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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철도를 멈출 수 있다”

“우리는 철도를 멈출 수 있다”

이정원

철도 노조를 비롯한 6개의 공공부문 노조가 사유화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는 즉시 곧바로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을시 2월 25일 연대 파업에 들어갈 거라고 선언했다.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는 사유화 및 해외매각 철회, 인력감축 중단 및 인력 증원, 노동조건 개선, 노정교섭 실시, 그리고 사유화에 대한 대국민 TV 토론회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공투본은 민주노총의 허영구 직무대행과 한국노총의 이남순 위원장에게 정부와의 협상을 위임했다. 국가기간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의 선봉에는 철도 노조가 있다. 철도는 사유화를 앞두고 진행돼 온 구조조정 때문에 고용·노동 조건 모두가 심각하게 후퇴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철도 기능직만 6,783명이 감축돼 노동 강도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여성 노동자들 몇 명이 육아휴직이라도 내면 한 달에 한 번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철도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파업 참여 결의 서명을 하던 노동자는 말한다. “파업하다 잘리는 게 민영화돼서 잘리는 것보다 낫지.” “우린 개,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 1백년 전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를 게 없다.” ‘세계 최장시간’ 근무 노동자(월 270∼300시간)의 항변이다. 오죽하면 건교부 국정감사 때 “철도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70년대 청계천 여공들을 연상케 한다.”고 개탄하는 의원이 있겠는가. 한 노동자는 이번 파업을 “크게 보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싸움이다.”고 규정했다. “철도를 사유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유화로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아. 걔들은 자기 고급 자가용 타고 다니지 열차 타고 안 다니거든. 그러니 열차 사고로 피해보겠어 아니면 요금이 올라 걱정하겠어. 이거 잘 해서 좋은 자리 하나 꿰차면 그만이지.”한 역의 승무원들은 준법 투쟁의 일환으로 ‘반복 승무 거부’ 운동을 조직했다. 정비창의 노동자들은 잔업 거부를 준비하고 있다. 정비창은 열차의 중대한 결함을 보수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철도 조합원 가족들은 ‘가족 대책위’를 조직하고 있다. “파업 때 출근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일에 파업 참가자 가족만큼 확실한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요.”

한 활동가는 파업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천, 의정부, 분당, 수원 등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국철이 멈추는 것만으로도 그 타격이 어마어마하죠. 서울로 매일 통근하는 사람 수가 얼만데요.” 얼마 전 영국 철도 회사인 SWT(사우스웨스트레인) 노동자들은 2십만 명의 정기 통근자들이 이용하는 철도를 멈춰 하루에 150만 파운드(약 3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 블레어와 SWT 경영진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파업의 전술에 대해 주장했다. “파업에 들어가면 수색 기지에 모이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요. 수색 기지에 있는 차량에만 2만 명이 들어가요. 이 추운 날에 천막 안 쳐도 돼요. 침탈 대비에도 효과적이에요. 우리를 끌어내려면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와야 하는데 유리창 부수면 운행을 못하죠. 또 유리창 보수할 사람들이 다 타고 있는데 어쩌겠어요. 그리고 우리는 수색 기지를 손바닥 보듯이 훤히 잘 알고 있는 것도 유리한 점이죠.” 이것은 공장으로 치자면 공장 점거 전술이다. 게다가 이 방법은 여러 면에서 효과적이다. 노동자들이 산개하지 않고도 한 곳에 집결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지 중에 기지를 점거하는 것이기에 파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경찰력에 맞서 파업 대오를 방어하기 효과적이다. 노동자들의 자신감만 충만하다면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다.

대체 인력 투입은 많은 노동자들이 우려하는 문제다. 철도는 고유한 성격상 직종별 분리 외에도 다른 분리가 있다. 바로 기능직과 일반직의 분리이다. 이것은 채용 방법에 따라 결정되는데 전체 3만 명 중 약 4∼5천 명 정도가 일반직이다. 일반직은 기능직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똑 같은 일을 하고 처우도 다르지 않다. 다만 승진이 좀 더 이로운 정도다. 그러나 일반직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반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하기란 여간 높은 자신감 아니고서는 쉽지 않다. 정부는 이런 점을 이용해 일반직 노동자들을 대체 인력으로 투입해 파업 파괴자 노릇을 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일반직 노동자들의 연대를 끌어내는 것은 철도 파업이 승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연대 파업

노동자들의 파업 선포에 정부는 “민영화 추진은 정부의 손을 떠나 법안 통과 여부에 대한 정치권의 최종 판단만 남아있다”며 국회에 공을 떠넘기고 있다. 그러나 여·야당 국회의원들 역시 사유화 시기와 방법을 부분적으로 문제삼을 뿐 사유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의회에서 다수를 점하는 한나라당이 사유화를 반대할리는 만무하다. 정부는 공기업 사유화를 철회할 의사가 없다. 기획예산처는 올해 안으로 한국통신 정부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5개 화력 발전 시설 매각을 추진하는 등 담배인삼공사, 가스, 지역난방, 이렇게 5개의 공기업 사유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한국통신과 전력, 금융의 구조조정은 올해 안에 최대한 밀어붙이려고 한다. 노조 지도부의 투쟁 회피주의에 힘입어 노동자들의 최초의 저항을 그럭저럭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철도는 노동자들이 저항이 만만치 않아 쉽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작년 12월 4일 국무회의에서 철도 사유화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국회 통과까지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정부는 소망은 있으되 밀어붙일 능력이 충분하지 못해 여전히 계속 눈치를 살피며 기회만 노리고 있다. 정부가 철도와 다른 공공부문을 분리시켜 저항을 피해가려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더 많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기 위한 술책이다. 철도 노조도 이 점을 간파하고 이번에는 임시 국회 때 통과가 유보되더라도 끝장을 보겠다고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마침 2월 15일 철도·가스공사·발전산업 노조는 기자회견에서 “만일 정부가 3개 노조의 요구 중 어느 하나라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공동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2년 전 한국통신·전력·철도·도시 철도 노조가 각각 따로 파업을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한층 진보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모두가 함께 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무엇보다 지금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는 이를 충분히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명 한 명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목 자르고 지방으로 전출시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힘을 모으면 열차를 멈출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고 있어요. 이 때문에 우리는 파업을 선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