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1·2차 투표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에서 정치적 대안이 중요함을 보여 줬다. 2005년 유럽헌법 국민투표 부결, 2006년 CPE(최초고용계약법) 반대 투쟁에서 승리한 반신자유주의 진영은 운동의 성과를 반영하고 확대할 정치적 대표체가 필요했다. 그러나 대안적 정치세력화의 꿈은 씁쓸한 선거 결과로 막을 내렸다.

물론 1차 투표에서 LCR(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이 거둔 성과(4.08퍼센트)는 분명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중 운동이 1995년 이후 세 차례 중요한 승리를 거뒀는데도 우파가 17년 연속 집권하는 모순도 여전하다.

주류 언론들은 대부분 프랑스인들이 우경화해서 우파 후보를 택했다고 말한다. 좌절한 프랑스 민중 일부도 그렇게 생각한다. 교외 빈민가에 사는 폴린느 아멜은 BBC와 인터뷰에서 “기권율이 낮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르코지를 선택했음을 증명한다. 이번 선거는 정당한 선거였고 우리는 우익 국가에 살고 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절반에서 조금 더 많은 표(53.06퍼센트)를 얻었을 뿐이고 거의 절반(46.94퍼센트)의 유권자가 루아얄에게 표를 던졌다.

더구나 사르코지는 당선되자마자 반대 행동에 직면했다. 2차 투표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하자 전국 곳곳에서 반사르코지 시위가 일어났고, 교외 빈민가 청년들이 경찰과 충돌했다. 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정치적 관심이 높더라도 ― 2차 투표 참가율이 86퍼센트나 됐다 ― 올바른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정치적 지지가 엉뚱한 곳(사르코지)으로 향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줬다. 사르코지는 파시스트인 르펜이 2002년 대선 때 대량 득표한 지역들뿐 아니라 전통적 좌파 지대인 일부 산업 지역에서도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포퓰리즘

1차 투표 이후 사르코지가 포퓰리즘적 면모를 강조한 것도 이런 결과에 한몫했다. 이 점에서 사르코지의 선거운동은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한 2000년 부시의 선거운동과 닮았다. 당시 부시는 민주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실망을 이용해 일부 노동계급의 표를 획득했다.

사르코지는 르펜의 데마고그를 빌려오고 포퓰리즘적 언어를 구사해서 우파·중도우파 경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르펜 지지자 대부분과 베이루 지지자 40퍼센트의 표를 얻었다.

그러나 2차 투표에서 사르코지의 포퓰리즘적 선거운동이 일부 대중에게 먹혀든 데는 주류 좌파 정당인 사회당의 무능도 한몫했다. 루아얄 패배의 일차적 책임은 루아얄 자신과 사회당에 있다.

〈한겨레〉나 〈가디언〉같은 중도우파·중도좌파 신문들은 사설에서 사회당과 루아얄이 변화가 필요한 프랑스 사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패배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솔직하게 영국 토니 블레어 식의 ‘개혁’을 일관되게 추구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 사회당이 집권했을 때 공공 서비스 사유화 등 블레어 식 정책을 추진하고, 이번 선거에서 블레어 식 선거운동 전략을 택한 데 대한 대중의 반감이 진정한 문제였다. ‘중도’의 표를 얻으려면 우경화하라는 주류 언론의 ‘지도’를 따르다 보니 대중의 반감과 실망감이 더 커졌다. 한 병원 노동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나는 골수 좌파지만 루아얄은 내가 믿는 것을 대변하지 않는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1차 선거에서 급진 좌파에 투표한 많은 사람들이 결선에서 루아얄에게 투표했지만 기꺼운 지지는 아니었다. 선거 기간 내내 LCR의 기관지 〈루주〉에는 과연 사르코지에 항의해 루아얄에게 투표하는 것이 현명한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불붙었다. 1차 투표에서 베이루에게 표를 던진 진보 성향 유권자 상당수도 2차 투표에서 루아얄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베이루에게 투표한 사람의 약 60퍼센트가 진보 성향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사회당을 불신하는 반사르코지 진보 대중의 표 중 상당수가 베이루로 간 결과였다. 루아얄은 2차 투표에서 그 중 40퍼센트만 얻었고 나머지 20퍼센트는 투표에서 기권했다.

