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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
인도-파키스탄 충돌과 핵 악몽

6월 13일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인도와 파키스탄을 잇따라 방문한 뒤 “양국 지도자들이 핵 보유국 책임에 걸맞게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핵 대결 위기는 넘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럼즈펠드가 그 말을 한 다음 날인 14일 밤부터 15일 새벽까지 다시 포격전이 벌어졌다. 적어도 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카슈미르에서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카슈미르를 인도령과 파키스탄령으로 나누는 ‘통제선’에 1백만 명이 넘는 양국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래식 제한전조차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핵전쟁이 벌어지면 9백만∼1천2백만 명이 즉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인도 국방장관은 “파키스탄이 핵전쟁을 시작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보복할 것이고 두 나라 모두 멸망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군 장성들도 대통령 무샤라프에게 한치도 물러서지 말라고 요구했다.

인도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충실히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작년 12월 인도 국회 의사당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인도 총리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는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흉내냈다. 그는 파키스탄을 테러 국가로 지목하고 파키스탄과 벌일 전쟁을 정당화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5월 14일 이슬람주의 게릴라들이 인도 군 기지를 공격해 30여 명을 살해한 사건이 파키스탄 정부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바지파이는 이참에 전쟁을 해서 카슈미르를 완전히 장악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바지파이는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을 본떠 파키스탄의 모든 양보 조치를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계속 거부했다. 금년 말에 치를 선거 전에 카슈미르에 있는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을 완전히 뿌리뽑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작년 9·11 사태 뒤 한층 가까워진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를 다시 멀어지게 만들고 싶어한다.

한편, 3년 전에 쿠데타로 집권한 파키스탄 대통령 무샤라프는 인도에 양보하다가는 군부의 반발을 사 자리에서 쫓겨날까 봐 두려워한다. 무샤라프는 9·11 뒤 미국편에 붙어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거들었다. 작년 12월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자 파키스탄 군부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 파키스탄 군부는 이슬람주의 전사들을 카슈미르로 보냈다. 그 전에도 파키스탄 군부는 카슈미르에 있는 이슬람주의 조직들과 다양한 연계를 맺고 있었다. 카슈미르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인도 국방장관이 “공멸”을 언급한 바로 그 날, 조지 W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선제 공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11 뒤에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지난 1월 영국 관리들은 인도·파키스탄과 무기 수출 협상을 벌였다. 지금도 인도에 호크 전투기 66대를 공급하는 10억 파운드(약 1조 8천억 원) 상당의 거래를 성사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을 ‘중재’한 러시아의 푸틴은 인도의 “차세대 무기 개발 계획”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주도하는 전쟁몰이는 과거에 세 번이나 전쟁을 벌인 인도와 파키스탄을 더욱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인도·파키스탄 분쟁 한복판에는 카슈미르 문제가 있다.

1947년 영국 지배에서 독립한 인도는 배신과 협박을 일삼으며 무슬림이 대다수인 잠무 카슈미르 지역을 차지했다. 인도는 카슈미르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철권 통치를 유지했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에서 패배한 인도는 중국이 인도를 침공하는 길목이 될 카슈미르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인도의 강권 통치 때문에 카슈미르에서 지난 10년 동안에만 약 8만 명이 죽었다. 죽은 사람들은 대다수가 무슬림이었다.

한편, 국가의 존립 근거를 무슬림 보호에서 찾는 파키스탄도 잠무 카슈미르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잔혹한 탄압 통치에 시달리는 무슬림들의 해방을 카슈미르 병합 구실로 이용한다.

그러나 지금 파키스탄이 통치하는 아자드 카슈미르는 완전히 비민주적인 사회다. 아자드 카슈미르는 카슈미르 사람들이 아니라 파키스탄 중앙 정부가 임명한 자들이 통치한다. 그래서 1989년 카슈미르에서 인도 지배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을 때 일부 카슈미르 사람들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슈미르에 있는 친파키스탄 이슬람주의 게릴라들은 1993년 8월 버스 승객 16명을 총살해 고립을 자초했다. 1989년 이래로 평범한 카슈미르 사람들은 친파키스탄 게릴라 전사들의 총이든 인도 보안군의 총이든, 총의 공포 속에서 살아 왔다.

카슈미르 민중에게 유일한 진보적인 대안은 힌두교도와 무슬림, 인도 국민과 파키스탄 국민 사이의 우애와 단결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지배 계급 중 한편을 지지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연표

1846년 영국의 동인도회사, 카슈미르 지배권을 인도의 토후에게 판매. 1947년 8월 영국의 인도 지배 종식.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힌두·무슬림 유혈 분쟁으로 약 1백만 명 사망.
1947년 10월 제1차 인·파 전쟁 발발. 카슈미르 분할, 인도가 3분의 2 차지.
1962년 10월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에서 인도 패배. 중국, 카슈미르 일부 지역 점령 지배.
1965년 9월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침공. 제2차 인·파 전쟁.
1971년 12월 제3차 인·파 전쟁. 동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
1974년 5월 인도의 첫번째 핵실험.
1979년 12월 소련, 아프가니스탄 침공. 미국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훈련·양성. 1989년 7월 소련군,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 카슈미르에서 인도 지배에 반대하는 봉기 발생. 1998년 5월 인도, 다섯 차례 핵실험. 파키스탄 여섯 차례 핵실험.
1999년 6월 인·파 긴장 재발로 전면전 위기.
1999년 10월 무샤라프, 군사 쿠데타로 집권.
2001년 9월 9·11 테러 사태 발생.
2001년 10월 미국, 아프가니스탄 공습.
2001년 12월 탈레반 항복. 인도 의사당 테러 사태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