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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반란은 혁명으로 나아갈 것인가?

“마크롱과 단두대는 단짝” 연금 개악에 맞서 시작한 운동은 이제 마크롱 퇴진을 요구한다 ⓒ출처 Photothèque Rouge

“프랑스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반란의 전 단계에 돌입했다. 퇴직 연령을 둘러싼 질서정연했던 시위가 심각한 정권 위기로 변모했다.” 〈텔레그래프〉 세계경제 담당 편집자 앰브로스 에번스 프리처드가 지난주 파업과 시위를 묘사하며 한 말이다.

프랑스의 일부 사회주의자들도 “혁명 전야,” “혁명적 위기,” “혁명적 잠재력”을 논한다. 정말로 그런가? 과연 대중 투쟁에서 혁명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연금을 둘러싼 순전한 노동조합 투쟁 이상의 일이 정말로 벌어지고 있다. 노조가 선포한 10일간의 행동으로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고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 그뿐 아니라 쓰레기 수거, 정유소, 에너지, 부두, 항만, 운송 부문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기층의 단호한 조직을 바탕으로 무기한 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청년이 행동에 나섰다. 그러자 지난주 정부는 기초 군사 교육을 의무화하는 계획을 거둬들였다. 관련 부처의 보좌관은 이렇게 말했다.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3월 30일, 국가 탄압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 165여 곳에서 시위를 벌이며 경찰 폭력에 반대했다. 예상대로 경찰은 일부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혁명적 위기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제1차세계대전 개전 때 쓴 글에서 혁명적 위기의 몇 가지 징후를 제시했다. 혁명적 위기가 조성되려면 “지배계급이 아무런 변화 없이 지배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돼야 한다고 레닌은 강조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상층의 분열을 틈타 “억압받는 계급의 불만과 분노가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적 위기가 조성되려면 “하층 계급도 낡은 옛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어야 한다.

혁명적 위기의 또 다른 특징은 “억압받는 계급의 고통과 결핍이 더욱 극심해진다”는 점이다. 그 결과 “대중의 행동이 크게 증대”한다.

그러나 레닌이 제시한 것은 사회 현실을 놓고 ‘예/아니오’로 답하는 간단한 점검표가 아니다. 상층에서 분열이 얼마나 크고 대중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대중이 얼마나 행동에 나서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게다가 레온 트로츠키가 강조했듯이, 이러한 요인들은 상호 작용한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노동계급은 단호하고 자신 있게 행동할수록, 중간층을 더 잘 이끌 수 있고, 그럴수록 지배계급은 더 고립되고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지배자들의 사기 저하는 다시 혁명적 계급의 물레바퀴에 물을 쏟아붓는다.”

혁명적 위기는 단순히 어떤 사회 운동이 성장한 결과로 조성되는 게 아니다. 혁명적 위기는 계급 간 관계들이 상호 교차하는 가운데 조성되는 것이다. 혁명적 위기는 사회의 진정한 분단선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투쟁 속에서 사용자, 경찰, 판사, 언론, 정부가 드러내는 적대가 무엇이고 우리 편의 연대가 무엇인지 배운다. 트로츠키는 혁명이 단지 노동계급 투쟁의 수준이 일정한 특이점에 도달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혁명은 “역사적 사건에 대중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순간이다.

혁명적 위기는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자들이 하는 행위가 사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긴장이 무르익은 상황에서 그들이 하는 행동 때문에 발전한다. 잠재력이 있다고 해서 오늘날 프랑스에서 당장 혁명적 봉기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항의 파고가 꽤 거세서, 혁명적 결론으로 향하는 과정을 촉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크롱의 퇴진은 선거와 공식 정치 기구를 넘어선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을 자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을 통해 경제적 투쟁과 정치적 투쟁을 결합하는 요구를 제기할 만큼 혁명가들이 강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혁명가들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개혁주의 정당들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자각하고 의회 내 책략에 잘못된 희망을 걸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최상의 요구는 노동자들을 “현실주의”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요구다. 지극히 실천적이고 즉각적인 요구를 내놓은 투쟁과 거기서 훨씬 멀리 나아가는 투쟁이 필요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구호였던 “빵, 평화, 토지”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가 그러한 사례였다.

