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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유동성의 위기인가, 세계대공황의 전조인가?

정성진 교수는 많은 경제 평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발 세계 신용 경색이 끝나지 않았고 더 큰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서 촉발된 세계 신용경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유럽중앙은행 등의 3천억 달러에 달하는 긴급 자금투입으로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연준은 지난주 금요일(8월 17일) 재할인율을 6.25퍼센트에서 5.75퍼센트로 인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증시와 유럽 증시는 급반등하며 전날까지의 급락분을 대부분 만회했으며, 어제(8월 20일) 우리 나라 증시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도 폭등했다.

그러자 많은 경제 평론가들은 이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발(發) 세계 신용위기는 이미 끝났다고 주장한다. 혹은, 아직 끝나지 않았더라도, 이것이 미국 실물경제의 위기나 세계경제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낙관론의 근거로 이른바 미국 경제의 펀더멘틀의 견실, 21세기 들어 미국경제의 상대적 비중 저하, 이른바 세계경제와 미국 경제의 ‘분리’(decoupling) 등을 내세운다.

아울러, 이번에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신속한 개입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국가의 불황 대처 능력이 최근 들어 향상됐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가 대공황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세계 실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세기 말 이후 BRICs(브릭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등의 부상에 따라 저하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21세기 세계경제는 여전히 미국을 중심으로 연동돼 작동하고 있다.

이는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라는 매우 일국적이며 국지적 사안이 곧바로 유럽과 아시아 증시 폭락으로 확산된 사실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거품

또, 지난 2001년 불황 이후 미국 경제의 호황은 펀더멘틀의 호전이 아니라, 군비지출 증가와 주택 가격 거품에 기초한 소비 지출 증가 덕분이었다.

펀더멘틀의 견실성 정도는 실물경제의 이윤율 추이로 가장 정확하게 측정될 수 있는데, 최근 미국 실물경제(비금융법인부문)의 이윤율은 2004년 9.77퍼센트를 정점으로 2005년 9.68퍼센트로 저하했으며, 2006년에도 9.68퍼센트였다. 이처럼 이윤율은 저하하는데, 다우존스 지수는 2004년 10,783에서 2006년 12,463으로 무려 15퍼센트 이상 급등했다.

또, 실러(R. Shiller)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평균 수익을 기준으로 계산한 미국의 주가수익비율(P/E)은 2007년 현재 무려 27 수준으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이는 최근 미국 주가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으며, 이번 주가의 반등이 오래 지속되기 힘들 것임을 보여 준다.

한편 미국의 주택 가격은 1995년 이후 70퍼센트 이상 상승했지만, 작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이미 10퍼센트 가까이 저하했다. 이는 닷컴 주가 거품 붕괴로 촉발된 2001년 불황 이후 미국 경제의 회복을 주도해 온 주택 가격 거품도 이제 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미국 주택 가격 거품의 붕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세계 신용경색을 야기하는 데서 더 나아가, 미국과 세계 실물 경제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베이커(D. Baker)에 따르면, 미국에서 주택 가격 거품의 붕괴는 주택 건설 수요의 위축, ‘마이너스 자산 효과’에 기인한 소비 수요 위축을 통해서 향후 미국경제의 GDP 성장률을 약 3.1~7퍼센트 저하시킬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와 같은 미국의 소비 수요의 위축과 불황은 우리 나라와 중국처럼 대미 수출이 성장의 주요 엔진인 나라들의 수출 수요를 감소시켜, 세계적 규모에서 실물 경제 위기로 파급될 것이다.

지난주 말 연준의 재할인율 인하 이후 세계 증시가 급반등했음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발 세계 신용경색이 극복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선, 지금까지 드러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규모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예컨대 오는 10월경까지 약 1천억 달러 상당의 변동금리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금리 재조정, 즉 금리 인상이 예정돼 있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 세기 말 이후 금융규제 완화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MBS(모기지담보부 증권), CDO(부채담보부 증권),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등 각종 파생금융상품과 헤지펀드·사모펀드·투자은행 등 거대한 투기적 국제 금융 자본이 준동하면서,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과 불투명성이 증대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손실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윤율 저하

무엇보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단지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이윤율 저하의 위기, 지급불능의 위기에서 비롯된 위기이기 때문에, 이번 연준의 재할인율 인하와 같은 긴급 유동성 공급은 임시변통책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는 오히려 헤지펀드 등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증대시키고, 거품을 더 부풀려서, 위기의 뿌리를 더 키울 뿐이다.

오늘날 거시경제 변동을 예측하고 대처하는 데서 자본주의 국가가 얼마나 무능한지는 연준 의장 버냉키가 이번 사태가 나기 불과 두 달 전에도 “서브프라임 시장의 불똥이 다른 경제 부문 혹은 금융체제로 튈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장담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는 일단 불황이 터지면, 자본을 구제하거나 구조조정하고, 이에 수반되는 비용과 고통을 민중에 떠넘기는 데는 매우 유능하다.

이번에 연준이 긴급자금 방출, 혹은 재할인율 인하를 통해 자금을 지원한 대상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로 인해 주택을 압류당한 서민들이 아니라,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와 이들의 모기지 대출을 담보로 그 백 배 가 넘는 액수의 각종 고수익 파생금융상품들(MBS, CDO, ABCP 등)을 발행·거래한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이었다.

연준은 이번 재할인율 인하 조처에서 은행들이 MBS를 담보로 세울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이 조작해 냈고 이번 위기에서 휴지조각으로 될 운명에 처한 가공자본을 실제 유동성으로 인정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같은 자본 지원을 통한 자본주의 국가의 위기 타개책에 노동자 계급은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자본 지원은, 그것이 긴급자금 방출 방식이든 재할인율 인하나 금리 인하 방식이든, 그 재원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거품이 터지고 공황이 폭발하는 것을 노동자 계급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신용 경색이나 금융 위기가 실물경제의 불황이나 공황으로 폭발하지 않고, 자본주의 국가 개입과 구제금융에 의해 또 다른 거품으로 변형되고, 헤지펀드 등이 구제되고, 그 부담이 다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초과착취로 전가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거품이 빨리 터지고 공황이 폭발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오히려 공황은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합리적인 체제이고 왜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량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사회주의에 의해 근본적으로 대체돼야만 하는지를 현실에서 입증하는 기회로 활용돼야 한다.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기인한 이윤율 저하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난 세기말 이후 화폐와 주택의 상품화를 중심으로 한 금융화가 야기한 주가 거품과 주택 가격 거품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헤지펀드·사모펀드 등 투기적 국제금융자본은 이와 같은 금융 거품을 주기적으로 팽창시키고 또 폭발시키면서, 세계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잉여가치를 빨아들여, 이제는 말 그대로 ‘금융 괴물’이 됐다.

따라서 공황기 노동자 계급의 이행기 요구에는 구조조정 반대, 해고 반대와 같은 생존권 요구와 함께, 화폐와 주택의 탈상품화와 ‘금융 괴물’의 해체 요구도 포함돼야 한다.

정성진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등의 저서가 있다. 또, 《반자본주의 선언》,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의 역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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