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협회 등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지만, 전공의에 대한 계급 분석은 지금은 물론이고 당시의 객관적 조건에 비춰봐도 엄밀하다고 보기 어렵다. 전공의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는 2020년 8월에 실은 ‘전공의들은 노동조건 개선과 공중보건을 위해 싸워야 한다’를 보기를 권한다.


6월 23일 정부의 종합대책안이 의사협회에 의해 거부당하자 바로 다음날 김대중과 이회창은 영수회담을 통해 7월 5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약사법을 개정하고 의사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의사들은 이틀 후 집단폐업 철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한 달이 채 안 지나 의사들은 다시 폐·파업에 들어갔다. 정부의 양보가 불철저하다는 게 주된 불만인 듯하다. 물론 2차 의사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수련의(인턴)1)와 전공의(레지던트)2)들의 불만에는 형편 없는 근로 조건을 강요하는 병원 당국에 관한 것들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의사들의 주된 요구인 수가 인상이 진정 국민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일까? 현재 정부의 의약분업안만 해도 실제 시행됐을 때 진료비가 2만 원 이상인 경우에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더 많아진다.3) 의사들의 수가 인상을 위해 김대중 정부가 새롭게 추가 예산으로 편성된 2조 4천억 원 때문에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세금이 인상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분명 싸우기는 의사들과 정부가 싸웠는데 왜 직접적인 피해는 노동자들이 져야 할까?

욕심쟁이 약사들 때문에?

의사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당장은 몇 사람들의 희생과 불편함을 낳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생명권을 지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우선 의사들의 요구를 하나 하나 살펴보자. 의사들의 요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의약품 분류 2. 임의조제4) 근절 3. 대체조제5)시 의사의 사전동의 4. 처방료 및 진찰료 현실화 5. 약화사고 책임소재 법제화6) 6. 의료전달체계 확립 7. 의약분업에 소요될 재원 확보 8. 지역의료보험 재정 50%지원 약속을 즉시 이행할 것 9. 기타.

위의 대정부 요구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의사와 약사간의 순수한(?) 이권 다툼으로, 의약품 분류·임의조제 근절·대체조제시 의사의 사전동의 등의 문제다.

이것은 무분별한 제조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의사들의 주장으로 요약된다.

올해 1월 12일 개정·공포된 약사법과 의약분업 시행안에 따르면 의사들이 처방을 해야만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품(전문의약품)은 전체의 61.5%이고 약국에서 그냥 구입할 수 있는 약품(일반의약품)은 38.5%이다. 의사들은 이것을 처방약과 비처방약으로 분류하고, 비처방약을 지정한 다음 나머지는 모두 처방약으로 지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문의약품의 수를 더 늘려보겠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약품을 더 많이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그 근거로 의사들은 약물 오·남용의 현상을 지적하면서 마치 이것이 약사들만의 문제인 양 주장한다.

이규덕(소아과 원장) 씨는 제약회사의 생산 실적이 1997년 기준으로 6조 8천억 원인데 반해 매출액은 4조 1천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계를 들며 나머지 3조 원 가량의 약품거래는 약국에서 이루어지는 무자료 거래라고 주장한다. 무자료로 거래되는 3조 원 어치의 약물 사용이 약물 오·남용의 주된 원인이라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현재 병·의원 68%, 약국 30%라는 약물 사용량 통계는 무자료 거래를 고려했을 때 각각 40.8%, 59.2%에 이른다. 즉, 약국에서의 약물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약물 오·남용을 막는 데에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다.(‘의약분업의 쟁점과 국민건강’, 《한국의료대논쟁》, 소나무 출판사.) 

그러나 만약 약국의 무자료 거래가 실종된 3조 원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제약회사의 매출액에서 3조 원의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약국에서 무자료 거래를 했다면 약국의 입고량과 매출량이 차이가 나야 하지 제약회사의 생산량과 매출량이 차이가 날 이유가 없다. 통계 결과는 그 돈이 제약회사에서 약이 출고될 당시에 빠져나갔음을 보여준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할 곳은 약사들이라기보다는 제약회사이다.

또한 약사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약물 오·남용의 주범이다. 의료보험 진료 환자 중 의약품 처방을 받은 사람은 전체의 88.8%이고 입원 환자의 경우에는 99.1%이다. 항생제 처방비율은 58.9%로 WHO 권장치인 22.7%의 두 배나 된다.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의사들은 무엇으로 생존하는가?

