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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 파산 - 파산한 자유 시장의 우상

엔론 파산 - 파산한 자유 시장의 우상

지난 12월 2일 엔론의 파산 신청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 기구들은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혔다. 미국에 본사를 둔 에너지 다국적 기업 엔론의 파산은 자본주의 기업의 파산 역사에서 최대 규모 중 하나였다.

거대 기업과 은행들은 엔론에 대한 투자 손실 때문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다른 회사들이 잇따라 무너져 내리면서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이미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를 더 심각한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바클레이 은행, 크레디리요네 은행, 스코틀랜드 왕립 은행 모두 엔론에 수억 달러씩 물려 있다. 브리티시에너지, 파워젠, 센트리카, 기타 영국의 에너지 회사들이 엔론과 거래했던 수백만 달러도 날아갈지도 모른다. 미국은 최대 90억 달러에 이르는 엔론의 부채 때문에 월가의 거대 금융기관 일부가 파산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엔론은 결코 평범한 기업이 아니다. 작년에 1조 1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린 엔론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큰 기업이었다. 올해 6월에 〈이코노미스트〉는 엔론을 가리켜 “어떤 산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성공적인” 회사라고 불렀다. 엔론과 그 관련 회사들은 미국의 어떤 기업보다 더 많은 돈을 부시 부자에게 주었다. 엔론은 부시 부자가 정치 경력을 쌓을 때 그들에게 정치 자금을 제공하면서 후원했다. 조지 W 부시는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엔론의 회장 케네스 레이를 “에너지부 고문”에 임명했다. 〈가디언〉은 엔론이 “부시 대통령에게 정치 자금을 제공하면서 니카라과에서 괌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자원을 약탈했다”고 논평했다.

아버지 부시와 그의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1991년 걸프전 직후에 엔론이 쿠웨이트 신규 발전소 건설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엔론의 계약 조건은 입찰 경쟁사가 제시했던 것보다 22배나 비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시와 베이커는 쿠웨이트에 압력을 넣어 그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엔론은 전 세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영국 보수당 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바 있고 지금은 영국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인 존 웨이크엄은 엔론의 이사이기도 하다. 웨이크엄과 보수당 정부는 1980년대에 에너지 시장 규제 완화를 밀어붙여서 엔론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길을 닦아 주었다. 신노동당도 엔론과의 거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엔론은 노동당에 자금을 제공하고 로비를 벌여 잉글랜드 남서부의 많은 지역에 대한 물공급 사업을 독점할 수 있었다.

모잠비크에서 엔론은 팡데 천연가스 지대를 손에 넣고 싶어했다. 모잠비크 정부는 그 계획에 반대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빈곤에 허덕이는 그 나라에 대한 원조를 줄이겠다고 위협했으며, 엔론은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정치가들의 지원을 받은 엔론은 거짓말, 사기, 협박, 뇌물을 이용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뽑아낸 이윤으로 짧은 기간 동안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엔론을 파산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 회사의 사장과 고객들이 칭찬해 마지 않던 자유시장과 규제 완화된 자본주의였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엔론을 궁지로 몰아넣는 데는 사기(詐欺)가 필요 없었다”고 논평했다. 엔론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규제 완화를 이용해서 텍사스의 가스 파이프라인 회사에서 세계 최대의 에너지 거래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엔론은 닷컴 거품에 뛰어들어 인터넷으로 에너지 계약을 사고 팔았다. 더 나아가 수많은 위험한 금융 거래에 뛰어들었고 세계 각지의 수자원 회사와 발전소를 사들였다. 엔론은 통신장비 다국적 기업들처럼 통신 ‘대역폭’(주파수 범위) 판매를 둘러싼 거품에 뛰어들어 인터넷이나 그 비슷한 사업에서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데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똑같은 도박에 뛰어듦에 따라 대역폭 판매는 수익성이 없게 됐다. 거품이 붕괴했다. 엔론의 파산은 마르코니, 모토롤라, 그 밖의 많은 통신 회사에서 대규모 실업을 초래한 세계 자본주의의 동일한 위기 가운데 일부다. 규제 완화된 에너지 시장이라는 카지노에서 도박에 뛰어들어 손실을 입은 스코틀랜드 전력회사는 이제 영국에 있는 그 회사 노동자들에게 실업과 노동조건 악화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려 한다.

불행하게도 엔론의 파산으로 고통을 겪을 사람들도 은행가, 투기꾼, 주주는 아닐 것이다. 영국에서는 지금 당장 4천 개 이상의 일자리가 위험해졌고, 연쇄효과로 더 많은 일자리가 날아갈 수도 있다. 웨식스 수자원 회사 노동자부터 헨던의 엔론 사무직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고, 일부는 이미 해고됐다.

자유시장 체제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 체제가 위기로 빠져들자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싶어한다.

인도에서 암살단을 고용한 회사

엔론은 인도 역사상 가장 큰 부패 스캔들의 핵심 당사자였고, 사업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누구나 야만적으로 짓밟았다. 마하라쉬트라 주에서 28억 달러의 발전소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엔론은 수많은 활동가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엔론과 그 관계 회사인 둡홀 전력회사는 암살단과 경찰을 고용해 이들 활동가들을 구타하고 테러했다.

그 피해자 중에 한 명인 24세의 사간다하 바수데브 발레카르는 엔론에게 돈을 받은 경찰이 집에 쳐들어와 그녀를 구타했을 때 임신 중이었다. 미국의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엔론의 “인권 침해 공모”는 범죄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법률을 악용하고 반엔론 시위 지도자들을 괴롭히고 자의적인 것부터 야만적인 것까지 다양한 경찰의 관행들을 이용해 반대파를 탄압하는 공식적인 정책 덕분에 엔론의 지역 자회사인 둡홀 전력회사는 직접 이득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인도의 작가이자 활동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엔론이 인도에서 자사의 계획을 진척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수백만 달러를 들여서 정치가와 관료들을 ‘교육시켰는지’” 묘사한다. 그녀는 엔론의 계획이 취소될 위험에 처하면 어떻게 “미국 정부가 마하라쉬트라 주정부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인도 주재 미국 대사 프랭크 위스너는 나중에 엔론의 이사가 됐다. 지금 엔론 발전소는 마하라쉬트라 주 내의 다른 업체보다 최고 일곱 배나 비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한다. 미국의 압력과 인도 정치가들에 대한 ‘교육’ 때문에 인도 정부는 앞으로 40년 동안 해마다 엔론에 2억 1천만 달러씩 지급해야 하게 됐다. 엔론이 계약서에 끼어넣은 조항에 따르면, 인도 정부가 약속한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엔론은 정부의 자산을 경매에 부칠 수 있는 권리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