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7일 미국 군사법원은 이라크 전쟁 복무를 거부한 첫 미군 장교 에런 와타다 중위에게 ‘무효심리’[재판 중지]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11월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 이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거둔 또 하나의 중요한 승리라 할 만하다.

와타다는 2003년 대학 졸업 직후 미 육군에 지원했다. 9·11 테러 뒤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조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모범’ 장교였고, 그래서 진급도 빨랐다.

2005년 초, 이라크 파병을 명령받은 와타다는 ‘모범’ 장교답게 “이라크 현지에서 맞닥뜨릴 모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전 준비’는 애초 의도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낳았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는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과 혼란에 빠져들었다.

결국 2006년 1월 오랜 고민 끝에 와타다는 전역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두 차례나 그의 신청서를 반려했다.

결국 소속 부대가 이라크로 출발하기 직전인 2006년 6월 7일 와타다는 이라크 파병 거부 의사를 밝히는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미군 병사들과 …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 사명감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의 법체계에도 배치된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미 육군 검찰당국은 그를 군무 이탈과 상관 모독, 품위 훼손 등의 혐의 ─ 최고 징역 6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 로 기소했다.

항명

그러나 와타다의 ‘항명’은 반전 운동의 커다란 지지를 받았다. 특히, 지난해 11월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와 지난 1월 27일 대규모 반전 시위 이후 와타다 재판은 반전 운동의 새로운 초점으로 급부상했고, 재판이 시작된 2월 5일에는 영화배우 숀 펜 등 1천여 명의 반전 시위대가 법정 밖에서 그를 지지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번 판결은 현재 미군 당국이 처한 심각한 딜레마를 반영한다.

미군 수뇌부는 이라크 현지의 군인과 참전 군인들이 갈수록 반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을 크게 우려한다. 그들은 군대 내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와타다를 속죄양 삼으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와타다가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과 부도덕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와타다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의 핵심이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라고 강조했고, 판결 당일 와타다는 직접 증언대에서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과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펼 예정이었다. 그래서, 미군 재판부는 이런 곤혹스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무효심리’라는 꼼수를 내놓은 것이다.

군 검찰은 3월 19일 재판을 다시 열겠다고 밝혔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같은 혐의 내용으로 두 차례 기소하거나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두번째 재판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설사 검찰과 재판부가 두번째 재판을 강행한다 해도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여전히 곤혹스런 문제로 남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3월 19일은 이라크 전쟁 개전 4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까지 이라크 참전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미군 46명 가운데 장교는 와타다뿐이다. 파병 거부자 중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병사는 모두 18명이며, 7명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 캐나다 등으로 ‘망명’한 상태다.

와타다의 영웅적 저항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전쟁 지속과 확전 시도에 맞선 운동의 중요한 일부다. 그의 저항은 미국 지배자들의 전쟁 명분을 무색하게 만들며, 부활 조짐이 역력한 미국 반전 운동에 영감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와타다가 승리한다면 더 많은 병사들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이라크 전쟁 복무를 거부할 용기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