생존권 수호를 주장하는 의사들은 주된 근거로 경영난을 들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동네 의원 중 9.1%가 문을 닫았다. 보건복지부는 9개 시·도 의원급 의료기관 1만 332개 중 9.1%인 939개 의원이 지난해 휴·폐업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97년 6.7%, 98년 6.9% 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병·의원의 폐업률이 약가 인하 조치와 함께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일부 의사들의 경우 도저히 병·의원을 경영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의약분업으로 인해 폐업률이 크게 늘어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다.

“미공개 발표입니다만 현재의 수가대로 했을 때 약국에서 병·의원으로 선회하는 비율이 20%를 넘으면 병·의원의 수익이 보존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 약국 의료보험 이용자에게 갤럽조사를 한 결과 24% 이상이 약국에서 병·의원으로 선회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수가대로 의약분업이 시행되어도 병·의원의 수익이 현재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임정수, 인의협 의약분업 2차 회원 토론회 )

현재 의사들의 정확한 수입이 얼마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 털어놓고 있다.

“77년 의료보험시행시 책정된 수가가 의협 대표와 상의해서 결정된 것[은]… 당시 당국이 작성하였던 자료 자체가 당시 개원의들의 세금에 대한 우려 등을 고려한 불성실한 답변으로 실제 당시의 수가보다 낮게 조사 된 것이라고 본다.” (‘의권쟁취투쟁위원회 홍보자료’)

1977년 의료보험 시행 전에는 수가나 약가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그냥 받고 싶은 만큼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수가를 책정해야 할 때(보험료가 책정되기 때문에) 의사들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전에 받던 수가의 70%선에서 책정하자고 했으나 의사들에게는 얼마를 받고 있는지 솔직히 말했다가는 세금 또한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의사들은 당시 수가의 50∼60%만을 신고했고 수가는 현재 의협이 주장하듯이 당시 수가의 40%선에서 정해졌다.

얼마전 TV에서 보도된 의협 관계자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의사들의 생존권은 연봉 7,200만원 보장이다. 〈청년 의사〉 신문의 유처상 편집실장은 “과거 정형외과 전문의는 서울에서는 월 1,000만원, 지방에서는 월 1,500만∼2,000만원까지 받았으나 요즘은 평균 500만 원 정도로 조사됐다”며 “내과 소아과 등의 경우는 세전 봉급이 300만 원 정도로 웬만한 직장인보다 못하다”고 말했다.(〈조선일보〉 1월 15일자)

이 얘기에 따른다면 설사 어떤 사람들의 수입이 줄어‘가족의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정도로 어려운 지경에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비보험 부문의 진료를 많이 하는 ― 성형수술, 레이저치료 ― 의사들은 한 달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집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려면 수가를 인상시킬 것이 아니라 의료체계 전체가 중앙 집중적으로 계획이 되어야 하며 그 재원과 인력의 배분을 사회적 필요에 따라 시행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사들의 대안은 의사 수가 인상이다. 우선,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간단한 개념 정리부터 해보자. 우리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서 지불하는 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약가, 다른 하나는 의사의 행위에 대한 가격, 즉 수가이다. 이 수가에는 진찰료(환자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간단한 검사, 즉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청진기로 듣고 등등을 한 후 대강의 병을 추정하는 일), 처방료, 각종 검사 및 치료행위에 대한 가격 등이 매겨져 있다.

의사 수가 인상이 대안이다?

기존에 약가로 얻던 막대한 이득이 줄어들 지경에 처하자 의사들은 대신 수가를 올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든 수입만 보장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좋은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국민도 적정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고 … 담배, 술등에 건강세를 첨부하여[야 하고] … 보건소 등의 무차별한 약품 살포행위 … 등의 의료보험 재정 유출을 방지하여 … 야 한다. … 동일 수준의 국민소득을 이룩하고 있는 타국과 비교할 때 국민의 부담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알리고 … 설득하여야 한다. 우리 의사들도 … 노력할 것[이다]. … 2조 정도의 세금 부담은 정부의 의지 문제이지 국민저항까지 초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의권쟁취투쟁위원회 홍보자료’)

이번 정부의 최종협상안에서도 수가는 70%가량 인상하겠다고 밝혔지만 재정 지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채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병원으로 돌아갔다.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사들은 이번 기회에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의료전달체계7) 확립에 대해 들어보자.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 무조건 종합병원 외래를 찾는 관행을 바꾸는 작업이 국민 교육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며, 의원은 외래8) 중심으로 병원은 입원과 교육 중심으로 … 종합병원의 입원환자관리를 위한 수가 개선 및 제도의 수정이 병행되어야 한다.”(이규식, ‘의약 분업의 쟁점과 국민건강’, 《한국의료대논쟁》, 소나무 출판사.)