마크롱이 타도된다면, 대통령이 행정 명령으로 연금을 공격할 수 있게 하는 극도로 비민주적인 제5공화국 헌법의 폐지가 초점이 될 것이다. 이는 노동계급 전반에 걸쳐 그것을 대체할 대안이 무엇이냐는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추는 시도를 저지할 뿐 아니라, 연금 수령 연령을 앞당기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리고 연금 문제로 선동을 한정하는 노동조합 관료의 편협함에서 벗어나 모두의 임금을 인상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파업 대체 인력 투입을 저지할 권리와 집회할 권리를 온전히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또, 국가와 기업이 일부 파업 참가자들에게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벌금과 징역으로 그들을 협박할 수 있게 하는 법을 폐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4월 6일 행진 중인 마르세유의 노동자들 ⓒ출처 CGT

혁명적 당

이것은 리더십의 문제를 제기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프랑스노동총동맹(CGT)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었다면 지금쯤 프랑스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거라는 얘기가 아니다. 혁명적 리더십은 노동계급의 상당 부분에 뿌리내려야 한다.

레닌은 혁명적 당이야말로 혁명적 상황과 혁명적 위기를 [일상적 시기와] 구분짓는 요소라고 봤다. 혁명적 당은 단지 한 다발의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하는 기구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력 장악을 중심으로 모든 전선의 투쟁을 하나로 엮는 수단이다.

혁명가들은 일터의 문제들을 놓고 싸우면서도, 반(反)이민자 법과 무슬림과 흑인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모든 조치에 노동자들이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 국가와 군대는 전략적 타격 대상이 된다. 국가는 정치적 지배와 대기업의 경제적 독재가 상호 교차하는 지점이다. 국가 권력을 약화시키려면 극도로 억압적인 ‘브라브 엠’(폭력 행위 진압 기동대)의 해체나 경찰의 수류탄·최루가스 사용 금지 같은 요구가 제기돼야 한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요구들은 개별 일터에서 체계적으로 기층 조직을 성장시키고 여러 일터의 그런 조직들을 연결시켜야만 실현 가능하다.

이 모든 조건들이 충족돼도 하루아침에 사회주의가 성취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고 대체할 권력과 의사결정의 대안적 원천을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과정을 이탈시키거나 지연시키는 것은 모두 치명적이다. 노동조합 관료가 투쟁을 질식시킬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렇게 썼다. “모든 혁명적 상황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혁명은 객관적인 변화와 함께 주체도 변화하는 상황에서만 일어난다. 즉, 낡은 정부를 분쇄할(또는 혼란에 빠뜨릴) 만큼 강력한 혁명적 대중 행동을 벌일 능력이 혁명적 계급에게 있어야 한다. 위기의 시기에도 낡은 정부는 타도되지 않는 한 결코 저절로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리 강력한 반란이 일어나도 혁명적 리더십이 없으면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의 끈질긴 영향력이 그 반란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1968년 5월 프랑스에서는 오늘날보다 훨씬 큰 반란의 물결이 일어났다. 학생 시위에 대한 탄압이 엄청난 규모의 노동자 운동을 촉발했다.

그해 5월 13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협소한 시야를 뛰어넘어 전국의 중등학생, 대학생, 노동자들이 결집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누군가는 당시의 행진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시위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 끝없는 행렬을 이뤄,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뒤엎을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날부터 3주간 전국의 노동자 1000만 명이 참가하는 총파업이 시작됐다. 당시 역사상 가장 큰 총파업이었다. 그냥 공장이 멈춘 게 아니었다. 많은 파업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해 그 생산의 현장을 집단적 정치 조직의 현장으로 전환했다.

당시 대통령 샤를 드골은 군대와 경찰이 명령을 따를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은 그 투쟁이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임금 인상을 위한 것이라고 고집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지평을 임금 인상 수준으로 제한했고, 정부와 기업주들은 그 제한적 요구를 들어 준 뒤 투쟁이 잦아들자 처절한 복수를 감행했다.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혁명은 노동조합 관료와 개혁주의 노선을 밟고 있던 공산당의 해악적인 리더십 때문에 실패했다. 오늘날 혁명가들의 과제는 이와 유사한 과정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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