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 칼럼의 주제는 주로 자본주의에 대해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주장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에 반대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도 옹호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향하고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를 말할 때가 된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마르크스가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글로 쓴 내용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비록 그가 말한 내용이 심오하고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정부가 어떻게 조직돼야 하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하는지, 어떤 형태의 교통수단이 채택돼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세부 계획이나 지침은 없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사람들이 꿈꿔 온 이상(理想) 사회의 청사진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하면 반드시 등장할 사회 형태였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정확한 특징들을 미리 예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첫째, 그런 특징들은 노동계급이 승리하는 구체적 상황에 달려 있을 텐데, 그런 상황을 사전에 미리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 문제들은 미래의 노동자들 자신이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래 사회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심대하게 바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노동자들 ― 그리고 우리 모두 ― 과 사뭇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마르크스가 이해한 사회주의의 근본적 특징이 이른바 ‘소련 진영'과 중국, 북한 등의 가짜 사회주의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가 전망한 사회주의는 노동 대중이 스스로 사회를 운영하는 사회였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이행)기를 일컬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말한 것은 개인이나 정당이나 소수 특권층이 프롤레타리아 위에 군림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독재가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가 사회를 운영하는 것, 즉 진정한 집단적 노동자 권력이었다.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노동계급은 자신의 국가 기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1871년 파리 코뮌의 경험을 통해 이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 새로운 국가 기구의 형태가 어떤 모습일지 마르크스보다 더 잘 아는 이유는 우리가 마르크스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러시아 혁명의 초기 경험이나 독일 혁명(1918∼23년), 그리고 이탈리아(1919∼20년), 스페인(1936∼37년), 헝가리(1956년), 칠레(1972년) 등등 혁명에 근접했던 상황들의 경험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권력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노동계급의 투쟁, 특히 작업장에 바탕을 둘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군대·지역사회 등도 반영하는 대의 기구인 평의회(러시아 혁명 때 ‘소비에트'라고 부른)의 네트워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 평의회들이 새로운 국가의 핵심이 되고, 정부·군대·내각 등은 이 평의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계급이 실제로 사회를 운영하려면 이 새로운 기구가 정말로 노동계급의 집단적 이익과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 이 말은 이 기구가 매우 민주적인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고, 우리는 파리 코뮌과 러시아 소비에트 등의 경험을 통해 이런 원칙을 일부 알고 있다. 평의회 대의원들은 그들을 선출한 기구들(주로 작업장 집회들)에 의해 즉시 소환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들의 보수는 숙련 노동자 임금보다 많지 않아야 한다는 것 등이 그런 원칙들이다.

또, 노동자들의 정치 권력이 스스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경제 권력이라는 확고한 토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정치 권력은 모두 궁극적으로 경제 권력에 의존한다.) 이를 위해 노동계급은 자신의 국가를 이용해 주요 생산·분배·교환 수단의 집단적 소유 체제를 확립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위원회들을 통해 노동자들 스스로 이런 생산·교환·분배 수단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주의할 점은, 이런 관점의 사회주의에서는 국가 소유의 필요성이 노동자 권력이라는 기본 원칙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 권력과 노동자 통제가 없는 국가 소유 자체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 또, 우리가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러시아의 경험에서 알게 된 것은, 비록 노동자 권력이 처음에는 한 나라에서 건설되더라도 그 노동자 권력이 계속 살아남으려면 국제적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국제적 확산 과정에서 분명히 위대한 투쟁이 벌어지겠지만, 우리가 노동 대중 스스로 운영하는 국제적으로 통일된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사치를 부려 본다면, 다음의 몇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생산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민주적으로 계획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엄청난 생산력이 사람들의 필요에 이바지하게 된다면, 세계 대다수 사람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괴롭혀 온 빈곤·영양실조·결핍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주택 네 채, 자동차 다섯 대, 개인용 제트 비행기 두 대를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괜찮은 생활을 누리는 데 꼭 필요한 필수품을 누구나 갖게 될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어지간한 생활보다 훨씬 더 나은 생활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회는 교육과 여가, 특히 보람있는 노동을 제공해 지금껏 평범하기만 했던 사람들의 지적 생활과 인간적 개성을 크게 발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이 이제 사회의 더한층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그런 사회주의 사회는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벌어진 전쟁의 근본 원인 ― 토지·자원·이윤을 차지하기 위한 영주들·왕가들·기업들·국가들 간의 투쟁 ― 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런 사회는 낡은 계급 체제의 유산들이 사라지면 정말로 계급 없는 사회 ― 수렵·채집 사회와 비슷하지만 현대적 기술을 보유한 국제적으로 계급 없는 사회 ― 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연합한 생산자들이 생산을 소유하고 통제함으로써 계급의 토대 ― 한 집단에 의한 다른 집단의 착취 ― 가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번에는 사회 위에 군림하며 강제력을 행사하는 특별한 기구인 국가의 점진적 사멸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진정한 인간적 자유가 실현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미래의 사람들이 땅에 붙은 집에 살지 아니면 하늘 높이 치솟은 집에 살지, 버스나 자전거로 여행할지 아니면 미지의 교통수단을 이용할지, 복숭아와 크림을 먹을지 아니면 딸기와 요구르트를 먹을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가 쟁취할 만한 가치 있는 목표라는 점만은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 준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