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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에 대해:
열의 있는 일부 지지자들의 고언(苦言)

두루 알다시피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 강화와 이를 지원하는 한국 정부에 맞선 국가적 정치 투쟁이다.

그러나 이 투쟁을 평택범대위 조직자들은 평택(정확하게 말하면 대추리·도두리)이라는 특정 지역 투쟁으로 국한시키고 있다. 이는 “한반도 전쟁 위협”을 강조하는 조직자들의 주장과도 모순되는 관점이다.

물론 주민들의 권익과 관련한 현지 투쟁도 필요하다. 그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과 해당 지역 활동가들이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다. 더 효과적이고 중요한 것은 청와대와 미대사관이 있는 수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항의 시위는 서울에서 대규모로 벌어졌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평택 투쟁의 경우, 특정 지역 쟁점으로 몰고가다 보니 지역의 세부적인 상황 변화에 쉽게 운동의 분위기가 영향을 받고 있다. 대추분교가 철거되고, 군부대의 견고한 철조망이 세워지고, 기지확장을 위한 작업이 실제로 진행되면서 운동의 지지자들은 무력감을 느끼는 듯하다.

최근 평택범대위 조직자들은 재협상 요구를 부각시키고 있다. “재협상은 미국 정부, 한국 정부, 평택 주민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윈·윈·윈 전략이다”(6월 18일 평택역 촛불집회에서 김종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사무처장의 연설 중에서)

군부대가 들어서고 대추리 접근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대안이 없다고 보는 이 운동 참가자들은 재협상이 미군기지 확장을 막아낼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재협상 구호를 지지한다. 그러나 재협상을 강조하는 조직자들의 가정에는 몇 가지 위험한 요소들이 있다.

재협상

먼저, 재협상은 미군의 평택 주둔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 규모와 비용을 둘러싼 협상을 의미한다. 주둔 자체를 부정하고서야 협상이 성립할 수 없잖은가. 유영재 ‘평통사’ 정책위원장은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며 “그에 맞춰 평택기지의 규모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한겨레〉6월 8일치)

“한국측이 부담하기로 한 천문학적인 이전 비용 역시 위와 같은 미군의 역할 변경 및 감축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조정이 필요한 상황 변화가 발생하였다.”(〈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재협상의 법적 가능성에 대한 검토〉, 송상교(변호사, 민변))

재협상을 강조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요구와 주장을 낮추는 우를 범하게 만들 수 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자체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요구에서 후퇴하는 것은 운동이 정치적으로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에서 재협상을 강조하는 것으로 후퇴하면서 운동의 참가자들에게 그 이유와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 것은 대중을 기만하는 정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이 후퇴할 때인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가 아예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필리핀에서 주둔 미군을 철수시킨 사례도 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은 이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벌써부터 후퇴를 시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설사 불가피하게 협상해야 하는 때가 오더라도 어떤 운동이 (재)협상 자체를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협상은 사회 변혁에 못 미치는 정치운동의 불가피한 결과이지 주요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다시 힘주어 말하지만,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의 일부이다. 따라서 국제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나 평택범대위 조직자들은 전략적 유연성이 이미 실현되고 있는 이라크 점령과 자이툰 파병 문제에 대해서는 기피하고 회피하고 있다(전략적 유연성과 자이툰 파병의 관계에 대해서는 〈맞불〉2호를 참조하시오).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을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이라크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고리인데도 말이다.

제국주의와 국제주의

몇몇 백인 활동가들이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데도 연단에서 “노린내 나는 양키놈들” 운운하는 것(6월 18일 평택역 촛불집회)은 오히려 이 운동의 협소한 민족주의적 시야를 보여 준다.

게다가 주최측과 코드가 맞는 연사만 연단에 올리는 가운데 한 발언자는 연단에서 “우리가 ‘친북세력’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등 주최측의 분파주의는 운동의 저변을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좁히고 있다. ‘다함께’ 지지자들을 포함한 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전혀 ‘친북세력’이 아닌데도 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의 성공과 자신감은 ‘전략적 유연성’이 국제적 개념인만큼 국제 운동의 전진과 관계 있다. 이라크는 여전히 국제 반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조직자들은 우물 안 개구리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