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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 미국의 다음 표적

이라크 - 미국의 다음 표적

이수현

2월 14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이 올 하반기에 이라크를 공격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또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이번 공격에 20만 명의 미군이 동원될 것이다.”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전쟁 계획서를 부시에게 이미 전달했다. 미국 국방장관 럼즈펠드의 수석보좌관인 리처드 펄은 이라크가 무기 사찰을 허용하더라도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음을 강력히 내비쳤다. 가당치 않게도 “비둘기파”라고 불리는 콜린 파월도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독자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9·11 테러 직후부터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전직 CIA 국장 제임스 울시는 9·11 테러 용의자인 알카에다 조직원과 이라크 정보기관의 고위 관료가 프라하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울시가 증인으로 내세운 체코 관리는 이를 부인했다. 심지어 미국의 전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영국 정부조차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시인해야 했다.

또, 탄저균 편지 소동이 일어나자 부시는 이를 이라크와 연관시키려 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그 탄저균의 출처가 바로 미국 군부 자신이었음을 시인해야 했다. 그러자 국방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는 아예 증거 따위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우리[미국]를 파괴하고 싶어하고 인접국들을 테러로 위협하는 이 정권[후세인 정권]을 타도할 필요가 있다. 그[후세인]와 같은 하늘 아래서 사는 것은 가장 위험한 짓”이라고 말하면서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매파”인 울포위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던 상원의원 조지프 리버먼도 “후세인 정권이 타도되기 전에는” 대테러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새로운 히틀러”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이 한때는 미국의 동맹 세력이었듯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도 1990년 이전까지는 미국의 맹방이었다. 약 1백만 명이 사망한 1980∼1988년의 제1차 걸프전(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두 나라 모두에게 무기를 팔아먹었다. 그러다가 이란이 승리할 조짐이 보이자 재빨리 이라크를 편들었다. 미국의 경비견 팔레비 왕정을 타도하고 들어선 이란의 이슬람주의 정권이 승리하도록 놔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미국은 후세인이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1988년에 후세인이 이라크 내 쿠르드족 5천 명을 독가스로 살해했을 때 이를 비난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오히려 그 두 달 뒤에 미국의 벡텔 사는 이라크에서 겨자가스(겨자처럼 매운 가스로 1차대전 때 독일이 처음 사용한 독가스)와 기화폭탄을 생산할 석유화학 공장 건설 계약을 따냈다. 미국의 지원 덕에 제1차 걸프전에서 승리한 후세인은 기고만장해졌다. 후세인은 미국의 후원을 과신한 나머지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이는 후세인의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었다. 쿠웨이트 침공 4개월 전에 미국의 상원의원 대표단은 후세인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대표단은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의 신임을 전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후세인을 악마로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에게는 “악의 제국”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악마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세인을 “새로운 히틀러”라고 규정했다. 후세인이 유엔 결의안에 따라 쿠웨이트에서 철수한다는 데 동의했지만, 미국은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1월, 쿠웨이트의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러나 쿠웨이트에는 지킬 만한 민주주의가 없었다. 한 달 반 동안 미국은 이라크에 8만 8천5백 톤의 폭탄을 퍼부었다. 수많은 이라크 사람들이 죽었고 국토는 초토화돼 “석기 시대로 되돌아갔다.”

경제 제재

걸프전이 끝난 공식 시점은 1991년 2월 말이었다. 그러나 훨씬 더 치명적인 전쟁(경제 제재)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경제 제재로 그 동안 50만 명 이상의 이라크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하루에 약 2백 명씩 죽어 간다. 이라크 군부가 “이중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품목들은 모두 수입 금지 대상이 됐다. 수돗물 정화에 필요한 염소, 앰뷸런스, 연필, 비료, 살충제, 수도 펌프…. 그 목록은 끝이 없다. 그 때문에 이라크 사람들은 치료 가능한 질병이나 영양실조에 시달리다 그냥 죽어야 한다.

유엔이 이라크 국민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는, 식량 수입을 위한 석유 수출 프로그램은 이라크가 석유 수입의 3분의 2만 ‘인도주의적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부패한 쿠웨이트 왕가와 서방 석유회사들에 대한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물론 유엔의 “경비”를 충당하는 데에도 쓰인다.

최근에 기밀 해제된 미국 국방정보국(DIA)의 문서들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경제 제재가 낳을 결과들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1991년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라크의 수돗물 정화 작업은 특수 설비와 화학 약품의 수입에 달려 있다. …설비와 약품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민 대다수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염병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종 질병이 창궐할 것이다.”미국의 하원의원 70명도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쓸 정도였다. “현대 역사에서 가장 포괄적인 수입금지 조치가 9년 넘게 계속됐지만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거나 국제 규범에 순응하도록 만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경제와 국민들의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폭격

제2차 걸프전이 끝나자 미국은 이라크 북부와 남부에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이라크의 비행기는 물론 헬리콥터조차 그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후세인의 억압을 받는 북부의 쿠르드족과 남부의 시아파 무슬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게 표면상의 이유다.

그 뒤 미국과 영국의 비행기들은 이 지역을 순찰하면서 수시로 폭격을 가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이라크 북부[와 남부]의 ‘비행 금지 구역’을 8년 간 운용한 끝에 이제 군사 목표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전투기의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의 41퍼센트는 이라크 민간인들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모두 1천5백 명에 가까운 이라크 민간인이 사망했다. 1천3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작년 6월 19일 텔 아페르 축구장에 대한 폭격으로 23명이 사망했다. 대부분은 17세 이하의 청소년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이런 폭격이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전투기들은 비행 금지 구역을 순찰하다가도 터키 공군이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을 폭격하려 하면 재빨리 귀대해야 한다. 쿠르드족을 폭격하려는 터키 공군을 위해 길을 비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전투기 조종사들조차 분노를 터뜨린다.

2000년 12월 말에는 1만 명 이상의 터키군이 이라크 북부를 침공해 수많은 민간인과 쿠르드 노동자당(PKK) 투사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쿠르드족을 “보호”한다던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들은 이를 전혀 저지하지 않았다.

가능성

부시는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했다. 부시가 “악의 축” 이라크를 “대테러 전쟁”의 2단계 표적으로 결정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이제 시간 문제인 듯하다. 그러나 미국과 이라크의 3차 걸프전은 11년 전의 전쟁과는 다른 양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11년 전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대중적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이 존재한다. 부시는 미국 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더 큰 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후세인은 주변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석유를 판매한 돈으로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 이란 등과 관계를 개선해 왔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무장조직 대원들이 사망하면 그 유족들의 뒤를 봐 주었다. 2차 걸프전 때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경험에서 나름대로 배운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던 아랍연맹이 “악의 축” 발언을 비난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우리가 보기에 악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목격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입장은 미국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중동 민중 속에서 널리 퍼진 반미·반이스라엘 정서가 미국의 전쟁을 곤경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9·11 테러 자체가 아랍 민중의 반미 감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인티파다)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승리는 중동의 피억압 민중 속에서 반미 감정을 더욱 확산시킬 것이다. 여기에다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더해진다면 부패하고 무능한 아랍 정권들은 미국과 자국 민중 사이에서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래로부터의 대중의 불만을 흡수할 만한 정치·사회적 장치가 거의 없는 나라들에서는 급작스런 반란과 격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중동에서 미국의 지배 질서를 무너뜨리고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는 과정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