의사들의 주장은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선심행정의 차원에서 낭비되고 있는 보건소 등의 무차별한 약품 살포행위 및 진료위주 운영, 사이비 복지의원 등의 의료보험 재정 유출을 방지하여 의보 재정을 보호하여야 한다. … 지방자치단체의 선심성 진료행위 강화 시책이 일반화되어 보건소가 그 본래의 설립 목적을 망각한 채, 일반 환자의 진료를 무차별하게 실시함으로써, 지역 개원의들과 불공정한 경쟁을 벌이고 또 의료보험 재정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매우 잘못된 일로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또한, 과거 의사가 없는 지역에 한시적으로 설치 운영되어 왔던 보건지소나 보건 진료소도, 이제 그 운영을 재편성하여 의사와 약국이 있는 지역은 폐쇄조치하고 의약분업의 제외 대상을 현실에 맞게 면밀히 선정해야 할 것이다.”(‘의권쟁취투쟁위원회 홍보자료’)

그들이 말하는 일차 의료 강화는 의원을 살리라는 것이지 결코 보건의료 체계를 바로 잡으라는 것이 아니다. 위의 주장들이 함의하고 있는 바는 국민들을 교육시키되 별로 효과가 없으면(아마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종합병원의 진료비를 인상시켜서(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환자들이 의원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게 만들고 사람들이 보건소나 보건지소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런 ‘선심 행정’집어치우고 ‘자유경쟁’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더 좋은 시설에서 더 좋은 장비로 더 실력 있다고 평이 난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일은 어찌 보면 현재로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진정으로 일차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유도하려면, 우선 일차 의료 기관의 치료비가 대폭 절감되어야 하고 보건소·보건지소가 늘어나고 시설도 일반 개인 의원이나 병원 만큼이나 좋아져야 한다. 이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필수적이다.

의사는 어느 계급인가

의사의 계급을 규정하려 할 때 흔히 겪는 어려움은 예전의 의사들의 지위와 현재의 의사들의 지위가 다르다고 느끼는 데서 비롯한다. 특히 소득이 예전만 못하다거나, 아니면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인턴, 레지던트는 나이 많고 편안하게 사는 전문의9)들과는 좀 다르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득의 높고 낮음을 기준으로 계급을 규정하지 않는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지배계급일수록 수입이 많고 노동자 계급은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을지라도 말이다.

의사가 어느 계급에 속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전체 의사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인턴(수련의), 레지던트(전공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그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이나 근무 시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노동자의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련의나 전공의의 근무 조건은 끔직할 정도로 형편 없다.

물론 인턴이나 레지던트는 전문의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인데 이것은 노동자들이 현장에 배치되기 전에 받는 직업 교육과는 다르다. 후자는 노동자로서 살아가도록 교육시키는 것 ― 현장에서 노동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 ― 인 반면에 인턴·레지던트는 중간계급의 일부가 되기 위한 ― 때로는 자본가가 되기 위한 ― 교육을 받는 것이다. 때문에 아직 완전히 계급의 일부로서 드러나지는 않게 된다.

그들이 전문의가 되고 나면 그 스스로 개원(29%)을 하거나 아니면 전문의로 취직한다(39%). 병원을 개원한 의사는 자본가 계급의 일부가 된다. 더 이상 그는 다른 사람들(간호사, 의료기사, 원무과 직원 등)의 노동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 스스로 일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의 수입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노동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이미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면서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제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의원의 경우는 “그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만 … 그는 스스로 노동하지 않으면 안된다.”(김인식, ‘계급과『인간의 역사』’, 《열린 주장과 대안》 1호) 한두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의 소득의 대부분은 그 스스로의 노동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다른 도시 자영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의원을 소유한 의사는 중간계급의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병원, 종합병원, 대학병원의 전문의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도 지배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제한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을 통제한다] 이 점에서 그들은 기술자들과 구분된다. … [이들은] 중간계급이다.”(김인식, ‘계급과『인간의 역사』’, 《열린 주장과 대안》 1호)

