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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의 대안

한미FTA 반대 운동 안에는 여러 대안이 있다. 첫째는 국민경제를 강화하자는 대안이다.

전 청와대 국민경제수석 정태인은 한미FTA가 아니라 “대외의존도를 줄이는 … 정책”을 택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미FTA 준비 과정을 “졸속”, “한건주의”, “삼성의 로비에 놀아난 결과”라고 비판한다.

정태인의 비판은 지배자들 사이에서 내분을 일으켜 우리 운동에 자신감을 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정태인은 FTA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유럽이나 중국과 FTA를 먼저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한·싱가포르FTA 체결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해영 교수는 한미FTA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폭로해서 한미FTA 반대론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의 대안은 위험하다. 이해영 교수는 한미FTA가 각 업종에 미칠 영향을 고찰하며 “한미FTA가 가져다 줄 여러 재앙적 효과 가운데 으뜸은 주권의 문제”라고 주장한다.(《낯선 식민지》)

미국에 맞서 국민경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은 한미FTA 협상을 “매국협상”이라고 부르는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매판관료”와 삼성·LG·현대 같은 초국적 자본이 나머지 집단의 이익을 미국에 팔아넘긴다는 주장은 실제 현실과 다르다. 대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 하청계열화돼 있는 중소기업 등 대다수 한국 자본가들이 한미FTA를 이윤 추구의 계기로 여겨 지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국가 강화 대안은 잘못된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한미FTA를 주로 주권의 문제로 접근하면, 결국 정부의 자주적 외교를 촉구하거나 ‘민족자본’, ‘피해를 보는 중소자본’ 등 자본 분파와의 협력을 조장해 계급 연합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한미FTA는 ‘외부 충격 효과’를 통해 한국 경제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내부 개혁(구조조정)을 목표로 삼는다. ‘민중적’ 또는 ‘자주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국익·국민경제·주권강화라는 견지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개입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대안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세계시장에서의 한국 경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자들을 제물로 만드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지역주의적 대안

둘 째는 지역주의적 대안이다. 동아시아 지역주의로 한미FTA에 맞서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태인은 한중FTA가 미국과의 FTA보다 강도가 낮은 FTA가 될 거라는 환상을 유포한다. 좌파민족주의경향 내에서도 한중일 동아시아 지역주의로 미국의 패권을 막자는 주장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과의 FTA에 반대하는 주장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한테 가끔 으르렁거려도 제국주의 국가이기는 매한가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자체 출판물 《한국의 반미, 대안은 있는가》에서 “자주적 세계화”의 모범 사례로 중국을 들며 “국유기업들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백만 명을 감원하는 과단성을 보여 주었다”고 칭찬했다. 중국과의 FTA는 바로 그런 과단성을 한국에서도 강요할 노동자·민중 착취 협정이다.

다국적기업들이 동북아 민중을 서로 경쟁적으로 착취하는 효과를 낼 자유무역협정이 동북아경제공동체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면 우리가 그런 경제공동체를 지지해야 할까? 우리는 유럽연합과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처럼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지역화의 대표 주자들이 부분으로든 전면으로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민중무역협정

셋째 대안은 민중무역협정이다. 민중무역협정은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의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식 대안’(ALBA:알바)의 일부이며, 현재 민중무역협정에 가입한 국가는 베네수엘라·볼리비아·쿠바 등 세 나라다.

민중무역협정에는 지지할 내용이 많다.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맞서 국가의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는 점이나 물과 전기 같은 기본 서비스가 기업의 이윤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선언도 백 번 옳다.

특히, 경쟁과 착취보다는 연대와 상호관계에 근거해야 한다는 민중무역협정의 기본 정신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민중무역협정은 약점도 함께 갖고 있다. 민중무역협정이 그 지역의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을 단결시키고 그들의 이익을 일관되게 옹호하는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보호무역주의를 민중무역협정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그 일환으로 볼리비아에서는 ‘볼리비아 국산품 애용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또, 민중무역협정에 따르면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소기업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다국적 대기업의 독점을 규제하지만 국내 중소기업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보호무역주의, 국산품 애용 운동, 중소기업 육성책 등은 볼리비아 내의 계급 갈등을 부차화할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기업주들에 대한 저항을 하지 못하게 마비시킬 수도 있다.

국제 연대

한 미FTA 반대 운동을 위한 진정한 대안은 FTA를 낳은 신자유주의 정책,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주의이다. 국제주의는 추상적인 덕목이나 상식이 아니다. FTA는 각국의 노동자들한테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받으라는 자본가들의 압력을 뜻한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직후부터 임금이 낮은 멕시코와 경쟁해야 한다는 이유로 임금을 억제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았다. 실제로, NAFTA가 체결되고 1년 뒤 미국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자 당시 하원의장 깅리치는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임금 경쟁력 하락”을 이유로 반대했다.

따라서 미국 대 한국이라는 국가(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FTA라는 이윤의 권리장전을 폐기처분하려는 국제적 연대가 매우 절실하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FTA 반대는 ‘쇄국’이라고 낙인찍는다. 이 정부에게 우리는 노동자들한테 이로운 국제 노동 기준을 수입하는 것은 왜 안 되냐고 주장해야 한다. 유전자조작식품과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면서도, 기업한테만 유리한 투자장벽 철폐를 강요하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의 자유 이동은 왜 규제하냐고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물 사유화를 막고 에너지 기업을 국유화한 볼리비아의 사례와 경험을 배우고 ‘수입’하기를 원한다.

국제주의자들은 전 세계에서 노동자·민중이 생산하는 재화와 용역이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무역은 자본가들에게만 이로운 무역 질서 때문에 고통을 입는 대다수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면 상황에서 반자본주의자들은 국가(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쌀과 영화’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물·전기·가스 등 대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공서비스의 시장화 반대 입장에서 한미FTA 반대 투쟁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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