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가 윤석열 퇴진 운동을 깎아내리는 입장을 다시금 밝혔다. 김 대표는 12월 17일 민교협(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 주최 토론회에서 윤석열 퇴진 운동이 “게으른 방식의 운동”이며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 발표가 정의당자신에 대한 〈노동자 연대〉 신문의 비판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도 스스로 밝혔다.

이 발표에서 김 대표가 제기한 핵심 논점은 이렇다: 현재 벌어지는 윤석열 퇴진 운동은 2019년 서초동 조국 수호 촛불의 연장선에서 벌어지는 민주당 지지 세력의 이재명 방탄용 집회일 뿐이다. 따라서 윤석열 퇴진 운동으로는 체제 전환은 물론이고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 김 대표는 본지가 제기한 주요한 문제들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이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윤석열 퇴진 집회가 이재명 방탄을 위한 집회?

윤석열 퇴진 촛불 운동은 현재 윤석열 정부 자체를 반대하는 대중 운동이다.

집권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정권 퇴진 요구가 대중 운동으로 성장한 것은 윤석열이 대중의 삶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물가 폭등으로 생계비 위기가 커지는데도 기업과 부자들에게는 감세 혜택을, 노동계급 등 서민 대중에게는 전기·가스 요금 인상 등 고통을 주고 있다.

게다가 정부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단속하려고 권위주의를 강화했다. 이재명 수사, MBC, 교통방송, YTN 등 비판 언론 억압도 그 일환이다.

한 번이라도 집회에 참가해 본 사람이라면, 이 집회에 윤석열에 대한 다양한 반감이 모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 수사 중단은 종종 핵심 구호이지만, 노동자 투쟁 탄압과 노동개악 반대, 한미일 군사 동맹 강화 반대, 언론 탄압 반대 등도 중요한 요구들이다. 이런 다양한 불만들 때문에 많을 때는 수만 명이 모이는 운동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윤석열 퇴진 운동이 이태원 참사를 이용한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정부의 끔찍함을 비극적으로 드러낸 일이고, 윤석열의 정책 노선이 참사의 원인이었기 때문에, 퇴진 운동이 이태원 참사에 강력 항의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평범한 집회 참가자들이 이 사건을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정부의 책임 회피에 분노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이런 비극이 닥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추모가 정치화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항의는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정한 눈으로 보면, 지난 8월 정부 지지율이 바닥을 기던 상황에서 윤석열 퇴진 운동은 가장 앞서서 대중의 반감을 대변했고, 11월부터는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더 커진 분노를 모아내는 구심점 구실을 했다.

이런 점들에서 김 대표가 이 운동을 2019년 서초동 조국 수호 촛불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도 맞지 않다. 당시와 지금의 운동 지도부의 인적 구성이 비슷하더라도 각각의 운동이 벌어지는 맥락과 성격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2019년 서초동 촛불은 정권 핵심부를 방어하는 데 기여하는 운동이었다면, 2022년 촛불 운동은 정권 핵심부를 공격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 게다가 조국은 위선과 가치관이 문제였지만, 윤석열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안전과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이 운동의 성격이 민주당 지지 세력의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꿋꿋이 강변한다. 진작에 윤석열 퇴진 요구를 거부하고 이 운동에서 분열해 나가 지금은 서초동에서 이재명 수사 반대를 내걸고 집회를 여는 측의 웹자보(“내가 이재명이다”)를 퇴진 집회의 공식 구호인 양 부정확하게 인용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설사 퇴진 촛불 참가자 다수가 민주당이나 이재명 지지자면 또 어떤가? 이 운동이 하는 객관적 효과가 민주당에 대한 수동적 지지를 훨씬 뛰어넘고 있는데 말이다. 김 대표 식의 논리라면, 박정희 유신 정권의 숨통을 조였던 부마 항쟁도 김영삼 방탄용이고, 광주 항쟁도 김대중 방탄용이라고 할 것인가? 가령 부마 항쟁은 첫 시위부터 “김영삼 총재 제명 철회”를 외쳤다. 그리고 광주 시민들은 “김대중 석방하라”를 외쳤다.

