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14세기에 유럽 등지의 봉건제 내에서 처음 등장했다. 일련의 오랜 투쟁·혁명·전쟁을 거친 후 19세기 초 유럽에서 자본주의는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 확립됐다.

바로 이때 자본주의의 구조와 운동 법칙을 포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 칼 마르크스였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마르크스 시대의 자본주의를 비교해 보면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안 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자본주의의 작동 규모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시작한 1840년대에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지배적인 생산양식이었을지 모르지만, 선진 공업 형태의 자본주의는 여전히 영국·네덜란드·벨기에와 프랑스·독일의 일부 지역 등 북서 유럽 귀퉁이에 국한돼 있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정말로 전 세계를 지배한다.

자본주의는 무역과 특히, 무력을 통해 이미 오래 전에 거의 모든 곳에 ‘이르러’ 영향을 미쳤지만, 오늘날 지구상에서 재화의 대부분이 자본주의적 토대에서 생산되지 않는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1848년에 이른바 “세계의 공장”이었던 영국은 가장 유력한 경쟁 상대였던 프랑스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경제 강국이었다. 19세기 말쯤 독일이 프랑스를 앞질렀고 미국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분명히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앞질렀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의 지배력은 훨씬 더 확고해졌고, 미국에 맞설 만한 경쟁 상대는 소련 국가자본주의뿐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은 여전하다. 군사적 지배력도 그렇다. 그러나 미국이 비록 냉전에서 승리했음에도 그 경제적 주도력은 많이 약해졌다. 1950~60년대에 독일과 일본의 “경제 기적”은 미국을 압박했고, 지금은 중국이 새로운 도전자로 떠오를 뿐 아니라 인도도 크게 도약하고 있다.

귀퉁이

게다가 한국과 브라질처럼 중요하고 독립적인 자본 축적의 중심들이 세계 곳곳에서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전 세계를 더 완벽하게 ‘메웠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다극적이다.

이런 지리적 확산과 더불어 주요 자본주의 기업들 ― 엑손모빌·월마트·도요타·삼성 ― 의 규모와 범위도 엄청나게 증대했다. 다시 말해, 자본의 집중과 세계 경제 통합의 정도가 엄청나게 증대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원료와 공산품의 국제 운송과 판매가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뜻이 아니라 개별 상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국제적 과정이 됐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성장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나 1970~80년대의 국제적 경기 후퇴 같은 심각한 국제적 위기들, 특정 나라나 지역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규모의 혼란들이 있었다.

국가의 경제적 구실도 대체로 증대했지만, 그 과정 또한 아주 불균등했다. 197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시작되고 1989~91년에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래로 국가의 구실은 히틀러·스탈린·로즈벨트·케인스의 시대보다 분명히 쇠퇴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예측하거나 원하는 만큼 쇠퇴한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대중의 평균 생활수준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른바 서방의 선진 공업국들에서 그랬고, 그 뒤에는 상당수의 신흥 공업국들에서도 그랬다.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생활수준 통계 수치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각국의 평균수명은 대강의 그림을 보여 준다.

1850년에 미국 백인 남성의 평균수명은 38세였고 백인 여성은 40세였다. 2001년에 미국 백인 남성의 평균수명은 75세, 여성은 80세로 늘었다. 캐나다·스웨덴·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나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지만 이 국가들의 현재 평균수명은 미국보다 높다. 멕시코·브라질·폴란드와 심지어 중국 사람들의 평균수명도 이제는 70세를 넘어섰다.

연속성

이런 변화를 피상적·일면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의 성공 신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변한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다.

첫째, 근본적인 사회적 생산관계가 변하지 않았다. 주요 생산력은 여전히 극소수가 소유·통제하고 있다. 그들은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을 바탕으로 자기들끼리 서로 경쟁한다. 직접 생산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노동[과정]과 노동 생산물에서 소외돼 있다.

그들이 생산하는 세계는 그들 자신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이다. 사회는 적대적인 계급들 ―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 로 분열돼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정반대다.

둘째, 체제의 근본적 동역학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중국이나 산업혁명기의 영국이나 체제의 근본적 동역학은 똑같다. 즉,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이 먼저인 자본 축적 드라이브가 그것이다.

이런 근저의 연속성 때문에, 앞서 말한 자본주의의 변화들은 모두 어둡거나 부정적인 측면을 간직하고 있다.

생활수준의 향상이 실질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엄청나게 불균등한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평균수명을 다시 거론하자면, 앙골라가 37세, 모잠비크가 40세, 남아프리카공화국이 42.5세이다.

위협

또, 국가간 불평등과 국내의 불평등이 모두 심화하고 있다. 1980년 미국에서 기업 최고경영자의 보수는 생산직 노동자보다 42배 많았다. 2000년에는 5백25배나 많아졌다! 1998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보고서를 보면, 세계 최고 부자 2백25명의 재산을 모두 합친 금액 1조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25억 명의 연간 소득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었다. 또, 세계 최고 갑부 세 명의 재산이 48개 최빈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자본주의가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의 파괴적 경향도 그만큼 증대했다. 전쟁과 대량 학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단연 최고였다. 그리고 오늘날 인류의 생존에 대한 위협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졌다.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중국이 미국의 지위를 잠재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강국으로 부상하자) 군사력의 사용과 위협 경향이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증대했다.

여기에다,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를 통해 환경과 인류의 미래에 가하는 파괴적 위협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정확히 예측했듯이, 자본주의의 국제적 ‘승리’처럼 보이는 것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 즉 국제 노동계급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지리적으로도 확산되고(한국에서 남미까지) 점차 성장하는 거대 도시들(캘커타에서 카이로까지)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 (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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