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번 칼럼에서 어떻게 착취에 의해 계급이 생겨나고 계급투쟁이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 주었다. 이것은 먼저 계급들이 생겨난 뒤에 이따금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한다고 생각하는 흔한 통념과 반대되는 주장이다. 또, 그것은 마르크스의 착취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유력한 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보여 준다. 

유력한 개념에 따르면, 착취는 대체로 과거지사 ― 예컨대 산업혁명기에 아동 노동자들이 착취당한 것 ― 가 됐거나, 아니면 오늘날 예외적으로만 존재하는 것 ― 예컨대 특별히 저임금을 지급하는 악덕 고용주들의 소행 ― 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착취는 예외가 아니라 통례였다. 이른바 '선량하고 관대한'사용자들에게 고용된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조차 착취당한다. 착취는, 본래부터 자본주의적 임금노동 관계에 타고난 것이다.

사용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아우성친다. "우리는 노동자들을 고용할 때 임금과 노동을 공정하게 거래한다. 그리고 그것은 쌍방이 자유롭게 체결하는 자발적 계약이다. 정말이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게 싫으면, 관두고 다른 데 가서 일하면 될 거 아니냐?"

무보수 노동

사실, 이런 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 자본가들은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전에도 일자리가 있었고, 자본주의가 끝난 뒤에도 일자리는 있을 것이다. 일자리, 다시 말해 수행을 요하는 직무들은 인간의 필요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60억 명의 인구는 모두 의식주와 교육 등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60억 명이 할 일은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자본가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함으로써 대다수 사람들이 자본가들 자신을 위한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도 말할 나위 없이 자비심이나 시민적 의무 때문이 아니라 이윤을 얻기 위해서, 즉 그들이 가진 자본의 가치를 증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이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윤은 어디서 나오는가? 분명히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보수를 지급해서는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자본가들은 이 공공연한 도둑질을 날마다, 해마다, 계속해서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겉으로는 그토록 공정하게 보일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한 것, 그리고 “공정한 거래”의 외관 아래 노동자들한테서 무보수 노동을 체계적으로 뽑아내는 과정이 숨어 있음을 입증한 것이 마르크스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였다.

마르크스 대답의 출발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노동력도 다른 여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상품으로 사고 팔린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가치는 가격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실제의 가격은 가치를 기준으로 오르내린다)가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요컨대, 빵 한 덩어리가 1달러에 팔리는 반면 셔츠 한 벌은 20달러, 자동차 한 대는 1만 달러에 팔리는 이유는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빵 한 덩어리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보다 자동차 한 대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1만 배나 많고 셔츠 한 벌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20배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런 ‘노동가치론’을 부인하지만, 실제로 모든 자본가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떤 자본가가 자신의 생산물을 계속 가치 이하로 판매한다고 치자. 그는 분명히 손해를 볼 것이고 머지않아 파산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또 어떤 자본가는 자신의 생산물을 가치 이상으로 판매하려 한다고 치자. 조만간 그와 경쟁하는 다른 자본가가 그보다 더 싸게 판매할 것이고, 그리 되면 가치 이상으로 판매하는 자본가도 파산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시간으로 측정된 가치를 중심으로 오르내리는 가격대로 생산물을 판매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사실을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적용해 보자. 노동력의 가치인 임금도 그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즉 노동자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노동자를 돌보고 먹이고 입히고 훈련시키는 등등을 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노동력이 다른 여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사고 팔리더라도, 한 가지 결정적 측면에서 노동력은 다른 모든 상품들과 다르다. 노동력은 [가치를] 창조한다. 즉, 생산 과정에 투입된 노동력은 노동력 생산에 필요한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라고 부른 그 차이는 자본가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모든 이윤의 궁극적 원천이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루 8시간씩 주(週) 40시간 노동하고 일당 40달러, 주급 2백 달러를 받는 노동자가 그의 임금에 해당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예컨대 하루 5시간, 주 25시간 걸린다면 그는 하루 3시간, 주 15시간의 무보수 노동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가장 엄밀한 의미의 착취인 무보수 노동은 노예제나 봉건제, 산업혁명 초기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명백하게 존재한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그것은 임금노동에 대한 자본가의 견해의 이데올로기적·자기본위적 본질을 들춰내고, 자본주의 경제의 운동 법칙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가치론의 구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가치론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이해관계의 직접적 충돌이 자본주의 생산의 진수임도 보여 준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무보수 노동도 많아지고, 따라서 자본가의 잉여가치도 늘어난다. 노동시간이 짧을수록 무보수 노동도 줄어든다. 임금 수준이 낮을수록 이윤 수준은 높아진다.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이윤 수준은 낮아진다. 따라서 임금과 이윤은

… 서로 반비례한다. 자본의 몫인 이윤은 노동의 몫인 임금이 하락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상승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윤은 임금이 하락하는 만큼 상승하고, 임금이 상승하는 만큼 하락한다. … 자본의 이해관계와 임금노동의 이해관계는 정면으로 대립한다.(칼 마르크스, 《임금노동과 자본》)

이것은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이 그의 계급·계급투쟁 이론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잘 보여 준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