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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임금제는 여성의 일보 후퇴이기도 하다

샐리 캠벨의 칼럼은 자본주의 탄생과 가족의 역할 변화를 잘 보여 주고 가족의 역사를 간략하고 탁월하게 정리했다. 그러나 “가족임금 덕분에 남성 한 명의 임금으로 한 가족이 생활할 수 있었다. … 그래서 … 여성과 아이들이 힘든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말은 당시의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캠벨의 주장처럼 가족임금제는 “남성이 아내와 자녀 부양 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남성과 여성 노동자 모두의 이해를 대변하는 요구였다. 사실, 당시에는 여성이 집을 떠나 남성의 절반도 안 되는 저임금을 벌려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심한 억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출산은 매우 위험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영아사망률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1860년대 초 맨체스터에서는 한 살 미만 영아의 4분의 1 이상이 사망했다.

가족임금제 요구는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서 생겨났으므로 여성 노동자들을 배신하려는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린지 저먼이 《성·계급·사회주의》(책갈피)에서 지적하듯이 “노동계급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이는 매우 제한적이고 퇴영적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전반적이고 실질적인 임금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19세기를 통틀어 ‘가족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았던 남성 노동자는 극소수였다. 결국 가족임금제 이후에도 많은 기혼 여성들이 부족한 남성의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계속 일해야만 했다. 여전히 면화·방적·도자기 등의 산업에서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고 이 중 많은 여성들은 기혼이었다. 아이들도 나이가 차면 부족한 소득을 메우기 위해 바로 돈벌이에 나섰다.

남성의 임금을 대부분 ‘가족임금’ 이하로 지급하는 가족임금제는 여성을 노동 시장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가족임금제는 여성의 자리는 집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 실질 소득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가족임금제는 실제 임금을 올리는 구실은 거의 하지 못했지만 “여성이 생존하기 위해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고,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노동의 권리를 갖고 있음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일보 후퇴였다”(《성·계급·사회주의》 51~52페이지)는 것을 함께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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