대중의 반사르코지 정서를 모으고 확대할 확실한 초점이 있어야 했다. 특히, 메이데이 시위가 그런 초점 구실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파 노동조합뿐 아니라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반사르코지 행동과 투표 호소를 부담스러워했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 좌파들은 대중의 반사르코지 정서를 대변하려 나름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결하지는 못했다. 물론 급진 좌파가 단결에 성공했더라도 루아얄 지지율이 자동으로 올랐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루아얄이 운동의 압력을 받아 좀더 급진적 태도를 취하도록 유도했을 것이고 좌파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더 유리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장차 급진 좌파들의 반신자유주의 공동 활동에 좋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혼란

LCR을 제외한 급진 좌파 진영은 1차 선거 결과에서 저조한 득표를 한 후 혼란에 빠졌다. 선거운동 기간에 공산당은 사회당과 연합해야 한다는 친사회당파 지도부와 반대파 지도부 사이의 논쟁으로 내홍을 겪었다. 조제 보베는 반사르코지 항의 투표의 수준을 넘어 아예 사회당의 꽁무니를 좇았다.

반면 LCR은 루아얄을 비판하면서도 사르코지에 항의해 투표하라고 일관되게 호소했다. 그러나 LCR의 전국위원회는 다른 급진 좌파 조직들과 반사르코지 공동 활동을 거부했다.

이는 매우 아쉬운 일인데, 왜냐하면 LCR은 지금 급진 좌파 재결집을 주도할 수 있는 영향력과 자신감을 가진 유력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또, 사회당 지도부가 선거 패배 이후 6월 총선을 겨냥해 베이루의 중도 정당뿐 아니라 급진 좌파 진영에도 유혹의 손길을 미치려 하기 때문이다. 급진 좌파 진영을 중도로 견인하려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당의 이런 책략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사르코지의 승리가 가져온 사기저하와 혼란 때문에 일부 급진 좌파들이 다음 달 총선에서 원래 목표 ― 반사르코지·반사회당·반신자유주의 공동 행동 ― 를 포기하고 사회당의 제안에 말려드는 것이다.

혹은, 당장 사회당과 연합하지 않더라도 급진 좌파 조직들이 선거에서 서로 단결하기보다 각개 약진할 가능성도 있다. 두 경우 모두 프랑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사르코지는 부유세의 사실상 폐지, 대기업과 상류층에 대한 감세, 공공 의료체계 예산 삭감, 공기업 노동자 정리해고,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권 제한 등의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르코지가 이 모든 개혁을 밀어붙일 경우, 프랑스는 파업과 시위로 얼룩지는 시끄러운 한 해가 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투쟁을 고무하고 대중의 반신자유주의 정서를 반영할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 싸움에서 사회당 같은 ‘사회적 자유주의’ 정당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루아얄의 공약에서 드러나듯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에서 사회당 지도부와 연합하는 것은 평범한 사회당 지지자들을 견인하는 데도, 일관된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건설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전에 공공부문 사유화를 진행한 사회당의 ‘복수 좌파’ 정부에 공산당 등이 참가한 우울한 경험을 되돌아봐야 한다. 다만, 대선 단일후보 선출 실패에서 드러났듯이 이 쟁점이 반신자유주의 급진 좌파 단결을 위한 논의 시작 자체를 가로막는 문제가 돼서는 안 된다.

사르코지의 신자유주의 공격에 맞서 반신자유주의 급진 좌파 진영은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이는 대선 단일후보 선출 실패 이후 중단된 반신자유주의 연대 활동을 강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장은 6월 총선을 겨냥한 급진 좌파 선거연합 논의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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