그런 식으로 대중 운동의 의미를 재단하고 축소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의 발로일 뿐이다.

게다가 현재 이재명에 대한 수사 압박은 반대하는 것이 옳다. 정부·여당이 확증도 제시하지 않고 야당 대표를 범죄자로 단정하고 사실상 대표직을 사퇴하라고 공격하는 진의는 정권에 대한 광범한 반대를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12월 6일자 촛불행동 논평이 지적하듯이,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는 “국민의 눈을 돌려 윤석열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잠재우고 윤석열을 위협하는 정적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

정의당의 실천

사실 정의당보다 윤석열 퇴진 운동이 민주당에 더 비판적이다. 촛불 집회에서는 민주당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합의 내용을 비판하는 연단 발언이 크게 호응을 얻었다.

민주당의 배신이 영향을 미쳐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된 일도 크게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김 대표는 퇴진 운동을 민주당 2중대로 보고 깔보지만, 정작 민주당과 실질적 보조를 맞추고 있는 정의당 지도부는 비판하지 않는다. 정의당은 이태원 참사와 화물연대 파업 문제 모두에서 민주당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여 왔는데도 말이다.

김 대표는 2019년 가을 정의당에 입당하면서 정의당이 민주당과 확연히 차별화되도록 “왼쪽으로 견인”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그 패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

퇴진 운동이 “체제 전환”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일견 급진적으로 보이는 그의 언사가 진지한 말로 들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저 퇴진 운동과의 거리두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레토릭으로밖에 안 들리는 것이다.

정의당보다 윤석열 퇴진 운동이 민주당에 더 비판적이다 ⓒ이미진

개혁을 이루려면 대중 행동이 관건이다

이런 종합적 맥락에서 노동자연대는 10월 22일 이후 윤석열 퇴진 집회를 지지해 왔고, 특히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는 적극 동참해 왔다.

운동이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하기도 했다. 운동이 좀 더 확장되기 위해 ‘김건희 특검’ 같은 부차적 요구보다는 서민층을 위한 사회·경제적 요구를 더 부각시키자고 말이다. 그리고 화물연대 투쟁 지지 홍보전을 집회장에서 벌이고, 노동자 투쟁과 퇴진 운동이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퇴진 주최측도 이런 방향으로 집회를 이끌어 왔다. 촛불행동은 공식적·공개적으로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하고, 12월 3일 집회 홍보는 특별히 화물연대 파업 지지를 강조했고, 화물연대 측에 두 번이나 본집회 연단을 제공했다. 최근엔 화물연대 이봉주 위원장 단식 농성장 지지 방문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도 화물연대 지지 호소에 적극 호응했다. 이런 연대는 화물 노동자들에게도 자신감을 줬다. 앞으로 조직 노동자들이 퇴진 집회에 많이 참가하면 더 좋을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런 점들을 없는 일처럼 취급한다. 회피를 정당화하려고 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 운동이 보여 준 실제 모습은 이 운동을 앞뒤 꽉 막힌 민주당 추종자들의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얼마나 편견 가득한 견해인지를 보여 준다.

실제로는, 퇴진 운동 내부는 단일하지 않고 운동의 향방을 두고 참가자들의 고심도 있다. 대안 부재감도 있다. 정의당 등 진보계 지도부들이 퇴진 운동 참가자들과 공감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러한 대안 부재감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엘리트주의

현실의 대중 운동에 참여해 이를 더 심화·발전시키려 하는 대신에 김 대표가 추구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김 대표가 퇴진 행동에 첨예하게 반대하는 것은 정의당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도 대중 투쟁보다 선거와 의회를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김 대표는 정의당에 입당할 당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세상을 바꿀 의지와 역량이 있는 집단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근간으로 한 정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국가다. ... 적어도 이 룰(rule)에 맞춰서 경기에 뛰어들 용기가 있다면, 정당을 통해 제도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 사회운동은 제도 정치와 병행되지 않는다면 그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김창인, ‘우리는 지금, 왜, 굳이 정의당에 가려고 하는가?’, 2019년 9월 25일)

