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지난 2월 26일 기자들과의 산행에서 “남은 임기 2년의 국정 운영 우선순위를 양극화 문제 해소와 한미FTA 체결에 두겠다”고 밝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한미FTA를 통해 한국의 GDP와 생산성이 최대 2퍼센트 정도 증가하고, 일자리가 10만 개 늘어날 것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선전한다.

이들의 논리는 FTA를 통해 “IT산업과 자동차·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GDP와 생산성이 증가하면 고용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 반대 운동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정부의 이런 낙관은 근거가 불명확하다. GDP 상승 예상치는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상쇄돼 버릴 수 있고, 늘어날 대미무역적자가 다른 지역에 대한 수출 증가로 상쇄될 것이라는 정부측 주장은 구체적 근거가 없다.

이것은 정부가 내세우는 ‘국익’조차 지나치게 과장된 꿈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적절하다.

그러나 한미FTA 반대 운동 일각에서는 산업적 피해 주장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정부 비판의 핵심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주장은 “한·중·일FTA, 한·인도FTA, 한·아세안FTA 등 동남아 국가와의 FTA를 우선적으로 체결하여 동아시아의 경제협력 체제를 구축한 후에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이철호, 〈노동자의 힘〉 96·97 합본호)

하지만 이런 주장은 FTA의 핵심적 측면을 놓치는 것이며, 자칫 정부 입장과 별 차이 없는 주장으로 나갈 수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도 한미FTA를 체결하면 이것이 자극제가 돼 일본·중국·아세안 등과 FTA를 더 쉽게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대외경제정책연구소의 보고서도 한미FTA에서 발생하는 산업적 피해들을 상쇄하기 위해 중국·아세안 등과 FTA를 신속하게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의 또 다른 약점은 한국 정부가 미국과 FTA 협상을 하는 것이 순전히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노무현 정부가 먼저 협상을 제안했고, 한국의 자본들도 FTA에서 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놓칠 수 있다.

물론 한미FTA는 한국 자본에게도 일대 도박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의 산업 구조 전반을 개편해 ‘선진화’하지 않으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일부 산업의 피해를 감수하며 협상에 나서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의정연구회’가 밝혔듯이 한국 자본주의에 꼭 필요한 산업 구조 개편에 “FTA라는 외부 충격 혹은 압력을 이용”하려는 자본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

또, 산업적 피해를 강조하는 주장은 결국 특정 산업 부문의 노동자들이 그 부문의 자본가와 같은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미FTA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산업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 노동자들도 한미FTA를 반대해야 하지만, 한중FTA처럼 많은 산업이 득을 본다면 반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FTA로 크게 피해를 보는 산업의 자본가들은 그 피해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득을 보게 될 산업의 노동자들이 그 수혜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0여 년 전 멕시코 정부도 미국·캐나다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면서 마낄라도라(멕시코 북부 대규모 수출 공단 지대)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선전했다.

실제로 마낄라도라에서 고용이 늘긴 했다(그러나 농업의 파괴로 인한 실업 증대 때문에 멕시코 전체로 보자면 고용 증가는 거의 제로였다). 하지만 그 절대 다수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며, 그 중 55퍼센트는 노동법이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직종이었다.

FTA의 원형으로 불리는 NAFTA 출범 이후 2002년까지 멕시코·미국·캐나다의 제조업 생산성은 각각 53퍼센트, 52퍼센트, 14.5퍼센트가 상승했지만, 노동비용은 오히려 각각 23퍼센트, 14.6퍼센트, 13퍼센트가 줄었다(왼쪽의 표 참조).

이것은 산업이 발전한 나라든 그렇지 않은 나라든 FTA를 체결한 나라의 노동자들의 처지가 더 어려워졌다는 점을 보여 준다.

노무현 정부는 피해 산업 구제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하지만, 이 구제책이라는 것도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들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과 미국의 자본가들 모두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려 하는 ‘노사관계로드맵’의 정책들을 한미FTA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한미FTA에서 다루게 될 의료·교육·물 등의 사유화 정책은 한국과 미국 자본 모두에게 더 많은 이윤을 약속하겠지만, 노동자·민중은 더 많은 돈을 내고 더 열악한 서비스를 받을 것이다.

특정 FTA로 인해 어떤 산업은 득을 볼 수도,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각국의 자본들이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해 체결하는 FTA는 모두 언제나 노동자·민중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자본들은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갈등을 빚기도 하겠지만,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는 모두 한목소리를 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제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한미FTA뿐 아니라 모든 FTA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