만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활동을 수년 동안 해야 한다.

반면, 대중 투쟁은 그 특성상 본질적으로 대도시적 성격을 띠고, (시위든 파업이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참가자들을 집중시켜야 하므로 대개 되도록 대도시의 상징적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도록 계획한다. 크게 일어나면 대중 시위는 수도나 대도시에 대한 상징적 점거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래서 대중 투쟁 방식이 윤석열을 반대하는 데서 비할 데 없이 효과적이다.

반대로, 당면한 투쟁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총선 때까지 유예시키는 ‘심판’론은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 수동적 투쟁 수단이자, 자칫 윤석열에게 반격의 시간을 벌어 주거나 아니면 단지 민주당만이 득을 볼 것이다.

김인식(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