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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참패에도 핵심 신자유주의 정책 지속하는 윤석열 정부

총선 바로 다음 날인 4월 11일, 윤석열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7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9퍼센트로 집계돼, 지난해 예산안에서 예상한 재정 적자 58조 원보다 29조 원이나 늘어났다. 국가채무 총액은 1126조 7000억 원으로, GDP의 50.4퍼센트를 기록해 최초로 절반이 넘었다.

문재인 정부의 ‘방만 재정’을 비난하며 ‘건전 재정’을 강조하고, 재정준칙(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퍼센트 이내 관리하는 것) 법제화를 추진해 온 윤석열 정부가 막상 대규모 재정 적자를 낸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사실이 총선에 악영향을 줄까 봐 국가결산 보고서를 법정 기한을 넘겨 공개하는 꼼수를 썼다.

정부는 2022년 재정 적자 117조 원보다는 30조 원 줄었다고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환율 안정에 사용해야 할 외국환평형기금에서 20조 원을 가져다 사용하고, 통상 예산대로 집행한 후 추후년도에 조정하는 지방교부세·교부금도 18조 6000억 원이나 앞당겨 감액했다. 이 사실을 감안하면 지난해 재정 적자는 오히려 더 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평소에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던 것이 무색하게 총선 전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생토론회’를 열어 수십조 원어치의 재정 지출과 세금 감면 공약을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을 유지해야 한다며 재정 지출을 대규모로 삭감해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키워 왔다. 공무원 실질임금을 삭감하고, 공공요금을 인상하고,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지방교부세·교부금 대폭 삭감도 복지와 공공서비스 악화를 뜻한다. 지방정부 예산은 중앙정부보다 복지와 공공서비스에 사용되는 비율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지출을 억제했음에도 경기 악화로 인한 법인세 감소 등으로 세수가 부진해 불가피하게 적자가 커졌다고 해명한다. 실제로 지난해 국세수입은 344조 1000억 원으로, 2022년(395조 9000억 원)보다 51조 9000억 원이나 덜 걷혔다.

그러나 단지 경기 악화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도 세입 감소에 한몫했다. 정부가 5년간 60조 원에 달하는 법인세 등 부자 감세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감세와 ‘건전 재정’으로 기업 경기가 회복되면 경제 성장과 세입 증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런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자본주의 주요국 모두에서 추진됐지만 약속한 바는 이뤄지지 않고 부채와 불평등만 커져 왔다.

윤석열 정부가 총선에서 참패하자 재정 긴축 기조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권력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주류 언론들은 이를 우려하며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총선 직후 나온 대통령의 입장문이나 정부·대통령실의 인사 개편 하마평을 보면 윤석열이 기존의 정책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벌써부터 총선으로 연기돼 온 전기·가스 요금이 다시 인상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과 환율 상승으로 가스공사와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가 크다며 말이다.

국민연금 개악

한편, 윤석열 정부는 자신들이 강조해 온 노동·연금·교육 ‘개혁’ 중 먼저 연금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총선 직후인 4월 13일에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개최한 연금개혁 숙의토론회가 생방송으로 방영됐다. 공론화위원회는 4월 21일 마지막 토론 후 수렴된 의견을 국회 연금특위에 보고할 예정이다.

현재 숙의토론에는 두 가지 안이 올라가 있다. 소득의 9퍼센트인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퍼센트까지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행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늘리는 1안과, 보험료율을 12퍼센트까지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현행 40퍼센트로 유지하는 2안이 그것이다.

1안은 국민연금 지급액을 조금 늘리자는 것이기는 하지만, 두 안 모두 국민연금 보험료를 대폭(33퍼센트 또는 44퍼센트) 올려야 한다는 안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 보험료 때문에 허덕이는데 앞으로는 매달 10만 원가량 더 내라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 ‘개혁’을 강조하면서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앞으로 30년 후인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되면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며 말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낸 만큼 받아 가는 적금 같은 것이 아니다. 국가가 보통 사람들의 노후 생활을 불가피하게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적자 운운할 것이 아니라 정부 재정을 투입해 국민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주들이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우려하는 것은 기업의 세금 부담 증대를 우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쟁점은 국민연금 지급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이다.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도 정부와 기업주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진다면 노동자들(현 세대든, 미래 세대든)의 부담이 늘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정부나 기업주들이 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어 하는 까닭은, 연금 지급으로 늘어나는 재정 적자를 메울 기업 세금 부담이 늘어날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민주노총·한국노총·진보당·정의당 등 주요 개혁주의 조직들은 (국민연금 지급액을 “개선”해야 한다며) 보험료 인상에 찬성하고 있다.(이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 앞서 언급된 1안인 듯하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주들과 주류 언론이 퍼뜨리는 기금 고갈론을 부분적으로라도 수용해 보험료 인상 불가피론을 받아들이면, 국민연금의 재원을 어느 계급으로부터 거둘 것인지 하는 진정한 문제가 흐려지게 된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악화되는 세계경제 상황 속에서 다른 모든 자본주의 정부들처럼 재정 긴축과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으로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 주려 한다.

민주당은 지난해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내놓는 최악의 개악안에는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민주당이 흔히 그랬듯이) 일부 완화된 개악안을 통과시키는 데 그쳤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국민연금 개악을 주도했다.

이런 점들은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개악을 저지하는 데 일관되리라고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어 복지 지출을 늘리고, 기업주들의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을 높이라고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싸워야 노동자와 기타 서민층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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