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월드컵 경기는 정치와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즐기는 스포츠 행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경기는 매우 정치적인 행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에 열광하기 때문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4백10억 명이 TV를 통해 월드컵 경기를 시청했다   축구는 흔히 지배자들의 유용한 지배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슬로건은 “끝나지 않은 신화, 하나 되는 한국”이다. 그러나 그 동안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는 ‘사회 양극화’였다. 지배자들은 월드컵을 이용해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노무현 정부와 열우당에게 유일한 희망은 대표팀 감독 아드보카트다. 아드보카트 호가 16강에 오르기만 한다면 한동안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독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월드컵은 세계 평화를 위한 인류의 제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월드컵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 적이 없다. 월드컵이 충실하게 이바지해 온 것이 있다면 자본의 이윤 추구다.

사실, 월드컵은 자본이 주도하는 스포츠 세계화다. 자본의 세계화는 경제 격차, 민족 분규, 인종 갈등, 환경 파괴 등을 낳았다. 그리고 이러한 참상은 끔찍한 테러를 낳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이번 독일 월드컵도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배경으로 치러진다. 지금 미국·독일·영국 등은 월드컵을 대이란 공격을 정당화하는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

이란 대통령 아흐마디네자드가 자국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하겠다고 하자, 독일과 미국은 이란 핵 개발과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야 한다”는 아흐마디네자드의 말을 빌미로 이란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출전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과 기독민주당은 이란이 축구 팬으로 위장한 자폭 테러 요원을 월드컵 경기장에 침투시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사회민주당도 이런 공포심 부추기에 가세했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존 매케인은 이란의 월드컵 출전 불허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있고 이란을 핵무기로 공격할 수도 있다는 미국의 월드컵 출전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세계 지배자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스포츠 민족주의

월드컵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국제 행사로 출발했다. 민족주의와 스포츠의 결합은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 경기 때부터 스포츠는 국가적 의례로 제도화됐다. 이 대회에서 시상식 제도가 지금과 같은 국가 의례가 됐다. 즉, 금메달을 딴 나라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다른 메달리스트들은 부동 자세로 경의를 표시했다.

1908년 런던 올림픽 때 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 대회는 개인이나 클럽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이 참가한 최초의 대회였다. 이 때부터 국가 간 축구 경쟁은 더 심해졌다.

그러자 진정한 자웅을 가려 내기 위해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선수로 이뤄진 국가 대항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것이 월드컵 경기 출범의 배경이었다. 월드컵 경기는 축구 민족주의를 급속하게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대회 때 우루과이 감독 온디 오비에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선전포고였다. … 그것은 단순한 팀 대결이 아니라 국가 간의 대결이었다. … 사실, 축구 전쟁이었다.”

1934년 제2회 월드컵은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정권 정당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국가 간의 스포츠 경쟁 격화는 승리 지상주의를 부추긴다. 이것은 선수들에게 커다란 중압감을 안겨 준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반칙이 난무한다. 또, 심판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고, 선수들은 약물을 복용한다. 아르헨티나의 비운의 축구 스타 마라도나는 중압감 때문에 약물을 복용했다가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축구와 민족주의의 결합을 주도했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0년대에는 아직 축구가 매력적인 스포츠로 뚜렷이 부각되지 못했다. 제1회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박스컵)는 1971년에 시작됐다. 박스컵보다 먼저 1960년대에 박정희 장군배 동남아 여자 농구대회가 개최됐다.

그러나 1966년 영국 월드컵 대회에서 북한이 8강에 진출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박정희는 축구를 민간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1967년 1월 중앙정보부 차장 이상익을 중심으로 양지 축구단을 창설했다. 양지 축구단은 당시 국가 대표팀의 주축이었다. 이들은 전원 합숙하면서 군대식 훈련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의 경쟁을 의식하며 축구 국가대표단을 운영했다. 그와 동시에,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화에 축구를 적극 활용했다. 1970년에 축구협회장에 취임한 장덕진(박정희의 조카사위)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공직을 걸고 북괴와의 대결에서 필승을 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북괴와의 대결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아시아 경기 대회를 생각하면 부담을 느꼈다.”