의사는 상층 중간계급이다. 중간계급의 일부이지만 자본가 계급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좀 더 크게 열려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더욱 자본가 계급에 가깝다.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이해관계와 대립할 때가 많다. 이번 의약분업의 경우도 그런 경우들 중 하나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그리고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집단폐업을 벌였다. 그동안 특권을 누려왔던 의사들이 이제 와서 생존권 운운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역겹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 특권이 사람들의 아픈 곳을 치료해줄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데 내 일이니 내 맘대로 하겠다는 식으로 진료를 거부했을 때 아픈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설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의사들은 그들의 처지가 자기 개인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고, 자기들이 뭔가 베풀어주고 있는 것이라 착각한다. 그 옹골찬 엘리트 의식은 도전받을 필요가 있다.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그렇다면, 의사들이 반대한 정부의 의약분업안은 지지할 만한 진보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가?

첫 번째는 약물의 오·남용을 막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의료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약물 오·남용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항생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한데 이 나라의 항생제 사용률은 OECD 국가의 평균치의 약 1.5∼3배 가량 된다. 항생제 사용평가 결과에 따르면 항생제 사용적합률은 평균 67.4%로 나머지 경우에는 감염에 대한 뚜렷한 확증 없이 예방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렇게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는 더 큰 동기는 따로 있다.

국민의료비 중 약제비는 30.3%로 외국의 10∼15%에 비해 대단히 높은데 이 약제비중 33.1%를 항생제가 차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이 나라의 약제비가 높은 이유는 약을 판매함으로써 생기는 이윤이 남달리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없는 의사가 이렇게 일석이조로 좋은 일을 마다할 리는 없다.

항생제는 병균을 죽이는 약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항생제를 자주 사용할 경우 그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균이 등장하고 더 이상 그 약은 병균을 죽이지 못하게 된다.

항생제 오·남용의 결과 남한에서 폐렴을 일으키는 균의 한가지인 폐렴구균은 70∼80%가 페니실린에 내성을 보이고 있고 가장 강력한 항생제 중의 한가지인 반코마이신에 대해 내성을 가진 균도 출현이 보고되고 있다.

이런 균에 의해 폐렴에 걸리면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병이 되는 것이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등장할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병들의 다수는 앞서 말한 ‘동기’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약물 오·남용을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의약분업은 병원과 의원, 약국 모두에게서 앞서 말한‘동기’를 실현하지 못하도록 해서(분업을 통해 의사는 처방만 하고 약은 못 팔게 하고 약사는 의사의 처방이 없는 한 약을 팔 수 없도록) 약물 오·남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약을 많이 팔고자 하는 사람들이 의사와 약사뿐인가? 아니 정말로 약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은 따로 있다. 약이 생산되는 곳은 제약회사의 공장에서이고 약에 대한 모든 이윤은 사실상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제약회사의 사장들이 이 커다란 이윤이 실현되길 원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은 의료기관들이다.

사장들은 그것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의료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약물의 사용을 피하고 의약품 거래를 투명하게 만들어 의약품 납품 및 약가 비리를 막아서 국민들의 의료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약품 납품 및 약가비리를 막으면 국민의 의료비가 줄 것이라는 생각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왜곡하고 있다. 다음은 김용익 교수(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의료관리학 교실)의 글을 부분 발췌한 것이다.

