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 중동을 휩쓰는 저항 물결

 

이수현

지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다음 단계로 끌고 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여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인티파다)가 지속되면서 아랍 지배자들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군에게 공군 기지를 제공하지 않았다. 압둘라 왕세자는 퉁명스레 말했다.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타도하고 싶다면, 이라크에 지상군을 파병해야 할 것이다.” 바레인의 왕세자도 “오늘날 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은 이라크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행동 때문이다” 하고 말했다.

1991년의 제2차 걸프전 덕분에 미국의 품으로 돌아온 쿠웨이트에서 최근에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는 국민의 42퍼센트가 오사마 빈 라덴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쿠웨이트의 국왕 알 사바는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우방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고……이라크 정권이 아니라 이라크 국민들만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 행동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불이 붙은 중동의 반미 정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로 표출됐다. 더 나아가 부패하고 무능한 아랍 각국 지배자들에게 도전하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초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1백만 명이 참가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열렸다. “온건한” 아랍 정권의 표본인 모로코 정부조차 이 시위를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 며칠 전에는 고등학생들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자생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유엔 사무소 밖에서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리아 군사 정권이 불법화한 정당들도 참가한 시위에 체 게바라나 헤즈볼라 지도자의 모습이 그려진 깃발이나 억압받는 소수 민족 쿠르드족의 깃발도 등장했다. 시위대는 정권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들이 뿌린 전단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내용뿐 아니라 정치수 석방을 요구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시리아 정권은 온건한 민주 개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 마모운 알-홈시를 구속했다. 그는 20년 형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4월 초에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는 의사·변호사·엔지니어 등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까지 행진을 했다. 그 이틀 전에 같은 장소에서 청년들이 벌인 시위는 더 격렬했다. 2천 명 이상의 시위대가 보안군과 투석전을 벌였다. 항구 도시 시돈에서는 약 1만 5천 명이 시위 행진을 했다. 레바논 인구는 겨우 4백만 명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17만여 명이 시위를 벌인 것과 마찬가지다.

또, 항공사 노동자들과 공무원들의 사유화 반대 파업도 있었다. 레바논 최대의 공장에서 6백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에 항의해 동맹 파업을 벌였다. 노조가 10년 만에 벌인 가장 큰 시위에는 1만 명이 참가했다. “새로운 정부”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에 참가한 어떤 요르단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인과 영국인들은 자기 나라 수도에서, 자국 정부 청사 앞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집회를 개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우리 형제들을 위해 지지를 표시할라 치면, 우리 나라 정부는 개를 풀고 성난 병사들을 시켜 우리를 두들겨팬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는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른다.”아랍 최대의 친미 국가인 이집트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학교 밖으로 진출해 시위를 벌였다. 〈카이로 타임스〉는, “시위대는 처음에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쳤지만, 금세 이집트 정부도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경험 많은 한 학생 운동가는 “몇 년 동안 운동을 해 왔지만, 지금처럼 학생들이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정부를 원한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1980년대 이래로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학생 운동 세력은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었다. 그러나 지금 새로 등장하는 좌파 운동 세력은 “팔레스타인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이집트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무바라크 정권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어떤 활동가의 말처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카이로를 거쳐야 한다.”아랍 정권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체하고 곧잘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 자국 민중의 관심을 딴 데로 돌렸다.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 석유 이윤을 뽑아 내거나 노동자를 착취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한때 “사회주의적” 미사여구로 치장했던 아랍 정권들도 지금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구함으로써 민중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이런 아랍 정권들의 위선과 무능과 부패 때문에 1980∼90년대에 다양한 이슬람주의 정치 운동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정권과 타협했다. 예컨대, 요르단의 이슬람주의 야당은 정부의 요청을 받고는 대규모 시위 계획을 취소했다. 그래서 더 전투적인 세력들은 떨어져 나와 테러 전술에 의존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고립됐다. 지금까지 중동에서 벌어진 시위의 대부분은 모로코에서 그런 것처럼 어느 정도 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학생 위주의 비공인 시위들은 규모도 작았고 노동자나 빈민 대중과 연계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새로운 활동가 세대가 대중 투쟁이라는 사상으로 기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