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에 대한 독재자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포고령 입법권(수권법)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 수단이 결코 아니다. 차베스가 개정한 1999년 헌법의 규정에 따라 각종 제약을 받는다.

첫째, 기간과 범위가 제한적이다. 차베스의 포고령은 앞으로 18개월 동안 11개 분야에 국한된다. 포고령으로 정치적·시민적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결코 제한할 수 없다.

둘째, 각종 견제와 제약 장치들이 있다. 최고재판소의 위헌 심판에 따라 포고령은 폐지될 수 있다.

또, 국민투표를 거쳐 폐지될 수도 있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이라도 유권자의 10퍼센트 이상이 요구하면 국민투표에 의해 폐지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번 포고령 입법의 경우는 유권자의 5퍼센트 이상만 요구해도 국민투표를 거쳐 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유권자 1천6백만 명 가운데 80만 명 이상이 요구하면 차베스의 포고령에 대한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또, 국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포고령 입법을 수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 토머스 섀넌조차 “수권법은 합헌”이라고 인정했다.

한편, 차베스가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부시도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 전까지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하고 있었고, 한국의 노무현도 2004년 총선 이후 최근 열우당이 쪼개지기 전까지 양대 권부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라크 전쟁이나 신자유주의 정책 같은 쟁점들에서 국민 다수의 의사를 거슬러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 것은 부시나 노무현이었지 차베스가 아니었다.

또, 차베스가 비록 합법적 선거로 집권했지만 집권 후 독재자로 변질했다는 점에서 히틀러·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민주독재자”라는 비난도 있다(〈경향신문〉2월 6일치). 이런 비난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집권했을 때부터 차베스는 장차 베네수엘라에 독재 정권을 수립할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듬해 기존 헌법을 훨씬 더 민주적으로 개정한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칠 때도 그는 독재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또, 2001년 11월 차베스가 포고령 입법권을 사용해 49개 개혁입법을 발표했을 때도 반(反)차베스 세력들은 그를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그 개혁입법이 토지 소유를 민주화하고, 은행 대출의 문턱을 낮추고, 국영 석유공사(PDVSA)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려는 조처들이었음에도 그랬다.

부시

오히려 차베스를 독재자라고 비난한 자들이 2002년 4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차베스를 제거하려다가 실패했다. 그런데도 쿠데타 주모자들 가운데 체포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대법원의 판결로 죄다 풀려났다.

그리고 당시 군사 쿠데타를 공공연히 지지했던 자가 지난해 말 대선에 출마해 거리낌없이 차베스를 비난하는 자유를 누렸다. 이게 과연 독재 정권에서 가능한 일인가?

차베스를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민주독재자”로 비난하는 것은 특정 현상을 구체적인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떼어내 파악하는 역사적 추상주의나 형이상학적 역사유비론의 전형일 뿐이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 파괴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권익을 짓밟은 진짜 독재자였다. 그러나 차베스의 포고령 입법권의 주된 목표는 지역의 자치평의회를 확대·강화하고, 기간산업들을 국유화하고, 국가 관료들의 부패를 근절하는 등 “민중의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권익을 더 잘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베네수엘라의 노동자·농민·도시빈민들은 차베스의 포고령 입법권이 진정한 사회 개혁을 더 가속할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높여 줄 각종 개혁 조처들이 국가 관료들의 사보타주와 부패에 가로막혀 지지부진한 현실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그래서 절차적 민주주의보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더 중시한다.

얼마 전 칠레의 여론조사 기관인 라티노바로메트로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시사적이다. 대다수 라틴아메리카 나라 국민들의 자국 민주주의 만족도는 평균 38퍼센트인 반면, 베네수엘라 국민의 만족도는 1998년 32퍼센트에서 2006년 57퍼센트로 상승했다.

진실은 차베스가 독재를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증진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차베스의 선의에도, 또 그의 개혁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한계를 넘는 것은 대중 자신의 몫이다. 이는 아래로부터의 자주적 활동으로 가능하지만, 그런 활동은 차베스의 조처를 ‘비민주적’이라고 터무니없이 비판하는 것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차베스의 이니셔티브를 비난하는 우익과 한편에 서서는 민주주의는 어림도 없다. 오히려 그의 이니셔티브를 지지하고 그것이 직면하게 될 제약과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준비 태세를 아래로부터 갖춰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