“의약품에 얽힌 비리는 뿌리가 깊고, 방법도 다양하며, 그 액수도 어마어마합니다 … 실로 다양한 형태의 비밀스러운 거래들이 오고 갑니다. 어떤 약이 병원에 새로 들어가려면 소위 ‘랜딩비’라고 하는 채택료가 주어지고, 그 후에도 ‘리베이트’라 불리는 상납이 주기적으로 계속된 … 소위 ‘할증’이라고 하는 방식이 흔히 쓰입니다. 할증이 100%라고 하면 공식적으로 구입한 약품 한 갑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한 갑을 더 얹어주는 것입니다. 할증율이 900%에 이르는 약도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 실거래 가격은 공식적인 가격의 1/10에 불과한 것이지요. 물론 이 때 의사들은 약을 사용한 만큼 의료보험에 청구하여 공식적인 약가대로 진료비를 받아 냅니다. 이것이 할증의 묘미입니다. … 의사들이 약을 선택할 때 의학적으로 최적인 약(drug of choice)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 제일 많은 약을 고르게 되기 때문에 … 더 비싼 약값을 치러야 합니다. 소위 ‘마진’이 좋은 약이란 항상 훨씬 더 비싼 약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병원들이 1차 항생제를 버려 두고, 3차 항생제부터 쓰는 일은 이미 오랜 전부터 의사들간에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제약회사는 어디서 돈이 나서 그렇게 많은 돈을 뿌릴 수 있을까요 … 그 비밀은 의료보험 약가의 산정 과정에 있습니다. 의료보험이 지불하는 의약품 가격이 실거래 가격보다 두배, 세배, 아홉배 이상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보 약가는 의료보험약가심의위원회가 결정하는데, 각 제약회사들이 제출한 원가계산 자료를 기본으로 삼아 ‘서류 심사’로 책정합니다. …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심의위원회가 보건복지부나 의료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제약협회 산하에 설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겨우 4년 후인 1981년부터 그랬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의보약가 담당직원은 아예 제약협회에 나가 근무를 한다고 합니다. … 부당 유출된 액수를 여러 가지 근거로 추정해 보면 연간 1조 5천억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줄잡아도 1조 원은 훨씬 넘습니다. 금년에 의료보험이 지출할 총비용이 8조 5천억 원 정도이니 1조 5천억 원은 그 18%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실상을 알고 보면 의약품 비리란 단순한 비리가 아니라, 의료보험 → 제약회사 → 병의원/약국으로 가는 비공식적인 재정기전이었던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것은 그 현실을 보건복지부의 간부들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벽통신》, 김용익)

설사 의사와 약사의 동기가 실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약회사의 이윤 추구 동기가 실현되는 한 의료비가 저절로 줄어들 수는 없다!

또한 제약회사가 얻고 있는 막대한 이윤이 유지되고 의사·약사가 약품을 선택하는 것이 ― 누구에게 주도권이 있건 간에 ― 불가피한 일이라면 경쟁하는 제약회사들이 계속해서 리베이트, 로비, 할증 등의 명목으로 의사·약사에게 돈을 줄 것이고, 그것을 받기 위해 약물은 여전히 오·남용될 것이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의약분업을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의약분업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것은 의약분업뿐만이 아니다. 의료보험통합(국민 건강 보험), 산재보험 확대 적용도 같이 실시된다. 의료보험료 인하, 약가 인하, 보건소 및 보건지소의 확충, 정부의 재정지원등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의약분업 안은 이런 것들을 모두 내버려 둔 채 의약분업과 의료보험통합만 하면 잘될 거라고 주장한다.

1963년 약사법에 처음으로 ‘의약분업’이 명시된 이래 37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 의료 등의 문제는 여전히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다. 개악된 노동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에 단 7분이 필요했던 자들이 37년 동안 시행하지 못한 것을 준비가 안 되어서라고 해석하고 있다. 37년 동안 할 수 없었던 일이 지금은 저절로 이루어 질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저절로 벌어질리 만무하다. 오직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만이 진정한 의료제도의 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문제 : 다음 중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내용으로 틀린 것은?

답 : 무상 의료

필자가 의대생일 때 마지막 기말고사에 나왔던 시험 문제이다. 물론 전혀 다른 답을 골랐고 친구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했다.

의약분업을 둘러싼 대립이 왜 벌어지는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의료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그것은 체제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남한의 의료 체계의 문제는 사장들의 이윤 추구 동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의료를 사적인 영역으로 남겨두고 시장논리에 따라 이윤 추구를 보장해 준다면 어떤 개혁도 완전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각각의 개혁조치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재 의약분업을 실시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 병에 걸렸을 때 더 나은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다. 또한 실제로 의약분업은 의사의 처방이나 약사의 약물판매에 대한 공개된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더 이상 의료를 알 수 없는 것으로만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정부의 의약분업 안이 노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 약사, 제약회사, 정부관료들간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임시로 땜질을 해 놓은 것 밖에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정부가 의약분업을 어떤 식으로 시행하려 하건 간에 그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사들의 요구 ― 특히 정부가 수용한 요구 ― 는 그들의 중간 계급적인 이해관계만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현재에도 일부 드러나고 있듯이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더 많이 충돌하고 있고 정부는 그 부담을 모두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부의 의약분업을 지지하기 힘들다.

