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48년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말은 그 뒤 우리 운동의 핵심 슬로건이 됐다.

이 말에는 두 가지 근본적 사상이 가장 간명하게 결합돼 있다. 첫째, 우리 운동은 특정 계급의 운동, 즉 노동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둘째, 우리 운동은 국제적 운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 노동자들은 우리의 형제·자매 들이라는 것이다. 첫번째 사상은 이 시리즈의 두번째 칼럼[〈맞불〉3호 ‘노동계급의 혁명적 구실’]에서 다뤘다. 이 칼럼에서는 국제주의 원칙을 다루겠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 이 말도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데, 이 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애국주의나 민족 문제에 대한 지배적인 사상, 즉 지배계급의 사상과 완전히 결별했음을 보여 준다. 전 세계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에게 주입되는 사상은 우리가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에 충성해야 하고 우리 나라에 근본적 일체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문화·스포츠·정치인들 모두 이런 사상에 기여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한국·영국·미국·중국 등등) 산업·국가대표팀·군대 등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부자연스런 일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사실, 민족주의는 ‘자연스런’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의 거의 대부분 기간에 사람들에게 민족성 따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민족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4~5백 년 전에 유럽에서 등장했고,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는 겨우 지난 세기에 나타났다. 이것은 민족주의가 자본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민족자결권

자본주의 자체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도 처음에는 진보적이었다. 민족주의는 봉건제의 절대왕정, 제국, 소규모 공국(公國) 들에 대항하는 표어 구실을 했다. 프랑스 혁명 때 민족주의가 어떤 구실을 했는지 보라. 그 뒤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도 반동적이 됐다. 그래서 노동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을 흐리고, 착취자들과 피착취자들 사이의 일체감이라는 그릇된 의식을 만들어내는 주된 이데올로기가 됐다. 또, 민족주의는 인종차별주의와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경쟁자나 적으로 여기게 만들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는 구실을 한다.

따라서 민족주의와 결별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상과 결별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을 구분하는 핵심 가운데 하나다. 개량주의자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에 동의한다(그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대부분 동의하고 그것을 노동자 운동에 주입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주의 대(對) 민족주의 문제는 전시에 가장 두드러진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사회주의 운동은 시험에 빠졌다. 그래서 대다수 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의 개량주의 지도자들과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분열했다. 전자는 제국주의 학살을 자행하는 ‘자국’지배계급을 지지했고, 후자는 러시아의 레닌과 트로츠키, 독일의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처럼 전쟁에 반대했고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리프크네히트의 격언에 충실했다.

대체로 말해서, 전쟁에 대한 국제주의적 태도는 거대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전쟁을 비난하고 자국 지배계급 전복과 교전국 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같은 제국주의 정복 전쟁에서 국제주의자들은 전쟁을 비난할 뿐 아니라 민족해방 전쟁을 벌일 권리 같은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물론 각각의 전쟁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항상 구체적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민족’해방을 지지하는 것은 국제주의 원칙을 어기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지하는 것은 민족 억압에 맞선 투쟁이지 민족주의가 아니다. 그 목표는 우리의 공동의 적인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전 세계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의 자발적 단결을 촉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제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세계 체제이고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오직 국제적 투쟁으로만 승리할 수 있다. 혁명은 한 나라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혁명을 완수하려면 혁명이 확산돼야 한다. 사회주의 사회는 한 나라에서 건설될 수 없다. 그 사회는 경제적·군사적 반혁명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머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점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미 1847년에 《공산주의의 원리》에서 엥겔스는 “이 혁명[공산주의 혁명]이 어느 한 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가?” 하고 물은 뒤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다. 세계 시장을 만들어낸 대규모 산업 때문에 이미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은 …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과 무관하게 살 수 없다.”

러시아의 경험은 이 점을 실천에서 입증했다. 1924년 스탈린이 ‘일국사회주의’정책을 채택한 것은 스탈린이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했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였다. 국제 혁명을 포기한 옛 소련 관료 집단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서방 자본주의와 경쟁하기 위해 자국 노동계급을 착취하지 않으면 안 됐다.

오늘날 세계화와 지구온난화의 시대에 국제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고 현실과 관련이 있다. 국제주의는 국내에서 난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방어하는 데 적용돼야 하고, 다국적기업들에 맞선 노동조합 투쟁에, 부시와 블레어의 ‘테러와의 전쟁’에, 국제적인 반자본주의·사회주의 운동에 적용돼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보존하고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