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즉 자유무역협정은 정확히 말해 ‘규제 없는 국제 교역’이다. 이 때 규제 폐지는 자본의 이윤 추구를 방해하는 장벽 일체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를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려 한다.

그렇게 봤을 때, 한미 양국 간에 쟁점이 되고 있는 분야 ― 쌀 개방 등 ― 보다 한미 양국이 악수한 분야 ― 공공서비스 사유화, 공공 제도 파괴, 노동기본권 축소, 광우병 쇠고기 도입 같은 식품안전 위협 등 ― 가 진정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고로, 한미FTA를 쌀과 영화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매우 협소하다. 오히려 노동계급 전체의 경제적·정치적 삶이 걸린 문제다.

WTO의 모태가 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은 쌀 문제가 핵심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한국 운동은 국제 반WTO 운동에 매우 굼뜨게 반응했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는 GATT(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가 포괄하지 못하는 비제조업 분야 ― 보험·건강·교육·건축·회계 ― 등 서비스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역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미국 금융 산업들 특히 아메리칸익스프레스나 시티코프 같은 회사들의 엄청난 압력이 없었다면, GATS[서비스무역에관한일반협정]도, 따라서 우루과이라운드도, WTO도 없었을 것이다.”(전 WTO서비스국장)

한미FTA는 WTO가 만족스럽게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이 분야의 자유화를 추진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는 운동의 협소한 이해를 이용하려는 듯하다. 정부는 쌀을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품목으로 설정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쌀이 한미FTA 반대 운동의 초점이 될 경우 자칫 정부의 분열 술책에 말릴 우려가 있다.

전략

운동 일각에는 FTA 같은 세계화 대세를 막을 수 있겠냐는 회의감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도 세계적 대세가 됐다.

자본의 세계화는 저항의 세계화를 낳았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투쟁들은 서로를 감염시키고 있다. 치아파스와 시애틀은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거대한 CPE 반대 투쟁은 그리스 학생 운동을 고무했고, 그리스 학생 운동은 우파 정부를 굴복시켰다. FTAA(미주자유무역협정) 반대 투쟁 등 라틴아메리카 운동들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는 세계 민중에게 이정표가 됐다.

7월 협상을 저지하지 못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조급증도 피해야 한다. 이런 조급증은 종종 대중과 괴리된 ‘소수파’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그런 식으로 대중을 대리하는 ‘소수파’ 행동은 “현장 노동자들이 왜 FTA를 저지해야 하는지 아직까지 공론화되지 못한 상황”(7월 1일 ‘한미FTA 저지 활동가 긴급 토론회’에서 한 부산 활동가가 한 말)을 고착시킬 뿐이다.

오히려 7월 12일 시위 규모를 되도록 크게 만들고, 이를 현장 노동자들 속으로 더 깊고 더 넓게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운동이 전략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문제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

지금 운동 안에는 한미FTA가 아니라(또는 한미FTA 이전에) 한중FTA 등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식으로 ‘좋은’ FTA와 ‘나쁜’ FTA를 나누는 것은 ‘좋은’ 신자유주의와 ‘나쁜’ 신자유주의를 나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강요하는 국제 압력에서 벗어나 진보적 국내 정책과 국가 경제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국가 경제 주권 수호론).

실제로, WTO·IMF 같은 국제 금융 기구들이나 자유무역협정이 자본의 편에 서서 국제 경제를 관리하고 자본의 세계화 과정을 가속시키는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공공서비스가 공격받을 때, 우리는 방어해야 하고 그런 서비스를 확대하고 개선하기 위해 국가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 진보적인 조세 제도를 통해 그런 서비스를 공급하고 뒷받침해야 한다. 그리고 부자들의 부와 소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해야 한다.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의 석유·가스 시설 국유화 조처를 지지해야 하는 까닭이다. 사실, 이 산업들의 국유화는 우파 대통령 카를로스 메사를 쫓아낸 2005년 5∼6월 민중항쟁 당시 핵심 요구였다.

그러나 국가 산업 정책을 강화한다고 해서 세계 자본주의의 기본 동력 ― 존재하는 것을 모두 상품화하기 ― 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논리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계획 경제 ― 사회주의 ― 를 진지하게 의제에 올려놓아야 한다. 물론 옛 소련의 몰락 때문에 계획 경제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탈린주의는 정확하게 말해 관료적으로 중앙집중화한 명령경제였다.

사실, 계획을 거부한다는 것은 결국 시장 경제를 인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장은 결코 다수의 이익을 위해 민주적으로 재조직될 수 없다.

지금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미국에 맞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함으로써 대안적인 경제 조직 방식 문제가 의제에 올라 있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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