오히려 의사들의 진정한 ‘집단 이기주의’와 정부의 반노동자적 정책 모두를 비난하면서 의료보험료 인상반대, 약가 인하, 보건소 및 보건지소의 확충, 이를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 등을 요구하며 싸워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강령에서 무상의료를 주장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무상의료의 필요성은 커진다. 혹자들은 무상의료가 너무 먼 목표라고, 또는 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하는 한 불가능한 목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유럽의 선진국들은 1,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을 실현했다. 우리도 충분히 이런 것들을 요구하며 싸울 수 있다.


1) 의대를 졸업하고 나면 의사국가고시를 치르게 되고 이 시험에서 통과하면 정식으로 ‘의사’가 된다. 이 순간부터 그는 환자의 치료에 관계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 법적으로만.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학교에서 거의 가르쳐 주지 않는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각종 기술과 지식을 새로이 습득해야 한다. 따라서 지정된 병원에서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 있는 의사를 '수련의(인턴)'이라 한다.

2) 현대의 의료제도는 일차의료에 알맞은 인력뿐만 아니라 삼차의료에 알맞은 인력까지 배출해 내야만 한다. 이 삼차의료를 담당할 사람들이 바로 '전문의'인데 이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의사를 '전공의(레지던트)'라고 한다. 수료기간은 보통 4년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그는 무슨 무슨 과(내과, 외과, 소아과 등) 의사라고 불리게 된다. 우리 나라를 비롯한 몇몇 나라의 경우 모든 의사가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3) 진료비는 본인부담금과 의료보험 청구액의 합이다. 현재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내는 돈은 전체 진료비의 약 40%에 달한다. 따라서 4,000원을 내고 병원을 다녀왔다면 실제 진료비는 10,000원으로 전체 진료비가 20,000원이 안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사실상 대부분의 경우에 의료비가 인상되는 것이다.

4) 전문의약품에 대해 의사의 처방 없이 약사가 임의로 약을 조제(여러 약을 혼합하는 것)하는 것을 뜻한다. 현행 약사법에서는 이것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5) 약국에서 의사가 처방하려고 하는 모든 약을 사전에 준비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성분만 같고 상품명은 다른(현재 제약회사에서 같은 약품을 경쟁적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약품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약품으로 대체해서 조제할 수 있는 것, 현행 약사법에서는 이것을 부분적으로(정해진 한도에서) 보장해주고 있다.

6) 현행 약사법에서는 약사가 대체조제를 할 경우 대체조제 후 3일 이내에만 의사에게 신고하면 되도록 되어 있다. 의사들은 만약에 이 3일 이내에 약물에 의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지는지 법제화하거나, 대체조제의 경우 반드시 사전에 의사의 동의를 얻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7) 한 사회 내에 있는 각종 의료기관의 업무나 각 기관간의 연계를 의미한다. 의료기관의 업무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일차의료기관, 이차의료기관, 삼차의료기관으로 나뉜다. 일차의료기관은 의원, 보건소, 보건지소, 치과의원, 한의원 등으로 이러한 기관의 임무는 대상인구의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에 있다. 또한 가장 기초적인 병에 대한 진료를 행한다. 이차의료기관은 단순한 질병 및 단기간의 입원이나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고 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등이 이에 해당된다. 삼차의료기관은 종합병원, 대학병원으로 장기간의 입원이나 요양을 필요로 하거나 희귀한 질병에 대한 집중치료가 가능한 곳으로 연구 및 교육의 업무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의료기관의 이러한 업무분담이 잘 이루어져야 의료비도 절감되고 의료인력과 재원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판단한다.

8)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병원을 찾아와 치료나 처방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이 방문하는 곳, 이곳에서 간단한 상담, 처치, 처방이 이루어지고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병동으로 이동해서 입원치료를 받게 된다.

9)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나면 무슨 무슨과 전문의가 되는데 최근에는 전문의가 되어서도 그 전문분야의 또 더 세분화된 전문과정(Sub - special)을 수료해야 하는 과가 늘어나고 있다. 심장내과, 소화기 내과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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