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2월 21일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노동·교육·연금 3개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다시 한번 밝혔다.

보건복지부 장관 조규홍은 내년 3월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내년 10월까지 연금 개혁안을 최종적으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며 이참에 더 내고 덜 받거나(또는 그대로 받기), 훨씬 더 많이 내고 조금 더 받기 식의 연금 개악을 추진하려 한다.

12월 8일 복지부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을 위한 전문가 포럼’에서도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현행 9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과 연금 수급 연령 상향(현행 62세에서 68세로) 등이 거론됐다. 그래야 2057년으로 예상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2073년까지 늦출 수 있다며 말이다.

그러나 현행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22년 기준 국민연금 급여액 평균은 약 57만 원밖에 안 된다.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 대부분은 20만∼40만 원 정도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월세 내기에도 부족한 액수다. 게다가 노인 수백만 명은 이 얼마 안 되는 국민연금조차 받지 못한다.

한국 노인은 소득 중에서 국민연금·기초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이 25.9퍼센트에 불과(OECD 평균은 57.1퍼센트)하기 때문에, 은퇴도 하지 못하고 열악한 일자리를 두고 청년들과 경쟁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2020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40.4퍼센트로 OECD 평균(14.3퍼센트)의 2.8배나 된 까닭이다.

게다가 지금 서민 대다수는 불안정·저임금 노동으로 근근이 먹고살고 있고, 조기퇴직의 불안감을 갖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납부 대상인 18~59세 3093만 명 중 37퍼센트인 1136만 명이 보험료를 정상적으로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60~70퍼센트 인상하겠다는 것은 가뜩이나 힘든 현실을 더 팍팍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그리고 심각한 생계난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려면 정부의 연금 개악 시도를 막아 내야 한다.

이미 평안한 노후 생활을 제대로 보장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국민연금을 더 개악하면 서민층의 삶이 더욱 힘들어진다 ⓒ이미진

기금 고갈?

정부는 2057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돼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을 수도 있다” 하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치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양 협박을 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국가가 국민들의 노후 생활을 보장하려고 도입한 것이지, 적금이나 사적 보험처럼 각자 국민연금에 투자해서 노후에 수익을 챙겨 가라고 도입한 게 아니다. 따라서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국가가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그 돈으로 연금 지급을 보조하면 될 일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애초에 기금이 고갈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낸 사람한테만 주는 방식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이는 국민연금이 태생부터 시장주의적 요소가 포함되는 문제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이 많아 기금이 쌓이게 돼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연금을 받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기금이 고갈되면 그해에 필요한 돈을 그해에 걷는 것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현재의 건강보험처럼 말이다.

문제는 이런 점을 뻔히 아는 ‘개혁적’ 연금 전문가들과 정의당 같은 좌파 정당도 기금 고갈을 막아야 한다며 보험료 인상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와 기업주들이 퍼뜨리는 ‘기금 고갈론’에 부화뇌동할수록 국민연금의 재원을 어느 계급으로부터 거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흐려지게 된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은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누구에게 돈을 거둬서 우리의 노후 생활을 보장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기금 고갈을 우려하는 국회 예산정책처의 계산을 보더라도, 2020년 한국의 공적 연금 총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7퍼센트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았다.

고령화가 심화되고 국민연금 수지에 적자가 나기 시작한다는 2040년에도 공적 연금 지출은 GDP의 7.8퍼센트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여전히 OECD 평균(10.2퍼센트)보다도 낮을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우려하며 용돈 수준의 국민연금·기초연금에 만족할 게 아니라, 더 많은 연금 지급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필요한 돈은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의 보험료를 올리는 게 아니라,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을 지원하게 만들고, 기업주들의 보험료 부담을 높여 해결해야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개악?

윤석열 정부는 노동·교육·연금 개악을 추진하면서 말끝마다 “미래 세대를 위해”라고 포장하고 있다. 이런 ‘세대 간 갈등’ 논리는 연금 개악을 시도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가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현세대가 많은 연금을 받으면 연금 재정이 열악해져서 다음 세대가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되는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 논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다.

국민연금이 적어질수록 그만큼 젊은 세대의 ‘사적 부양비’(부모님 용돈)가 늘어나야 한다. 건강보험이 취약해질수록 젊은 세대가 개별적으로 내야 하는 부모 병원비 부담도 커진다. 공적 연금이 취약해질수록 자식들의 사적인 부양 책임은 커지는 것이다.

물론 ‘세대 간 갈등’ 논리는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현세대가 더 많은 보험료를 내고 연금 받는 나이도 더 늦춰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국민연금 보험료를 높이면,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처음부터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또,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출수록 청년들은 더 늦은 나이에 연금을 받게 된다.

결국 부모 세대의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젊은이들이 희생할 것인지 또는 젊은이들을 위해 부모 세대가 더 고생할 것인지 하는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서민층 내에서만 재원을 마련하려고 하면 고통 전가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은 젊은 시절 이 사회의 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이들은 늙어서 평안한 삶을 보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재원은 이 사회의 부를 독차지해 온 부유층과 기업주들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