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최근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의 양보를 통한 사회적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국회에서 권영길 원내대표는 ‘고소득 노동자의 소득세 인상과 미래 급여 인하를 통한 저소득 노동자 지원’을 연설했다.

당의 진보정치연구소가 발표한 ‘소득·임금 측면에서 노동계급 연대 전략의 모색’ 보고서도 같은 주장을 담고 있다. 문성현 대표도 《이론과 실천》 인터뷰에서 “우리끼리의 나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내 의견그룹 ‘전진’도 이 같은 ‘사회연대전략’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당원들이 참여하는 충분한 논의가 없었는데도 ‘사회연대전략’은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다. 이미 당 지도자들은 직접 노조를 설득하러 돌아다니고 있고, 곧 구체적 입법안을 제출하고 내년 대선의 주요 정책으로 내걸 것이라고 한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소득 빈곤층을 돕고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사회연대전략’은 근본적으로 이런 취지를 전혀 실현할 수 없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바로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가 ‘양보와 나눔’에 나서자는 대안 말이다. 이것은 ‘부유세와 군비감축을 통한 무상의료·무상교육’을 말하던 것에서 명백한 후퇴다. 더구나 이것은 그 지긋지긋한 노무현의 ‘정규직 양보론’과 다를 바가 없다.

노무현이 이런 말을 하면 비웃어주면 됐다. 그러나 당 지도자들의 이런 주장은 우리 내부에 매우 곤혹스러운 분열과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양보와 나눔?

반면, 기성 정치인들은 이런 제안을 반기고 있다. 국회에서 현애자 의원의 제안에 총리 한명숙은 “기본 원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이론과 실천》에 따르면 보건복지위 소속 열우당·한나라당 의원들도 “현실적인 안을 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한다.

노동계급의 적들인 저들이 왜 환영할까?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가 양보해서 저소득 노동자를 지원해 주면 노동자의 연대가 이뤄질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일까? 오히려 ‘사회연대전략’이 연대는커녕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양보와 나눔’론이 저소득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가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들 탓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는 저소득 노동자들에 대한 ‘나눔’ 때문에 자신의 소득이 줄어든다고 느낄 것이다. 보수 언론과 지배자들은 이 틈을 비집고 온갖 이간질을 기도할 것이다. 결국, 부자·기업주들의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노동자들 간의 격차가 한두 배라면 노동자와 지배자들 간의 격차는 수십, 수백 배다. 노동자들 간의 한두 배 격차는 지배자들의 몫을 빼앗아오는 단결 투쟁 속에서 아래 쪽을 끌어올려 해결해야지, 위쪽을 끌어내리는 ‘양보와 나눔’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

이런 단결과 투쟁이 외면당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원망한다. 따라서 당이 정규직 노동자에게 호소할 것은 단결과 투쟁이지 ‘양보와 나눔’이 아니다.

물론 ‘사회연대전략’을 주장하는 동지들은 “[우리의 양보를] 무기로 자본과 부유층을 압박해 소득세 누진율 강화 및 법인세·자산 과세 강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지배자가 그런 것에 압박을 느낀단 말인가? IMF 경제 위기 때 ‘고통분담’을 위해 노동자들이 결혼반지까지 내놓으며 ‘금 모으기’를 할 때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게 저들이다. 당이 ‘국민연금 지원 방안’을 내놓자 기초연금을 수용할 듯 사기치다가 ‘더 내고 덜 받는’ 개악을 강행하며 뒤통수를 친 게 저들이다.

강력한 대중 운동

‘사회연대전략’은 ‘부유세와 무상의료·무상교육을 외쳤지만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는 평가의 반영인 듯하다. 이제 “일면적 요구가 아니라 참여에 기초한 요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 권력과 언론 등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 기득권 세력에게 부유세 등의 양보를 강제하기 위해선 강력한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최초고용계약(CPE)을 철회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스웨덴에서 복지국가가 가능했던 것도 1930년대 유럽 최고 수준을 자랑했던 대규모 파업과 투쟁 덕분이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이 같은 대중 행동을 왜 건설하지 못했는지,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이지 후퇴가 아니다.

‘부자에게 세금을’에서 ‘우리끼리의 나눔’으로 후퇴한다면 주요 지지 기반인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은 당에 배신감을 느끼고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반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의 양보를 더 내놓고 주장하는 자본가 정당들과 우리 당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당의 성장을 가로막을 것이다.

지금 노무현과 지배자들은 노동법 개악을 통한 노동자 죽이기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시점에서 노동자 당의 구실은 단결 투쟁을 선동하는 것이지, 일부 노동자의 양보를 주장해 투쟁을 김빠지게 하는 게 아니다.

지난 5년 간 부동산 불로소득만 6백조 원이라고 한다. 노무현은 대통령을 관둔 후 매달 1천4백만 원의 연금을 받을 것이다. 노무현은 이라크 전쟁 지원에 수조 원을 썼고 앞으로 수백조 원을 들여 군비를 증강하겠다 한다.

이런 돈들을 노동자·민중의 복지를 위해 쓰자는 주장은 여전히 옳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요구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아래로부터 대중 투쟁 건설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