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공포 부추기는 데 바쁜 기성 언론

 

김덕엽

최근 수도권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몇 달 전에는 은행 강도 사건이 있었다. 신문과 방송은 흉악 범죄 때문에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양 호들갑을 떤다. “막가파식”, “엽기”, “악마적 현상”, “밤 길 다니기 무섭다” 같은 말은 언론이 범죄 보도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도덕적 공포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범죄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실존한다. 범죄의 대부분이 절도·폭행·강간 등이다. 이런 범죄의 희생자는 대부분 가난하고 실업 상태에 놓인 노동 계급이다. 가난과 실업의 고통은 인간 관계마저 병들게 한다. 폭행도 친한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 흔히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발적인 범죄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도 언론은 대다수 범죄가 노상 강도인 양 보도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범죄에 대한 공포를 부추긴다.  언론은 은행 강도나 연쇄 살인 같은 범죄가 아니라 재산 범죄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IMF 직후인 1998년에 재산 범죄는 1997년보다 18.8퍼센트 늘었다. 2000년에 절도 사건은 전년보다 94.5퍼센트 늘었다. 같은 기간에 재산 범죄 발생 빈도가 폭력성 범죄(폭행·강도·살인)보다 월등히 높다. 검찰 자료에도 생계비 마련을 위한 범죄가 높게 나타난다. 경제 위기와 범죄 사이의 상관 관계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생활 정도를 보면 하층이 55.8퍼센트, 중간층이 20.1퍼센트다.

IMF 이후 6개월 동안 실업률이 3.5배 이상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계 수단을 잃는 동안 생활 물가 지수는 13퍼센트 올랐다. 인간 본성이 탐욕적이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범죄는 “지배적인 조건들에 대한 고립된 개인의 몸부림”이다. 범죄의 뿌리는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널리 퍼진 불평등·가난·소외이다.

전체 소득 계층별 소득 점유율을 보면, 2000년에 저소득층의 소득 점유율은 8.9퍼센트 줄었다. 반면, 고소득층의 소득 점유율은 7.8퍼센트 늘었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2000년이 0.317로 1997년의 0.284보다 11.6퍼센트 높게 나타났다. 신용카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이 110만 명을 넘는다. 소득이 줄거나 없어진 사람들은 빚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불평등한 사회는 빚 때문에 일가족이 자살하게 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

한편, 모든 사람들이 범죄 때문에 똑같이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다. 부자들은 범죄에 대비해 보안 시설을 설치하고 보험을 들 수 있다. 4월에 한 보안업체 가입자 수는 전년보다 110퍼센트 늘었다. 그러나 보험에 들 여력이 없는 노동 계급은 범죄에 그대로 노출된다.

경찰언론은 범죄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치안 부재”를 탓하며 경찰력 강화를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경찰력 강화가 범죄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김대중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며 정부 기구 예산과 인원을 줄였다. 집권 초기에는 경찰 예산도 다소 줄었다. 그러나 2000년 경찰 예산은 집권 초기의 예산을 웃돌았다. 경찰 수는 줄기는커녕 계속 늘었다. 정부는 경찰을 꾸준히 강화·유지했지만 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실, 경찰의 ‘민생치안’ 범죄 해결률은 10퍼센트도 안 된다. 범죄 피해자들조차 경찰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1997년 통계청 조사에서 범죄 피해자들 가운데 경찰에 범죄를 신고하지 않은 사람이 무려 76.2퍼센트였다. 38퍼센트는 “피해가 크지 않아서”라고 대답했지만, “경찰이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한 사람도 23.6퍼센트나 됐다.

범죄는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경찰이 범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낳는 모든 문제를 경찰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의 진정한 임무는 범죄를 양산하는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미아를 찾아 주고, 교통을 정리하는 데 시위 진압봉, 물대포, 고무충격탄, 가스탄, 최루탄이 필요할까.

지배자들은 범죄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강도가 많이 늘어나도 그들의 부와 특권과 지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체제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힘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파괴하고 시위를 진압하는 것이 경찰의 진정한 구실이다.

국가가 범죄에 대처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국가는 “반사회적 요소들”에 맞서 사회의 일반적인 복리를 대표한다는 주장, 즉 강자에 맞서 약자를 보호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국가의 핵심 기능이 가난한 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부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출 수 있다. 국가가 억압을 강화하는 데서 “범죄 근절”, “민생치안”만큼 좋은 구실은 없다.

경쟁과 탐욕·착취·소외에 기반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범죄를 양산한다. 엥겔스는 1845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 적대를 낳는 오늘날의 사회는, 개인의 경우에는 잔혹하고 야만적인 폭력의 형태를 취하는, 즉 범죄의 형태를 취하는 만인 대 만인의 사회적 전쟁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