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운송료 삭감 말고 안전운임제 재도입하라

화물 운송 노동자들은 지난해 고유가·고물가·고금리 직격탄에, 생계비 보장과 안전운임제(화물 운송 판 최저임금제) 지속·확대를 요구하며 두 차례 파업을 벌였다. 생계비 위기에 직면한 많은 노동자·청년들이 공감하며 지지를 보냈다.

윤석열 정부와 친기업 언론들은 십자포화를 퍼부으며 파업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탄압했다.

윤석열 정부는 사상 최초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파업 노동자들을 구속·연행했다. 지금도 구속 상태인 노동자들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해 압박하고, 조사 방해를 핑계로 화물연대본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공운수노조는 화물자동차법에 포함된 업무개시명령 조항이 노동3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지만, 얼마 전 인권위는 조항 삭제 권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지명한 위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화물 운송 일감이 대폭 줄어, 노동자들의 생계비 위기는 여전하다.

한국은행 부산본부는 최근 국내 컨테이너 화물의 76.6퍼센트를 처리하는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신항의 물동량 감소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부산신항으로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한 노동자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부산신항 대로변에 일이 없어 주차해 놓은 차들이 즐비합니다.”

플랫폼(콜)을 이용해 일감을 잡아 온 화물 운송 노동자들도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여기에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거액의 차량 구입비 할부금, 보험료 등 고정 지출 비용도 상당하다. 지난해부터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으로 그 부담은 더 커졌다.

화물 운송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지난해 말 일몰(폐지)돼 버린 안전운임제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까닭이다.

지난해 안전운임제 확대,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화물 노동자들 ⓒ이미진

여전한 생계비 위기

그런데도 화주와 운송사들은 안전운임제가 종료되자 운송료를 낮추려 한다.

한국타이어에서 컨테이너 운송을 해 온 화물연대 조합원 권영한 씨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글로비스 같은 대형 운수사들은 운송료를 3.5퍼센트 낮추겠다고 합니다. 대형 운수사는 그나마 나은 것이고, 작은 운수사들은 7.5~10퍼센트까지, 2·3차 하청으로 내려가면 13퍼센트까지 낮추겠다고 합니다. 한 달에 170~200만 원 가까이 수입이 줄어듭니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화주와 운송사들은 최근의 유가 하락 국면을 운송료 삭감에 이용하려고 한다.

“지난해 7월 수준의 운송료를 받고 있어요. 그동안 유가가 1400원대로 떨어졌습니다. 기업들은 이를 반영해 임금을 깎자고 합니다. 4~5월이 화주와 운송사가 운송료를 새로 책정하는 비딩(입찰) 기간인데, 화주들은 이때 운송료를 낮추려고 합니다. 한 탕에 50만 원인데 15퍼센트 깎는다고 하니 8~9만 원 깎이는 겁니다.”(김성진 화물연대본부 구미금강지회장)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 2월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곧바로 국민의힘 의원 김정재가 법안을 발의했다. 안전운임제 대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고, 지입제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내놓은 표준운임제는 안전운임제와 달리 화주들의 적정 운송료 지급 책임과 처벌 조항을 삭제했다. 주로 대기업인 화주들은 최저입찰 경쟁을 통해 운송사들에 낮은 운송료를 주려 할 것이고, 운송사들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할 것이 뻔하다.

즉, 윤석열 정부는 화물 운송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 기업주(화주)들의 이윤을 보장해 주려는 것이다.

지입제 폐지

화물 운송 노동자들은 그동안 지입제와 다단계 중간 착취 구조 때문에 낮은 운임 등 운송사들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

지입제는 화물 운송 노동자가 거액의 화물차를 빚내서 마련해도 정부로부터 화물운송사업을 허가 받은 사업주(운송업체)와 위수탁 계약(지입 계약)을 맺고 돈(지입료)을 내야만 화물 운송을 할 수 있는 제도다. 2021년 현재 월 평균 지입료는 22만 7000원이다.

뿐만 아니라 화물 운송 허가를 받은 번호판을 운송업체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업체들은 화물 노동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기 일쑤이고 수백~수천만 원의 번호판 ‘웃돈’도 갈취해 왔다.

그래서 화물 운송 노동자들은 지입제 폐지를 간절하게 바란다.

2003년 노동자들은 물류를 막으며 단호하게 싸워 노무현 정부로부터 지입제 폐지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들은 하나같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물량(일감)은 제공하지 않고 번호판 장사만 하는 운송회사들을 퇴출시키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입제 자체를 폐지하지 않고는 ‘번호판 장사’, 다단계 하청으로 인한 저임금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정부가 안전운임제는 폐지하면서 지입제 ‘개선’을 얘기하는 것이 위선인 까닭이다.

한편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도 애초 노동자들의 요구보다 후퇴한 안인 ‘품목 확대 없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 국회 처리마저 뭉그적거려 왔다.

최근엔 여기에서 더 후퇴하려는 조짐도 보인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얼마 전 국회의장 김진표가 제시한 ‘합리적 중재안’을 받아들여 “안전운임제를 2년 시행하고 이후 표준운임제로 전환”하는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적잖은 노동자들이 민주당의 태도에 불만을 키우는 것이 당연하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4월 8일 국회 앞에서 ‘안전운임제 쟁취! 지입제 폐지! 화물노동자 결의대회’를 진행한다. 지난해 말 파업 패배 이후 화물 운송 노동자들이 다시 행동에 나서니 반갑다.

정부의 개악 시도를 막고 생계를 지키려면 노동자들 자신의 행동이 중요하다. 지금 곳곳에서 화주·운송사들이 벌이는 운송료 삭감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기층 행동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