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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지지가 진보인가?

박근혜 지지가 진보인가?

정진희

[편집자 주] 이 글은 본지 기자 정진희가 시민 단체 공동 신문 〈시민의 신문〉 435호에 기고한 글이다. 약간의 수정을 거쳐 다시 싣는다. 재게재를 용인한 〈시민의 신문〉측에 감사드린다.

지난 달 월간 《프리미어》 편집장 최보은 씨가 《말》 3월 호에서 사실상 박근혜 지지를 표명했다. 김해 여성복지회관장 장정임 씨가 최보은 씨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최보은 씨와 장정임 씨는 여성은 여성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를 지지하는 게 “진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박근혜가 여성이라 해서 진보적이라고 볼 구석은 조금도 없다. 박근혜는 여성 해방을 지지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 지지에 반발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가 그 동안 여성 정책에서 어떤 진보성을 보여 왔던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장정임 씨는 박근혜 지지에 대한 여성계의 반발을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로서만 인식하고 폄하하는 주류 남성의 논리”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것은 쟁점 흐리기일 뿐이다. 박근혜가 기성 정치판에 뛰어든 지 4년여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한 게 아버지의 후광 때문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최보은 씨와 장정임 씨는 박근혜의 ‘독자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박근혜는 한 번도 아버지 박정희와 자신을 차별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 자신이 아버지의 후광을 업으려 노력해 왔다. 1999년 3월 19일 한나라당 인천시 연수지구당 초청강연회에서 박근혜가 ‘박정희의 소신’을 강조(〈부산일보〉 1999년 3월 20일자)한 것은 단지 한 예일 뿐이다.

박근혜가 문제 되는 것은 단지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을 입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박근혜의 정치 기반이 지독한 냉전 우익 세력들이고 그 자신이 지독한 우익이라는 점이다. 박근혜는 자신의 모델이 1980년대 영국의 강경 보수 우익 마거릿 대처라는 점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 대처가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지는 총리에서 물러난 지 8년이나 지난 1998년 여론조사에서 영국인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 1위에 올랐을 정도다. 1984∼85년 광부 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것으로 유명한 대처는 결국 1990년의 주민세 반대 항쟁으로 물러나야 했다. 1998년에 대처는 25년 전 칠레에서 쿠데타로 수만 명을 학살한 독재자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체포됐을 때 구명 운동을 벌여 풀려나게 만들기도 했다. 박근혜는 바로 이런 자를 4월 초 영국 방문 때 만나려고 애썼다.(이 만남은 대처쪽 사정으로 무산됐다.)물론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것이 오로지 아버지의 후광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자신의 보수성이 없었던들 냉전 수구 세력의 아성 한나라당에서 어떻게 부총재라는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박근혜가 “햇볕 정책”을 “퍼주기”라며 공격한 대북 강경파라는 사실(임동원 통일부 장관 사퇴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몇 안 되는 국회의원이라는 사실,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시장 경제의 지지자라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아마 최보은 씨와 장정임 씨가 이 점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여성의 지위가 신장될 것이라는 환상과 정치적 혼란 때문에 침묵하고 있다. 장정임 씨는 “현실”을 강조하며 “줄창 원론만 지껄이”는 진보 진영을 비판했다. 그러나 도대체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장정임 씨는 “여성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날마다 뉴스에 나오고 각료 임명장을 주는 모습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화면을 뒤덮는 날, 사람들의 여성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며, 이제 여성의 당대 논리는 진보정당이 아닌 여성당”이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대처가 수상으로 있던 11년(1979∼1990년) 동안 여성에게 무엇이 개선됐는가. 이 시기 영국 여성의 권리는 향상되기는커녕 도리어 퇴보했다. 이전 시기에 여성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도입했던 각종 복지 정책의 근간을 뒤흔든 자가 대처였다.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가 진보성의 기준이 될 수는 결코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 동안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학살해 온 미국과 영국의 여성 강경 매파는 무엇이란 말인가. 백악관 안보 담당 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와 영국의 국제개발장관 클레어 쇼트가 여성이라 해서 미국과 영국의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진실을 감출 수는 없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경 우익인 박근혜를 지지하는 것은 자멸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