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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미군 기지

지난 7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지도자들 G8 이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에 모였다. G8 정상들은 세계 최빈국들에 대한 부채 탕감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데 따른 비난을 피하려고 회담 장소로 오키나와를 택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 일본에서 남쪽으로 약 1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 곳이라면 시애틀에서 벌어진 반WTO 시위 같은 반자본주의 항의 시위대한테서 괴롭힘을 당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러나 정상들의 방문은 제국주의적 개입이 빚어 낸 고통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중에 오키나와를 점령해서 1972년까지 통치했다. 일본과의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45년에 미국은 오키나와를 침공했다. 미국 군대는 14만 7천 명의 민간인 ― 섬 주민의 3분의 1 ― 과 7만 명의 일본 병사들을 학살했다.

동굴에 숨어 있던 민간인들은 미국 군인들에 의해 불타 죽거나 산 채로 매장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 군대는 점령군으로서 오키나와를 접수해 통치했다. 전쟁에서 살아 남은 주민들은 모두 가시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수용소에 수용됐다. 미국은 하루에 1인당 1천4백 칼로리 분량의 음식물만을 배급했다.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었다. 그러는 동안 미국은 섬 전역에 군사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공식 필름에서는 군대가 촌락을 불태우고 불도저로 밀어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1951년에 일본과 평화 조약을 맺은 후에도 미군은 여전히 오키나와에 주둔했다. 오키나와는 냉전의 전초 기지가 됐다. 미국은 미국 바깥에서는 처음으로 오키나와에 핵무기를 배치했다. 1958년에는 약 8백 개의 핵 미사일과 핵 폭탄이 오키나와에 배치돼 있었다. 1957년에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예측할 수 있는 장래까지” 오키나와가 미군 장성인 고등판무관에 의해 통치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키나와 기지를 존속시키기로 결정한 미국 군부는 정치인들이 이 섬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너댓 차례에 걸쳐 개입했다. 오키나와는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동안 특히 B-52 폭격기 공습을 위한 주요 기지로 이용됐다.

오키나와는 또한 아시아 주둔 미국 군대를 위한 일종의 거대한 윤락촌으로 이용됐다. 1972년에 미국은 결국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했지만, 협정을 통해 미군 기지를 계속 온존시켰다. 오늘날 오키나와에는 일본 내 미군 기지의 4분의 3이 몰려 있으며, 2만 8천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다. 1959년에 한 미군은 23세의 여성을 목졸라 죽였다. 그 병사는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 몇 달 뒤에는 한 농민이 미군 하사관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그 하사관은 그 농민을 멧돼지로 오인했다는 증언을 하고 나서 무죄 석방됐다. 1972년 이래로 미군은 섬 주민들을 상대로 4천7백 건의 범죄를 저질렀다. 이런 뻔뻔스러운 전력은 뿌리 깊은 분노를 낳았다. 1995년에는 열두 살 난 소녀 한 명이 세 명의 해병대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한 일 때문에 수만 명이 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한 연사는 항의시위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미군은 우리의 목숨과 존엄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 어떠한 외국 군대도 주둔하지 않기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합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90퍼센트가 주민 투표를 통해 미군 기지 철수를 찬성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행동이 바뀐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이 달 초에는 열네 살 난 소녀를 성적으로 괴롭힌 죄로 한 미국 해병대원이 체포됐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지도자들은 최근에 정상회담이 열렸던 버밍엄과 쾰른에서 부딪혔던 대중 시위를 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하나의 작은 전초기지에 불과하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열강에 맞서 작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데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모욕당해 왔다는 점에 저항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 체제의 불평등에 정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