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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반란이 낳은 급진화

“바야흐로 거리가 말하는 시대가 왔다.” 3월 28일 벌어진 파업과 시위에 대해 프랑스의 한 전국 일간지는 이렇게 말했다.

파업과 시위는 대성공이었다. 1백50개가 넘는 도시에서 3백만 명의 노동자와 청년들이 작업장과 학교를 멈춘 채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파리에서는 7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CPE 반대 시위였다.

교사, 언론인, 철도기관사, 항공관제사, 지방공무원, 석유 노동자, 우체국·전화국 노동자 등이 파업을 벌였고, 공공부문뿐 아니라 상당수 민간부문 노동자들도 파업에 참가했다. 최근 몇 주 동안 계속된 점거 운동에 참가하지 않았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들도 휴교했다.

주요 라디오 방송국은 하루 종일 오페라 음악을 틀어야만 했다. 기자들이 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반면,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는 기술자들의 파업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다.

대학생들 ― 일부는 두 달이 넘도록 동맹휴업을 벌이고 있다 ― 은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고등학생들과 합세했다. 또, 파업 노동자들은 파리 교외 빈민가 거주 청년 수천 명과 함께 행진했다.

우파들은 교외 빈민가 청년들을 “깡패들”로 묘사해 운동을 분열시키려 애써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실패하고 있다.

내무장관 니콜라 사르코지 ― 지난해 11월 프랑스 교외 지역에서 벌어진 소요를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 가 이날 파리 시위에 시위 진압 경찰 CRS를 ‘질서유지대’로 투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학생들에게 요구했지만, 학생조정위원회는 이 요구를 즉각 거부했다.

시위 진압 경찰의 만행을 경험한 대학생들은 청년들이 아니라 경찰이 문제라고 비난하고 있다. 낭테르 대학교의 학생들은 교외 청년들의 폭력을 부각시켜 온 통신사 AFP의 파리 사무실을 찾아가 “사실 왜곡”을 비난하며 이렇게 외쳤다. “그들이 깡패라면 우리도 모두 깡패들이다!”

프랑스의 운동은 수천 명의 지방대학 학생들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반란이 시작됐다. 프랑스의 80여 개 대학 가운데 68개 대학(3월 28일 현재)이 동맹 휴업을 벌이고 있고, 이들은 대부분 봉쇄 또는 점거 중이다.

수백 개의 고등학교 ― 파리에서는 전체 고등학교의 절반 ― 도 파업과 봉쇄에 돌입했다.

대학에서 열리는 대중 집회에서는 운동의 진로를 둘러싼 토론과 표결이 이루어진다. 푸아티에에서는 4천 명의 학생들이 지역의 축구 경기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2∼3천 명 규모의 집회는 이제 매우 흔한 일이 됐고, 5백∼1천 명 규모의 집회가 날마다 수십 곳에서 열린다.

유인물과 소식지를 만들고, 법안을 연구하고, 지역 노조들과 연관을 맺고, 영화 상영이나 정치 토론을 조직하고,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기차역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위해 각종 위원회가 선출된다.

학생들은 대학 직원들과도 긴밀히 연대하고 있다. 대학 직원들(예컨대, 청소 노동자들)이 학생 총회에 초청돼 자신들의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연설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됐다.

파리 상시에 대학의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교수들이 우리 총회에 찾아와 우리의 파업과 봉쇄에 대한 지지를 밝히곤 합니다. 그리고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이러한 조직과 점거 경험을 통해 더 많이 배우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일부 대학교에서 학생들은 “개방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낭테르의 대형 강의실에서는 여성들의 노동조건, 동성애자 해방, 1968년 5월 운동에 관한 영상 상영과 토론이 진행됐다. 랭스에서는 세계화나 청년 운동의 역사에 대한 토론이 계획돼 있다.

직접행동도 증가하고 있다. 학생과 청년들의 연좌 시위 때문에 수십 개의 철로와 주요 도로가 차단됐다. 기업주 단체와 우파 정당들의 사무실도 거듭되는 기습 점거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자들은 조금 더디게 운동에 가담했다. 2003년에 연금을 둘러싼 투쟁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파업과 시위를 벌였지만 정부의 연금 개악 ― 공공부문의 퇴직과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2년 반 늦추는 것이었다 ― 공세를 막지 못했다.

그러나 연이은 대규모 시위, 특히 3월 28일의 대규모 하루 파업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며 추가 행동에 대한 염원을 증대시켰다.

예컨대, 3월 28일 파업 전에 이미 일부 학교 교사들은 4월 4일에 또 한 차례 파업을 벌이기로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그리고 만약 정부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그 때부터는 무기한 파업을 벌인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이제 헌법 재판소의 CPE 법안 합헌 결정과 시라크의 법안 강행에 분노한 학생들이 빌팽과 시라크를 포함한 내각 총사퇴 요구를 제기하면서 투쟁의 정치적 성격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운동이 낳은 급진화는 좌파의 인기 상승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특히, 혁명적 좌파의 인기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최대의 여론 조사 기관(IFOP)이 3월 말에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43퍼센트가 혁명적 좌파 조직들이 “유용하고” “토론에 많은 기여를 한다”고 답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 비율이 더 높았다.

또, “오늘날 프랑스의 극좌파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34퍼센트가 올리비에 브장스노(젊은 우체국 노동자로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대변인을 맡고 있다)를 지목했다. 황금 시간대 TV 프로그램 출연에 브장스노가 출연하는 것은 더는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해 5월의 유럽연합 헌법 반대 운동, 11월의 교외 빈민가 청년 소요, 그리고 지금의 학생 반란과 노동자 저항에 이르는 과정은 프랑스에서 새로운 급진적 청년 세대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들은 몇 세대에 걸쳐 경험할 일들을 단 몇 년 만에 겪고 있다.

이러한 급진화 과정의 규모와 깊이, 지속성은 프랑스에서 혁명적 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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