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 미국의 다음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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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 미국의 다음 표적
이수현
2월 14일 영국의 일간지
사실, 9·11 테러 직후부터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전직 CIA 국장 제임스 울시는 9·11 테러 용의자인 알카에다 조직원과 이라크 정보기관의 고위 관료가 프라하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울시가 증인으로 내세운 체코 관리는 이를 부인했다. 심지어 미국의 전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영국 정부조차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시인해야 했다.
또, 탄저균 편지 소동이 일어나자 부시는 이를 이라크와 연관시키려 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그 탄저균의 출처가 바로 미국 군부 자신이었음을 시인해야 했다. 그러자 국방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는 아예 증거 따위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우리
이런 입장은 “매파”인 울포위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던 상원의원 조지프 리버먼도 “후세인 정권이 타도되기 전에는” 대테러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새로운 히틀러”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이 한때는 미국의 동맹 세력이었듯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도 1990년 이전까지는 미국의 맹방이었다. 약 1백만 명이 사망한 1980∼1988년의 제1차 걸프전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후세인을 악마로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에게는 “악의 제국”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악마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세인을 “새로운 히틀러”라고 규정했다. 후세인이 유엔 결의안에 따라 쿠웨이트에서 철수한다는 데 동의했지만, 미국은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1월, 쿠웨이트의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러나 쿠웨이트에는 지킬 만한 민주주의가 없었다. 한 달 반 동안 미국은 이라크에 8만 8천5백 톤의 폭탄을 퍼부었다. 수많은 이라크 사람들이 죽었고 국토는 초토화돼 “석기 시대로 되돌아갔다.”
경제 제재
걸프전이 끝난 공식 시점은 1991년 2월 말이었다. 그러나 훨씬 더 치명적인 전쟁
유엔이 이라크 국민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는, 식량 수입을 위한 석유 수출 프로그램은 이라크가 석유 수입의 3분의 2만 ‘인도주의적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부패한 쿠웨이트 왕가와 서방 석유회사들에 대한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물론 유엔의 “경비”를 충당하는 데에도 쓰인다.
최근에 기밀 해제된 미국 국방정보국
폭격
제2차 걸프전이 끝나자 미국은 이라크 북부와 남부에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이라크의 비행기는 물론 헬리콥터조차 그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후세인의 억압을 받는 북부의 쿠르드족과 남부의 시아파 무슬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게 표면상의 이유다.
그 뒤 미국과 영국의 비행기들은 이 지역을 순찰하면서 수시로 폭격을 가했다.
2000년 12월 말에는 1만 명 이상의 터키군이 이라크 북부를 침공해 수많은 민간인과 쿠르드 노동자당
가능성
부시는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했다. 부시가 “악의 축” 이라크를 “대테러 전쟁”의 2단계 표적으로 결정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이제 시간 문제인 듯하다. 그러나 미국과 이라크의 3차 걸프전은 11년 전의 전쟁과는 다른 양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11년 전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대중적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이 존재한다. 부시는 미국 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더 큰 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후세인은 주변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석유를 판매한 돈으로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 이란 등과 관계를 개선해 왔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무장조직 대원들이 사망하면 그 유족들의 뒤를 봐 주었다. 2차 걸프전 때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경험에서 나름대로 배운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던 아랍연맹이 “악의 축” 발언을 비난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우리가 보기에 악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목격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입장은 미국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중동 민중 속에서 널리 퍼진 반미·반이스라엘 정서가 미국의 전쟁을 곤경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9·11 테러 자체가 아랍 민중의 반미 감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