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민주 개혁가인가

 

임미정

일부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노무현 지지 쪽으로 이끌리고 있다. 강준만 교수에 이어 영화배우 문성근과 명계남 등이 노무현을 공개 지지했다. 이들은 국민경선제로 노무현이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보고 노무현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적극 활동하고 있다. 문성근은 “지역감정이나 기득권 세력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 한나라당만이 민주주의와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것은 노무현의 지론이다.  노무현은 한나라당 때문에 김대중 개혁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전환기, 과도기란 본시 어려운 것 아닙니까? 거기에다 지역 정권이란 한계도 있고 … 또 수구세력의 강력한 저항과 훼방이 있지 않았습니까?”(《민족21》, 2001년 12월호)최근 박근혜 같은 TK 세력들이 세력을 과시하려 들자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패권적 영남 지역주의가 부활하는 것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볼 만하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누더기가 된 주5일 근무제조차 “시기상조”라며 반대할 만큼 반노동자적이고 반개혁적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든다. 4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온 민주당은 기득권 세력에서 제외될까? 민주당은 선거에서 지역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신승환이 한나라당 당사에 찾아가 이용호 구명 운동을 했는가? 김대중 정부 아래 벌어진 부패 스캔들의 정점에는 늘 민주당의 실세가 있었다. 김영삼과 꼭 마찬가지로 김대중의 세 아들들도 추문에 연루되어 있다. 민주당도 한나라당 못지 않게 기득권 유지와 이권 챙기기에 바빴다. 노무현이 수구 세력 핑계를 대는 진정한 속내는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군말 없이 김대중을 따라주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강준만 교수는 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정권에게는 카드가 없지 않았냐 이 말입니다. 한쪽에선 외국자본 앞잡이 노릇한다는 비판이 쏟아져나오고, 또 다른 한쪽에선 사회주의, 포퓰리즘 한다는 정반대의 비판이 쏟아지면서 협공을 당했던 것 아닙니까.” 그는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진보 진영을 노무현 물어뜯기를 하는 “한나라당의 2중대”라고 비난한다. 설사 김대중이 수구 세력에 밀려 옴짝달짝 할 수 없는 처지였다고 가정하자. 그럴 때마다 김대중의 대응 방식은 무엇이었는가? 수구 세력의 압력에 밀려 좌파와 노동 대중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 사례는 셀 수가 없다. 국가보안법 고수, 개혁 입법 좌절, 주5일 노동제 후퇴, 새만금 간척 사업 강행 등등.

강준만 교수도 자기 주장의 모순을 인정한다.

“정권은 정말 미련했죠. 왜 진보세력, 노동자세력을 ‘적’으로 만듭니까. 수구세력한테 당하는 정권이 이런 바보 같은 선택을 왜 하냐구요. 차라리 진보세력, 노동자세력을 끌어안았어야죠.” 강준만의 말대로 김대중은 진보 세력이 아니라 수구 세력을 자신의 파트너로 삼았다. 왜냐하면 김대중과 수구 세력은 모두 자본가 계급의 기득권 유지라는 이해 관계가 같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타파?

노무현이 영남 지역의 반(反)김대중 정서(영남 지역주의) 때문에 개혁이 좌절됐다고 보는 것은 반김대중 정서의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주장이다. 김대중 집권 초기에만 해도 경상도 지역에서 김대중에 대한 반감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선거 직후인 199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구·경북 지역의 63.9퍼센트, 부산·경남의 77.8퍼센트가 “김 당선자의 당선이 결과적으로 나라를 위해 잘된 일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을 했다. 1997년 12월 〈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대구·경북의 77.8퍼센트와 부산·경남의 86.6퍼센트가 잘된 선거라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대구에서 제일 오래된 K 성당 신부가 미사를 지내면서 김대중 당선자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자고 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다. 술좌석에서도 당선자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대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경상도에서 민심이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는 삼성자동차 부도 사태였다. 이것을 계기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계급적인 반감이 형성됐고 한나라당은 이런 반감을 이용해 지역주의를 조장했다.

마땅한 대안이 없을 경우 김대중에 대한 노동자들의 쓰라린 환멸이 한나라당에 대한 반사 이익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 대중의 환멸이 모두 수구적·패권적 지역주의 정서는 아니다.

집권 초기 대다수 사람들은 김대중이 당선되면 지역주의가 완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김대중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측근들로 권력 핵심을 채웠다. 검찰총장은 대선 당시 김대중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했던 광주고 출신의 김태정을 앉혔고, 안기부의 1차장과 2차장과 기조실장 세 요직이 호남 출신에게 돌아갔다. 김대중 집권 기간 내내 검찰에서는 목포고와 광주고 출신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김대중의 집권 4년은 호남 지배자들과 영남 지배자들이 권력을 번갈아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지역주의가 온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자신들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분노가 커질수록 이들은 지역주의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 애쓰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권력의 지역 안배로는 지역주의가 없어지지 않는다. 지역주의를 부추겨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지배계급 전체에 맞서 노동자들이 싸우는 방식으로만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노무현과 링컨

노무현은 최근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을 통해 “동서간의 통합이 없이는 개혁도 통일도 불가능하다. … 이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위치에 제가 서 있습니다” 하고 주장한다. 그는 남북 전쟁을 통해 미국의 통합을 이루어냈다는 링컨과 자신을 독자들이 같은 반열에 놓기를 바란다. 아마 이 책의 독자들은 링컨이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고 변변한 학벌 없이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다는 이유로 부지불식간에 링컨과 노무현의 이미지를 겹쳐서 떠올릴지 모른다.

노무현은 링컨이 노예제 폐지론자와 반대론자 사이에서 중용의 미덕을 발휘한 현실주의자임을 강조한다. “링컨은 현실이 어떻든 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는 조급한 개혁주의자가 아니었다.” “링컨은 우선 노예제가 정의에 어긋나는 악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그것을 무조건 법으로 만들어서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 링컨의 생각이었다.”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그의 말을 듣노라면 민주당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질질 끌면서 온갖 핑계를 대듯이 링컨도 말만 앞세우는 타협론자였음이 부각된다.

비록 링컨이 노예 해방보다 미국 연방의 통일을 정치적으로 더 중시했지만 어쨌든 남북전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걸림돌인 노예제를 폐지함으로써 역사적 진보를 가져왔던 사건이었다. 남북전쟁을 계기로 노예들은 신분적 해방을 통해 임금 노동자로 바뀌었고 이를 통해 미국은 급속하게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지금의 영호남 지역갈등과 미국 남북전쟁은 급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남북전쟁의 위대한 역사적 의의 때문에 영국 맨체스터의 면방직 노동자들은 링컨의 남부 무역 봉쇄로 면화 사업이 붕괴해 실업의 위기에 처해진 상황에서도 북군의 승리를 기원하고 노예 해방에 지지를 보냈다. 마르크스도 링컨의 재선을 축하하며 “링컨의 재선이 곧 노예제의 종말을 고하는 위대한 포고”라는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한때 인권 변호사였다고는 하나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에서 인권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철저한 김대중 추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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