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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가 레바논 파병의 부당성을 말한다

Q. 부시 정부가 벌여 온 “테러와의 전쟁” 5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테러와의 전쟁"은 한마디로 문명 범죄입니다. 그것은 네오콘들이 중심이 돼 오래 전부터 마련해 온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전략적 이해 관계로 볼 때 걸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동의 석유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이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한 천연가스와 유전 밀집 지대죠.

바로 이 카스피해 유전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지배가 필요했습니다. 9·11 테러가 났을 때 이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거죠.

[부시 정부는] 미 국민들의 심리적 공황 상태를 이용해 기다렸다는 듯 아프가니스탄을 침공·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과정에서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카스피해 인근의 모든 요충지에 미군 군사기지를 지어놓았습니다. 9·11 테러라고 하는 절대적 기회를 틈타 자기들이 짜놓은 침략 시나리오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이라크를 공격·점령한 게 바로 이런 맥락이었던 거죠.

그런데 카스피해와 중동 석유 둘 모두를 끼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이란입니다. 그러니까 이란을 손에 넣음으로써 미국의 구상을 완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스라엘을 통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함으로써 시리아를 장악하고, 그 다음에 이란으로 나아가겠다는 구도였던 겁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헤즈볼라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저는 이게 인류 역사의 입장에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노무현 정부가 자이툰 주둔에 대한 커다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파병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가장 보편적인 가치의 틀까지도 짓밟아 버린 채 한 주권 국가를 침략한 21세기의 가장 야만적 전쟁에, 우리가 한미동맹을 내세워 참가했다는 것은 씻기 어려운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라크에 적대적이고 이라크 침략을 지지했던 쿠르드족 자치 지역에서, 전쟁 피해도 전무한 그 지역에 가서, 한국군이 이라크 국민들을 위한 평화 재건과 전쟁 피해 복구를 한다는 게 완전히 허구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파병 재연장을 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일 뿐입니다.

게다가 미국이 총력을 기울여 이란 공격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거점이 쿠르드 지역이 될 수 있습니다. 자칫 그렇게 된다면 한국은 미국의 중동 지배 전략에 완전히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Q. 지금 정부는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지금 레바논에서 평화협정이라는 게 이뤄졌지만, 유엔결의안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이 소위 '공격적 침략'만 못 하도록 해 놓은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공격할 때도 '테러 거점 파괴를 위한 방어적 공격'이라는 논리를 썼거든요.

그리고,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전제조건으로 정해 놨는데, 헤즈볼라는 절대 무장 해제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문제는 헤즈볼라가 무장해제를 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유엔 결의를 거치지 않은 이라크 전쟁에도 군대를 보냈는데, 유엔 결의안에 따른 레바논 평화유지군을 왜 못 보내느냐'하는 식의 논리가 상당히 강한데, 이건 결국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이 얼마나 끔찍한 악순환을 가져오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겁니다.

게다가 유엔 사무총장 후보까지 낸 나라의 국제적 위상 같은 것도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레바논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있었죠. 그런데 거의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번에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유엔군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전혀 없을 겁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 다시 침공해 왔을 때 평화유지군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총부리를 들 수 있는가', 또, '시도 때도 없이 무차별 폭격을 할 때 우리가 지대공 미사일을 쏴서 이스라엘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가.'그렇다고 해서 '무장해제를 거부하는 헤즈볼라를 상대로 우리가 총부리를 겨눌 수 있는가.'결국 우리가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우리는 전투 부대가 아니라 평화 재건 부대를 보낸다'고 하는데요, 이번 레바논 침공 때도 다 비무장 유엔군들이 죽었지 않습니까.

결정적으로, '한국은 지구상에서 미국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하는 나라'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EU와 터키가 가장 적극적으로 파병하려고 하는데요. 프랑스 같은 경우 이 지역에서 오랫 동안 식민 통치를 해 온 전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회에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중동 지역 헤게모니를 견제하겠다는 목적으로 가는 거죠.

그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보내는 터키도 오스만 제국 시절에 수백 년 간 그 지역을 식민 지배해 왔죠. 그런데 이런 터키조차도 지상군은 안 보내요. 해군을 보내지. 왜? 얼마나 위험한지를 안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지금 레바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유지군이 아닙니다. 음식과 의약품이 필요한 이 때에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줘야 할 것 아닙니까.

Q. 중동의 위기와 참상에 대한 해법은 무엇입니까?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뒤 그 전보다 테러 발생 건수가 4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매우 큰 위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 여론이 이런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힘을 모으고 미국에 대해 강력한 압력을 가하는 것이 글로벌 시민사회의 일차적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의 일극 제체와 수퍼파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세계 여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NGO 운동도 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보고 세계 NGO와 협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희수 교수는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중동과 이슬람 전문가다. 그는 자이툰 파병에 반대해 왔고, 최근에는 레바논 파병 시도에 반대하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쳐 왔다. 저서로는 《이슬람》(청아출판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