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닐은 197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았고 그 뒤 오랫동안 그 곳 상황을 추적해 왔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소식통들과 미국·영국·파키스탄의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이 글을 썼다.

영국군·미군·나토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9·11 직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다. 당시 미국은 지상군 투입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했고, [이 때문에] 탈레반과 싸우고 있던 부족 집단들인 북부동맹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인들은 23년 동안 내전과 옛 소련의 침략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1백만 명 이상이 죽고 1백만 명은 불구가 됐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이상이나 이슬람주의 저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양측 지도자들이 모두 엄청나게 잔혹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한 탓에 거의 모든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오로지 생존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탈레반을 위해 싸우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북부동맹의 군대도 싸우려 하지 않았다. 미국은 엄청난 폭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카불을 장악할 수 없었다.

2001년 말에 미국, 파키스탄 정보부, 탈레반은 협정을 맺었다. 탈레반은 카불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탈레반 지도자들은 모두 남부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파키스탄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협정은 준수됐다. 미국은 카불에 정부를 수립했고, 칸다하르 근처의 파슈툰족 출신으로 한때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던 카르자이가 이 정부를 이끌었다.

당시 많은 논평가들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오랜 저항의 역사를 지닌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거의 모든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무엇보다도 평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규모 재건 사업이 추진될 거라는 약속도 받았다.

그러나 [재건 사업에] 배정된 돈은 거의 없었다. 정부 각료들은 썩을 대로 썩었다. 이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분노케 한 것은 국제 비정부기구(NGO)들과 구호단체들에도 부패가 만연했다는 것이다.

카불의 주택은 대부분 내전 기간에 파괴됐다. 빈민들은 여전히 폐허 속에서 잠을 잔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외국 구호단체의 활동가들에게 집세로 월 3천 달러(약 2백90만 원)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아프가니스탄의 평균 임금은 하루 5달러(약 4천8백 원)밖에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점령군과 구호 활동가들의 오만함에 대한 증오를 키우며 4년 동안 인내했다. 2001년에 탈레반은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제 그들은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점령에 맞선 저항을 호소하는 조직된 정치 세력이 탈레반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남부에서 싸우고 있는 탈레반 부대들은 괴이한 광신도들이 아니다. 그들은 무기를 든 지역 주민들이다. TV에서 4백 명의 탈레반이 살해됐다고 말할 때, 그것은 남녀노소 지역민들이 엄청난 폭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통제 불능

남부의 칸다하르는 제2의 대도시이자 탈레반의 근거지다. 지난 몇 주 동안 나토 산하 캐나다군은 칸다하르 서부 근교에서 저항세력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왔다. 지금 탈레반은 교외 일부 지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것은 더는 게릴라 전쟁이 아니다. 저항세력은 소총과 기관총, 대전차로켓발사기(RPG)를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또 스팅어미사일 ― 파키스탄에서 들여온 지대공 미사일로 헬리콥터나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다 ― 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헤로인 제조용 양귀비를 재배해 얻은 돈이 이런 무기들을 사는 데 쓰인다. 탈레반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양귀비 재배가 금지됐다. 이제 빈농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고, 카르자이 정부의 관리들이 그 거래에 깊이 연루돼 있다. UN 대변인이 뭐라고 말하건, 양귀비 재배는 금지되지 않을 것이다.

칸다하르와 카불의 중간쯤에 있는 가즈니 주에서는 지금 대규모 탈레반 부대들이 출현하고 있다. 또, 지금 저항세력은 북동부의 코나라 주 전체를 통제하고 있는데, 1980년대에 옛소련은 이 곳에서 처음으로 통제력을 잃었다.

파키스탄의 상황은 훨씬 더 통제불능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사이의 동부 접경지대에는 긴 산악지대가 있다. 국경 양쪽에 살고 있는 파슈툰족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사실상 어떤 정부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지내 왔다.

1백20년 동안 이 곳 저항 운동의 중심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의 와지리스탄 지역이었다. 2002년 이후 파키스탄 군대는 북와지리스탄에 대한 통제권 회복을 시도해 왔는데, 이 곳은 지금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이다. 파키스탄 군대는 수백 명의 군인을 잃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 주민들을 살해했다.

와지리스탄

파키스탄 군대는 탈레반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왔고, 더는 싸울 태세가 돼 있지 않다. 9월 2일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 언론이 ‘북와지리스탄 지역 탈레반’이라고 부른 세력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의 내용은 파키스탄 군대의 전면 철수, 모든 군 검문소 폐지, 모든 탈레반 재소자들 석방, 압류된 무기와 차량 전부 반환 등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살해한 모든 저항세력과 파괴한 모든 가옥과 재산에 대해 파키스탄 정부는 보상해야 한다. 외국 출신 전사들은 북와지리스탄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허용될 것이다.

그 대가로 와지리스탄 저항 운동은 국경을 넘어 탈레반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

파키스탄 군대는 국경 양쪽 어느 곳에서도 전투를 벌이지 않고 있다. 탈레반은 안전한 은신처와 보급망을 확보했다. 지난 주에 그들은 와지리스탄 접경 지대의 아프가니스탄 쪽 영토인 파크티아의 주지사를 살해했다.

전망

북부동맹뿐 아니라 다른 정치 세력들도 사람들이 점령에 진저리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남부로 가서 탈레반과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분열 지배 전략은 먹히지 않고 있다.

지금 나토는 인구 2천5백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에 2만 명의 군대를 파병했다. 그들은 버틸 수 없다. 지금 나토군 야전 지휘관들은 상당 규모의 병력 증강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국[과 폴란드]을 제외한 어떤 정부도 추가 병력을 보낼 용의가 없다. 정치인들은 그 곳에서 심각한 병력 손실이 있을 경우 어떤 정치적 결과가 있을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나토군 지휘관들은 칸다하르 자체에서 봉기가 일어날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통제하게 될 것이다. 그리 되면 이것은 '테러와의 전쟁'의 공공연한 패배가 될 것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영·미 정부는 팔루자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규모 공중 폭격을 가할 것이다.

그런 학살로도 승리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카불의 카르자이와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정부가 무너질 것이다. 또, 그 때문에 수만 명이 죽을 것이다. 현대전에서 늘 그랬듯이 그런 희생자는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가 될 것이다. 또, 궁지에 몰린 점령군이 대규모 이란 공습에 나설 수 있다.

부시를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우리 병사들을 살리는 것은 우리 평화 운동의 의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점령군은 철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