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해결책도 상당히 달라진다고 지적한다(이 글은 2003년 10월에 씌어졌다)

다음 달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사회포럼에서 한 가지 용어가 유행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다. 어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국제 자본주의 체제와 동의어로 사용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 체제의 현재 국면(흔히 '세계화'라고 부르는)을 일컫는 말로 사용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각국 정부가 선택하는 특정한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업 세계화 반대 운동의 대응도 달라질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와 동의어라면 혁명적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각국 정부의 특정 경제정책일 뿐이라면 온건한 개혁으로 족할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아딱(ATTAC: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의 지도자인 베르나르 까쌍은 국제 금융거래에 대한 토빈세 과세만을 요구하는 반면, 주류 경제학계의 이단자들은 케인스주의 국가 개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중 선동이 아니라 여론 주도층의 생각 바꾸기에 의존한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경제 이데올로기로, 자본주의 체제를 위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일련의 처방전을 각국 정부에 제공한다고 표방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전까지 자본가들의 사고를 지배한 자유시장 즉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와 동의어였다. 그것은 국가 개입이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것은 단 하나의 주요 자본주의 나라, 즉 영국의 상황에만 들어맞았다. 그것도 1840년대 말 곡물법이 폐지된 뒤 비교적 짧은 시기에만 들어맞았다.

영국 자본주의는 경쟁자들보다 일찍 공업화에 성공했고, 자유무역은 영국 자본주의가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계속 밀어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영국 자본주의가 국가 개입을 신뢰하지 않았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군사력을 사용했다. 대영제국 안에서 영국 기업인들은 다른 경쟁자들보다 확고한 우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은 자유시장 정책을 버리고 자국의 보호무역주의 조처들과 제국주의적 강탈 정책에 의존했다.

영국 지배계급은 자신의 지배력이 위협받자 그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더욱 국가 개입에 의존했다. 1913년 자유당 정부는 앵글로-페르시아 석유회사(영국석유회사, 즉 BP의 전신)를 국유화했고, 1930년대에 보수당 정부는 주요 항공사들과 송전(送電)회사들을 국유화했다. 비록 여전히 자유방임이 공식 이데올로기였지만, 국가독점자본주의와 그 쌍둥이인 제국주의가 현실이었고 그것은 경제의 군사화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데올로기

제2차세계대전과 그 이후 진행된 군사화의 한 가지 결과가 일시적 완전고용이었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가 나서서 노동계급의 불만을 달랠 필요도 있었다. 전쟁이 한창일 때 보수당 정치인 퀸틴 호그(훗날의 헤일셤 경)는 이렇게 썼다. "국민에게 개혁을 제공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1940~50년대에 케인스주의 이론은 국가 개입에 집중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계획이 낡은 자유시장 자유주의를 대체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반영하는가 하면 또한 왜곡하기도 한다. 개량주의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본말을 전도시켜 완전고용과 복지혜택을 군사적 야만주의의 부산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선행 덕분이라고 보았다.

케인스주의의 막간극은 겨우 30년 동안만 지속됐다. 1970년대에 군비 지출과 국가 개입으로도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위기 국면이 시작됐다. 국민국가들은 점차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자본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가장 야만적인 수단을 사용해도 그럴 수 없었다.

케인스주의 이데올로그들은 국가가 개입하면 자본주의가 모든 계급에게 이롭게 "작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위기가 닥치자 난처해졌다. 그런 주장에 고무된 사람들이 위기의 폐해를 피하기 위해 훨씬 더 급진적인 조처들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정부가 그런 조처들을 실행할 수 없다면 아마 노동자들이 직접 그런 메커니즘들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 이데올로그들은 낡은 자유시장 자유주의로 대거 복귀했다. 그리고 국가 개입 자체가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즉 '신'자유주의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 검증을 회피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프로젝트였다.

국영 기업과 서비스를 해체하면 노동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위기에 처한 체제 하에서 자신들의 몫을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는 길은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놓고 다른 노동자들과 경쟁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낡은 국가 독점체들을 인수한 자본가들은 직접적인 물질적 혜택도 얻었다. 체제 전체의 위기 경향이 더 심해지더라도 사유화는 헐값 매각을 통해 특정 자본가 집단이 손쉽게 이득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국제적으로, IMF·세계은행·WTO는 과거에 중소 규모 국가의 자본가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커니즘들을 확실히 해체시켜, 세계 최강의 기업들이 각국의 시장을 장악하고 기업체들을 인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국가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체제 전체가 위기를 겪지 않는 동안에 번창한 방식들을 통해서는 대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나머지 세계의 자본가들에게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흔히 그 결실을 마음껏 향유한 것은 바로 그 강대국들이었다.

물질적 이해관계, 즉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받는 축적 압력 때문에 자본들은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가장 큰 자본들은 국가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비록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다른 자본들이나 다른 국가들에 맞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에서 싸워 줄 다른 세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 내에서 득세하는 집단은 자신들을 신자유주의자(네오콘)들이 아니라 신보수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자유시장이라는 신자유주의 복음은 남들에게 강요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약탈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철강 관세에 의존하고, 농업 보조금을 고수하고,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차지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우엔 신자유주의를 이용하는 거대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우리는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교육’에서 대중 행동으로 나아갈 때만, 마르크스의 말을 빌면, 주장의 힘이 힘의 주장으로 바뀔 때만 우리는 그들을 물러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이수현


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단체인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Socialist Review) 2003년 10월 호에 실린 글(http://www.socialistreview.org.uk/article.php?articlenumber=8603)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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