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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총선 패배로 한일 관계는 변할 것인가

여당이 참패한 총선 직후 국내 언론들은 선거 결과가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아사히〉〈요미우리〉 등 주요 일본 언론들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야당의 견제로 윤석열 정부가 대일(對日) 정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여당 내에서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과는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분명 노골적인 친미·친일 외교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증폭시키면서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원인의 하나였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정치적 곤경에서 빠져나오거나 지지를 모으려고 ‘반일’ 제스처를 잠시 취한 일은 과거에 심심찮게 있었다. 가령 2012년 8월 이명박은 일본의 반발을 무릅쓰고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박근혜도 대통령 임기 초반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한동안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렇지만 총선 이후 한국의 대일 정책이나 한일 관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외 정책을 정하는 데서 대중의 의사가 지속적 요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대외 정책은 국제적 상황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권력자들은 민주주의보다는 제국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 지배계급의 이해득실이 무엇인지를 우선시해 핵심 대외 정책을 결정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지배계급은 자기 이익을 위해 미국·일본 제국주의의 협력자 구실을 해 왔고, 그러한 3국 협력 구조 속에서 한국은 지금까지 일본과 경제·안보 면에서 많은 이해관계를 공유해 왔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미국도 자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을 안정적 동맹 관계로 묶으려 애써 왔다. 그래서 과거사 문제 등 그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문제들에 적극 관여해 왔다. 2015년 미국의 당시 국무부 차관 웬디 셔먼은 한국 정치인들이 민족주의 감정을 이용해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으려 한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측의 빠른 타협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과 일본이 갈등을 빚더라도 1960년대 이후 양국의 협력 구도는 본질적으로 변함없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미사일 방어(MD)를 매개로 한 한미일 군사 협력이 진전됐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관여하에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했고, 2016년 탄핵 위기 속에서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체결을 강행했다.

총선에서 참패했지만, 윤석열은 대일 외교 기조를 좀체 수정하지 않을 것이다 ⓒ출처 일본 총리실

지금 한국은 미국과 중국 두 제국주의 강대국이 공공연히 적대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모호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여기고 미국에 좀 더 유착하는 선택을 했다. 미국을 선택함으로써 좀 더 확실한 듯한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얻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윤석열은 강제동원 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책임을 면제해 줬고,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 투기조차 반대하지 않았다.

윤석열의 대일 정책은 미국이 바라던 바였다. 미국은 미일 동맹을 주춧돌로 삼고 거기에 호주·인도·‍한국·‍아세안 등 동맹국들을 연결해, 중국에 맞선 미국 중심의 기존 지역 질서를 지키려 한다. 바이든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쿼드, 오커스,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필리핀 등 “지역 안팎의 연결망 구축”에 공들여 왔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일본을 핵심 파트너로 삼으며(오커스에 일본 참여는 현재 공식화 절차를 밟고 있다) 한국의 동참을 촉구해 온 것이다.

윤석열은 미국의 이런 요구에 적극 협력하며 한일 관계를 개선해 왔다.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이런 방향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춧돌

그렇다면, 총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어떨까?

역대 민주당 정부들은 ‘균형 외교’를 주창했고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우파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 기대를 배신하는 선택을 해 왔다. 민주당도 (흔히 위기 상황을 이용해) 지배계급의 낙점을 받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고, 따라서 대일 정책에서 ‘국익’(즉, 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잘 대변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가령 2019년 한일 갈등 때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앞장서서 ‘반일’ 투사 행세로 포퓰리즘 정서를 끌어올리며 진보·좌파 사회 운동을 포섭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문재인 정부는 한일 지소미아를 유지했고 위안부 합의도 폐기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 기간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중국에 집적거리는” 윤석열을 비판하고, 총선이 친일 후보를 거르는 “신한일전”이라고도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의 친미·친일 외교와는 차별화를 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도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으로 한국의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너무 많이 양보한다”고 비판해 왔지, 일본 제국주의와 결별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또한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미국 제국주의가 한 구실 문제도 회피해 왔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약에서 “한일 간 군사협력의 강화가 동북아 지역 안보 불안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일 군사 협력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재명 대표는 역대 민주당 정부들의 대일 외교가 (제국주의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대중에게) 배신적이었음을 비판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은 다시 집권해도 역대 민주당 정부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