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은 바이든이 ‘증거 사진’을 본 게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이 만들어 낸 거짓말을 뻔뻔하게 퍼나른 이번주 신문 헤드라인들 ⓒ출처 <소셜리스트 워커>

이번 주에 거의 모든 언론들은 하마스 전사들이 지난 주말 이스라엘 공격 당시 어린아이 40명을 참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은 하마스가 극악무도한 야만인임이 분명하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팔레스타인인 살해를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언론인·정치인들은 이제 발뺌하고 있다.

백악관은 “테러리스트들이 어린아이들을 참수했다는 증거 사진”을 봤다는 바이든의 11일자 발언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이 그런 사진을 본 적이 없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밝혔다. 바이든이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주장과 언론 보도에 근거해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 참수의 증거는 어디에서도 제시되지 않고 있지만, 거짓말의 해악적 효과는 이미 실질적이다. 카타르에 거주하는 연구자 마크 오언 존스에 따르면, 그 확인되지도 않은 보도는 ‘X’(트위터의 새 이름)에서 24시간 만에 최소 4400만 회 노출됐고, ‘좋아요’를 30만 개 받았고, 10만 번 퍼날라졌다.

어린아이가 참수당했다는 주장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이려고 늘어놓은 거짓말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주장의 최초 출처는 하마스의 공격 후인 10일 화요일, 가자지구 인근 유대인 정착촌 ‘크파르 아자’를 방문한 기자들이었다.

최초로 보도한 이들 중에는 이스라엘 TV 방송국 〈i24 뉴스〉 소속 기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망자 시신을 수습한 군인들의 증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경제산업부 장관 니르 바르카트는 10일 저녁 영국 TV 방송국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주장을 되풀이했다. “방금 확인했다. … 어린 남자아이 40명이라고 들었다. 그중 몇 명은 산 채로 불태워졌고, 몇 명은 참수됐고, 몇 명은 머리에 총을 맞았다.”

튀르키예 언론사 〈아나돌루〉는 이스라엘군이 그 주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고 최초 보도했다. 나중에 이스라엘군은 다른 매체들을 통해, 자신들이 진위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 “사자를 욕보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언론인 최소 두 명이 해당 보도를 인용했던 트위터 게시글을 삭제했다. 〈가디언〉지 기자 베탄 맥커난은 10일에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방금 오늘자 영국판 지면 1면을 봤다. 크파르 아자에서 ‘하마스가 어린아이 40명을 참수했다’고 주장하는 헤드라인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분명 많은 어린아이들이 살해당했다. 분명 공격 과정에서 참수가 몇 건 있었다. 하지만 어린아이 40명이 참수됐다는 주장은 진위도 확인되지 않았고 완전히 무책임한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는 툭하면 거짓말을 한다. 2006년 6월 9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해안가에서 민간인 7명을 폭발로 죽였다. 유일한 생존자인 10세 소녀 후다 갈리아가 가족들의 조각난 시신 한가운데에서 울부짖는 영상은 너무도 끔찍해서 이스라엘조차 몇 마디 사과를 웅얼거려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스라엘군은 재빨리 해변 사망 사건 조사위원회를 꾸려 눈 깜짝할 사이에 군의 책임을 스스로 면제해 줬다.

이 위원회는 이스라엘 포병 기지에서 베이트 라히아 해변으로 포탄 여섯 발을 발사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가족을 죽인 폭발은 그와는 별개라고 ─ 십중팔구 하마스가 매설한 지뢰가 폭발한 것이라고 ─ 주장했다. 거짓말이었다.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단체 ‘카메라’는 언론 보도에 영향을 행사하려고 한술 더 떠서, 후다 갈리아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영상이 조작일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시신의 위치를 옮긴 것 아닌가? 그 여자애한테 시신을 발견한 장면을 재연하라고 시킨 것 아닌가? 연출된 영상 아닌가?”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이번 어린아이 참수 보도와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예컨대, 1990년에는 ‘쿠웨이트 아기 살해’ 뉴스가 회자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걸프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됐다.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직후였다.

전쟁 프로파간다

이런 류 보도의 원조는 제1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쟁 프로파간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은 독일군이 벨기에 어린아이들을 공중으로 던져올린 다음 총검에다 꽂았다고 주장했다.

걸프전 버전에서는, 이라크 군인들이 쿠웨이트의 현대식 병원에 난입해 미숙아 병동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서방은, 이 이라크 군인들이 인큐베이터 장비를 이라크로 후송하기 위해 미숙아들을 인큐베이터에서 꺼냈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보도한 것은 9월 5일자 〈데일리 텔레그래프〉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기의 죽음을 애도하는 친지들의 사진도 인터뷰도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것들이 제시됐다.

‘자유 쿠웨이트를 위한 시민들’을 자처하는 단체가 있었는데, 쿠웨이트 망명 정부가 돈을 댄 단체였다. 이 단체는 미국의 대형 광고기업 ‘힐 앤 놀튼’과 1000만 달러[약 100억 원]짜리 계약을 맺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하기 위해 서방 군대가 개입하라고 촉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미 하원 인권위원회가 그해 10월에 청문회를 열었다. ‘힐 앤 놀튼’은 15세 쿠웨이트인 소녀를 섭외해 이라크군이 아기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원의원들에게 늘어놓게 했다.

언론인 필립 나이틀리는 이렇게 썼다. “그 애는 기똥차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확한 순간에 울먹거렸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그 애를 ‘나이라’라는 이름으로만 알았다. 그 애의 증언을 보도하는 TV 화면에는 분노와 결기에 찬 의원들의 얼굴이 비쳤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 1세는 이 사건이야말로 사담 후세인 정부가 사악하다는 증거라며 그후 5주 동안 이 이야기를 여섯 차례나 거론했다.

상원 회의에서 사담 후세인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낼 군사 행동 승인 여부를 논의할 때 상원의원 7명이 인큐베이터 아기 이야기를 콕 집어서 거론했다. 군사 행동은 단 다섯 표 차이로 승인됐다.

진실은 그 후로 거의 2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그 이야기는 거짓말이었다. 그 쿠웨이트인 10대 소녀 ‘나이라’는 사실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고, 청문회 출석 전에 ‘힐 앤 놀튼’의 연출에 따라 연습한 것이었다. 그러나 [걸프] 전쟁은 이미 과거지사가 된 뒤였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도 1964년 6월 ‘가짜뉴스’ 이후 확전됐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은 아무런 도발이 없었는데도 북베트남 어뢰정이 통킹만에서 미 해군 전함 매덕스호를 두 차례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미 하원은 동남아시아에서 전쟁을 일으킬 전권을 존슨에게 위임하기로 표결했다. 이후 드러난 바에 따르면, 매덕스호는 북베트남을 상대로 비밀 작전을 편 후 회항하는 중이었고 두 번째 공격이라는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존슨이 전쟁 권한을 얻어낸 후였다.

크파르 아자에서도, 쿠웨이트에서도, 벨기에에서도 민간인이 살해당하긴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아기가 목숨을 잃었다는 거짓말을 해야만, 적을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존재이자 거리낌 없이 도살해도 되는 짐승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아기들의 시신이 가자지구의 잔해에서 수습됐다는 증거는 무시해도 좋은 것이 된다. 어차피 그들은 우리 같은 인간이 아니라 야만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들은 더 큰 거짓말, 예컨대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한 정착민들이 차지한 것은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었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뒷받침한다. 그런 거짓말들을 꾸며내고 퍼뜨리는 바로 그 자들이 살인 공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