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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유엔북한인권결의안 찬성:
대화와 제재 병행의 모순이 시작되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18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역설이게도, 노무현 정부의 이번 결정은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의 본질 ― 북한 인권에 대한 진정한 염려가 아니라 압박의 표현 ― 을 전의 어느 때보다 잘 드러냈다.

노무현 정부가 기권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보여 주고자 한 것은 명백히 채찍(또는 채찍 시늉)이었다. 여기에는 핵실험을 한 북한을 전과 똑같이 대해 줘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또,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확대 참여를 유보한 마당에 인권결의안 찬성이라는 강경 입장을 통해 균형을 맞출 필요도 있었다. 북한과 미국 모두를 염두에 둔 결정인 셈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는 그저 명분일 뿐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과 통상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천안문 학살을 들먹이듯이, 노무현 정부는 제 잇속[점잖게 말하면 외교상의 국익]을 챙기려는 계산 속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집어든 것이다. 유엔을 앞세워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과 줄을 맞춰 서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정부는 이 결정이 “남북관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때리고는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니 이보다 더한 모순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대화와 제재(압박) 병행이 드러낼 모순의 시작일 뿐이다.

내부 단속 효과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북핵 실험 이후 사태의 해결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이 점에 비춰 보면,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이 전하는 권영길 의원의 입장은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그 동안 입장과 다르게 대북결의안에 찬성하기로 한 정부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대북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정부가 다각도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11월 16일 박용진 대변인 브리핑)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부가 유엔을 앞세운 제국주의적 대북 압박에 동참한 것을 신랄하게 비난해야 마땅하다. 남한-북한-미국 사이의 관계 조정을 위한 고충이라는 외교적 논리에 뒷문을 열어 둬서는 안 된다.

물론 북한은 심각한 인권 문제를 안고 있다. 공개처형과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는 북한 당국도 인정했고, 북한 형법과 형사소송법만 봐도 집회·시위·결사·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억압은 강대국의 압박을 통해 해소되지 않는다. 첫째, 북한인권결의안을 주도한 부시 정부야말로 세계 최고의 인권 침해 정부다(오른쪽 기사 참고). 노무현 정부도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 폭력 경찰의 시위 진압으로 숨진 하중근 열사,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살함으로써 한국 감옥의 인권 현실을 알린 여성 재소자, 돈이 없으면 전기도 끊어버리는 냉혹한 정부 정책으로 촛불에 타 죽은 어린이 …. 이들의 죽음은 척박한 남한 인권 수준을 고발하고 있다.

둘째, 제국주의적 압박은 오히려 북한 관료가 내부의 불만을 단속하고 통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낼 뿐이다. 미국의 제재와 전쟁 위협은 오랫동안 북한에서 내부 결속 효과를 내 왔다.

남한의 노동자·민중이 그랬듯이, 북한 노동자·민중도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 제국주의적 압박이 바로 이 가능성을 짓밟는다는 점 때문에라도 진보진영은 인권을 빌미로 한 부시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압박을 반대해야 한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대하겠다고? Oh, NO!

김하영

부시 정부는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부르며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이 전 세계로 확산시킨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범수용소다.

미국이 국경 밖에 갖고 있는 대표적 정치범수용소인 관타나모 수용소는 고문과 학대의 대명사다. 부시 정부는 고문과 학대가 테러 혐의자들을 신문(訊問)하는 전략·기술 가운데 핵심 부분이라고 공공연히 인정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관나타모 수용소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굴락”이라고 불렀다. 굴락은 옛 소련이 정치범들을 수용한 강제노동수용소를 뜻하는 러시아어 낱말이다. 오늘날 미국의 굴락은 쿠바 관타나모뿐 아니라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기지,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몇 나라들에도 있다.

올해 6월 초 유럽연합(EU)의 유럽위원회는 “미국이 테러 용의자를 불법적으로 가두는 비난받을 만한 네트워크를 동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만들어 왔다”고 폭로하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이런 끔찍한 인권 침해를 국경 밖에서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인권단체 ‘센턴싱프로젝트’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 통계로도 미국의 수감률은 세계 1위다! 미국 감옥의 현실은 북한보다 결코 덜 끔찍하지 않다. 북한 당국은 인구 1만 명당 90.9명을 감옥에 가두고 있는 반면, 미국 당국은 미국 흑인 남성 1만 명당 4백91명을 감옥에 처넣고 있다(2004년 미국 법무부 통계). 이들 중 70퍼센트가 기결 재소자다. 미국 흑인의 처지에서 보면 미국 국가가 북한 국가보다 대여섯 갑절 더 억압적인 셈이다.

마약 소지에 관한 처벌 형량은 흑인과 백인 사이에 1백 배 가량 차이가 난다. 흑인이 주로 쓰는 마약인 크랙은 5그램만 소지해도 25년형을 받지만, 백인이 주로 애용하는 코카인은 5백 그램을 소지해야 25년형이 부과된다. 이런 차별 때문에 [미국 전체 인구 중 흑인 비율은 13퍼센트인데 비해] 전체 수감자중 흑인 비율은 무려 42.7퍼센트다(2004년 미국 법무부 통계). 이게 바로 미국식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