그러나 현실에서 개혁을 쟁취하는 힘은 의회가 아니라 대중 운동에 있다. 진정한 권력은 선출된 의원들이 아니라 대기업 이사회와 국가 관료들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와 의회 활동은 대중 운동의 보조물이 돼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이윤과 국가 관료 기구의 권력을 상당히 침해하는 개혁은 만만찮은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에서 반값 등록금 같은 부분적 개혁조차 2011년 한대련 대학생들의 대규모 투쟁으로 가능했었다. 경제적·지정학적 위기 때문에, 기업주들과 국가 관료들이 이윤과 권력 보존에 필사적인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선거와 의회도 이런 운동의 성장과 대중의 자신감과 사기 진작에 기여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기다리는 태도로는 그런 발전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개혁 쟁취도 불가능하다. 선거 논리는 선거 참여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배적 편견에 부합되게 처신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한다. 그걸 극복하려면 엄청난 규모로, 급진성으로 대중 운동이 전개돼야 하고 선거 참여자들도 거기에 종속되는 규율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본주의 내에서 선거와 의회를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전략은 거듭 실패해 왔다. 이런 개혁주의 전략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 개혁가들을 시스템과 기존 질서의 포로로 바꿔 놓기 일쑤였다.

반면, 대중 행동은 대중이 경험 속에서 의식 발전과 자기 역량 강화를 이룰 기회를 제공한다. 투쟁 속에서 투쟁의 근력과 의식이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단순히 누가 정권을 잡았는지보다 비할 데 없이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퇴진 운동도 민주당만 좋은 일을 시켰다고 볼 일은 전혀 아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기성 정치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서 제어되도록 철도 파업을 끝내도록 종용하고, 정권 교체 후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맞서 싸우지 않은 정의당 지도부의 실천을 오히려 성찰해야 한다.

경제적·지정학적 위기의 심화 때문에 지배자들은 노동계급을 공격하려 더한층 쌍심지를 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점잖게 시스템이 정한 굴레 안에서 활로를 찾으려다가는 우리 삶을 결코 지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진심으로 “체제 전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급진적인 대중 운동에 거리를 둬서는 안 된다. 윤석열 퇴진 운동이 향후 훨씬 더 큰 투쟁의 마중물이 될 수 있게끔 애써야 한다.

김창인 대표가 코웃음 칠(그러나 그가 배워야 할) 사례 하나

김 대표는 편견 가득한 눈으로 이 운동을 보며, 이런 운동으로 “체제 전환”은커녕 참사의 반복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마치 노동자연대가 이 운동으로 “체제 전환”을 이루자고 한 양 말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는 지금은 윤석열 퇴진 촛불은 물론이고, 그보다 수십 배 컸고 승리한 박근혜 퇴진 촛불도 “혁명”이라고 규정한 적이 없다. 기존 국가 구조가 고스란히 온존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쟁점은 현실에서 펼쳐지는 대중 운동에 대한 태도 문제다. 현실의 대중은 온갖 모순된 관념들을 간직한 채로 운동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운동 참여를 통해 경험이 발전하며 의식도 발전한다.

1905년 1월 러시아에서 가폰 신부가 황제(차르)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수십만 명의 운동을 이끌었을 때, 심지어 그가 매우 의심스러운 사람이었음에도 레닌은 그가 이끄는 운동을 지지했다. (실제로 나중에 가폰은 경찰 첩자였던 것이 드러났다.) 가폰은 대중의 불만이 차르 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려고 ‘자비로운 작은 성부에 대한 청원 행진’으로 운동을 이끌었지만, 차르가 평화 행진에 총격 진압을 지시한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대중의 급진화, 러일전쟁 패배, 일련의 경제 파업들의 효과 등이 결합되면서 그해 가을에는 저항이 혁명으로 발전했다.

운동의 특정 지도자나 지도적 이데올로기가 선험적 기준에 못 미친다고 해서 살아 움직이는 대중 운동을 깎아내리기만 하는 종파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