박정희는 체육 정신을 이렇게 요약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 협동과 단결의 정신, 준법과 질서의 정신.” 그런데, “협동과 단결의 정신은 동포애와 애국심으로 승화된다.”

교육부와 문화관광부의 전신인 문교부가 일선 체육 지도자들을 위해 펴낸 〈체육과 교육〉에서는 스포츠 개념이 이렇게 정리돼 있다. “평화시에는 생산력의 능률을 확대하고, 비상시에는 군사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 양면 체제의 저력이다.”

국가 주도의 축구는 1980년대 들어와 바뀌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특무대가, 1970년대에는 양지축구단 같은 국가 기구가 축구를 주도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실업팀들이 국내 축구의 주축이 됐다.

1980년대 이후 주요 경기 단체장들은 대부분 기업주들로 채워졌다.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준은 현대그룹에서 분가한 재벌의 총수다. 대한야구협회장은 현대통신산업 회장 이내흔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자본이 급성장하면서 국가 주도의 축구가 국가와 자본이 협력하는 축구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월드컵과 상업주의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월드컵도 다르지 않다. 노동과 여가의 분리는 축구 등 스포츠의 상업화를 부추겼다. 노동력이 사고 팔리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공장, 광산, 사무실, 병원, 어디서든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간에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거나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여가 시간에 특별한 가치를 둔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오직 ‘자유 시간’에만 노동자들은 자기 존재와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고 추구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거의 다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이렇듯 노동과 여가 시간이 예리하게 분리되는 틈바구니에 스포츠가 자리잡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바로 스포츠가 지루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에서 축구는 대중 오락이었다. 피지배 대중은 황소나 곰 학대 놀이, 투견, 투계, 폭력적인 축구 등의 “블러디[폭력적] 스포츠”를 즐겼다. 사냥과 테니스는 국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신흥 부르주아지는 산업혁명 과정에서 “블러디 스포츠”를 공격했다.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 저지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생활양식 개조 운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축구를 성문화된 규칙에 따라 경기장에서 경쟁하는 경기로 만들었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실정법에 따라 노동 시장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도록 하는 것과 짝을 이뤘다.

부르주아지는 축구를 점차 제도화·프로화·국제화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소외됐다. 대다수 사람들은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여기에 노동시간이 단축되면서 축구는 노동계급의 중요한 여가 활동이 됐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여가 시간을 이윤 추구의 장으로 만들었다. 월드컵은 거대한 돈벌이가 됐다. 그 때문에 월드컵 경기 개최권을 따내기 위한 각축이 치열하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2002년 개최권을 따내기 위해 로비용 뇌물로 1천3백억 원 이상을 썼다.

월드컵 중계권료도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방송3사는 총 8백50억 원을 FIFA에 제공했다. FIFA는 지상파 방송 중계권에서부터 케이블·위성·DMB·인터넷·멀티미디어휴대폰에 이르기까지 매체들을 철저하게 구분해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2002년에 전혀 예상치 못한 거리 응원에 허를 찔렸던 전광판 중계도 CCTV라는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해 한 회당 최저 2천만 원에서 전 경기 3억 원까지 값을 매겼다.

FIFA는 하프타임 행사를 금지시켰다. 하프타임 때 문화 행사를 하게 되면 전광판을 통해 나가는 후원업체들의 광고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후원업체들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기대할 수 없다.

FIFA는 다국적기업의 이윤 각축장 노릇을 하는 월드컵을 주관한다.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부패해 있다. FIFA 관계자들은 세계 어디를 가나 VIP 대접을 받는다. 내부 사업 내용이나 재정 집행 내역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다.

올림픽의 부패에 사마란치가 있었다면 월드컵의 부패에는 아벨란제가 있었다. 현 FIFA 회장 블래터는 아벨란제의 충직한 후계자다. 오죽하면 정몽준조차 FIFA가 투명하지 못하다고 비난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