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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울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추진:
돌봄을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한다. 현재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중국 동포나 결혼 이민자 등으로 제한돼 있다. 이를 주로 동남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넓히자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월 100만 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발의해, “노예 노동 강요”라는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현재 한국인 가사노동자 월급은 보통 300만 원 내외, 중국 동포의 경우 200만 원 중후반대다. 맞벌이 부부 한 쪽의 한 달 월급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 감당할 수 있는 액수다. 보통의 여성들은 ‘경단녀’가 될지, 이 악물고 버텨야 할지 기로에 선다. 도움이 더욱 필요한 한부모 가정에 가사노동자 고용은 언감생심이다.

한국은 2000년대부터 국가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응해 사회서비스(노인·아동·장애인 등 돌봄 서비스) 정책을 본격 시행하며 지원을 늘려 왔다. 그럼에도 돌봄의 일차적 책임은 언제나 개별 가족에 뒀다. 국가 지원은 필요에 비해 언제나 턱없이 부족하고, 그조차 대부분 시장적 방식으로 제공됐다. 그래서 장애인, 노인, 아픈 사람, 아이 등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는 노동계급·서민 가정은 언제나 전쟁터가 되곤 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이런 노동계급 등 서민층의 필요를 지배계급이 비틀어 일부 해결하려는 것이다.

지배계급도 급속한 저출생·고령화 속에서 안정적 노동력 확보를 위해 여성을 노동시장에 더 많이 끌어내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가족 내 여성에게 떠맡겨진 돌봄 부담을 일부 완화해야 한다. 지배계급의 일부는 값싼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자본가들의 경제지들도 이런 목소리를 내 왔다. 〈매일경제〉는 지난해 “육아비 치솟는데 외국인 도우미 도입 미적댄다”며 정부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여러 번 촉구했다. 〈한국경제〉는 최근 사설에서 조정훈 법안을 지지했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은 이미 1970~80년대부터 여성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적극 도입해 왔다. 이주노동자 도입에 소극적이던 일본도 최근 저출생의 대책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한국은 얼마 전까지 가사서비스 시장이 비공식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 요인으로 동남아시아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될지 확신하지 못하는 문제나,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상대적 고임금 일자리로 “이탈”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 등 때문에도 지배계급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지난해 가사근로자법 시행으로 가사서비스 시장의 제도화가 시작되고,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심화하자 서울시와 정부가 도입에 나선 것이다.

열악한 조건 때문에 최근 국내 가사노동자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로 들어오는 중국 동포 수도 크게 줄었다.

정부·서울시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서 조정훈 법안과 달리,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열악한 조건을 강요하기로 악명 높다.

자본가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려는 데에 있다. 돌봄 부담에 짓눌려 고통받는 여성들, 나이 들거나 장애를 얻어 돌봄이 절실한 사람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처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래서 (돌봄 제공자가 내국인든 외국인이든) 질 좋고 무료로 제공되는 공적 돌봄이 필요하고 가능함에도, 이런 방향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은 그나마 있는 돌봄 공공성도 공격하고 있다 ⓒ출처 서울시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은 그나마 있는 돌봄 공공성도 공격하며,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긴축과 대규모 부자 감세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복지 예산은 더 위축됐다. 2023년 예산에서 공공노인요양시설과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모두 전년 대비 20퍼센트 가까이 삭감됐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사회서비스원은 후퇴를 거듭해 껍데기만 남았는데,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은 이조차 부수고 있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은 올해 예산이 100억(전년도 예산의 30퍼센트) 삭감됐고, 서울시를 포함해 여러 지역의 사회서비스원 기능이 축소되고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 역시 돌봄을 시장에 내맡기고, 개별 가족과 이주노동자가 부담을 지라는 것이다.

경력 단절보다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쓰는 게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열악한 일자리라도 찾아서 오는 이주노동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범사업을 반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는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돌봄은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고 마땅히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질 좋은 공적 돌봄을 위해 여성과 남성,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가 함께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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