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미국의 일방주의적 독선

미국의 일방주의적 독선

사라 장(미국 시카고 지역 반전위원회 활동가)

2002년 4월 11일 유엔은 새로운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졌다. 새로운 국제형사재판소는 인류에 대한 범죄, 예를 들면 전쟁 범죄나 인종 학살 등을 저지른 개인을 심판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148개국 대표들이 참여한 로마 회의에서 이 안은 다수가 지지해 통과됐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여러 해 동안 진행된 논의 끝에 세워졌고, 형사재판소를 비준한 나라의 판사들로 구성될 것이다.

많은 인권 단체 운동가들은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환영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이 기구 설립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리고 2002년 7월부터 시행될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미국 국민에 대한 절대적인 소추 면책권을 요구했다. 부시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미국이 보스니아에 파견한 평화유지군을 모두 철수하겠다고 협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 리처드 윌리암슨은 미국의 평화유지군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모든 미군을 철수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보인 이런 반응에 대해 유럽 국가들 대다수가 비판적인 시각을 표명했다. 심지어 미국이 벌이는 대 테러 전쟁의 파트너인 영국, 프랑스 등의 주요 신문들도 미국이 국제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 세계 언론의 강한 공격과 비판을 받자 미국은 요구를 조금 낮춰 국제형사재판소를 비준하지 않는 국가의 평화유지군에 대해 12개월 동안 법 집행을 유예할 것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반대하지 않는 한 매년 유예 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처음에 요구한 완전한 소추 면책권과 그 내용에서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를 비준하기 전까지는 어느 미국인도 국제형사재판에 회부할 수 없다. 또, 국제형사재판소는 2002년 7월 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재판권이 없다.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를 반대하는 의도는 앞으로도 자신들이 저지른 “국제 범죄”를 계속 저지르겠다는 것이다.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필리핀, 그루지야, 예멘에 투입됐다. 또, 원래 주둔하던 유고슬라비아와 콜롬비아에서 군사 행동을 더욱 강화했다. 미국 지도자들은 약소국들을 상대로 벌이는 미국의 군사 행동이 전쟁 범죄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년 11월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의 마자르 이 샤리프에서 탈레반 포로 수백 명을 학살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특수부대는 죄수들이 갇혀있는 건물에 헬리콥터 기관총을 난사하고 폭탄을 투하했다. 이 행위는 당연히 국제적 심판을 받을 만한 만행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2002년 6월까지 66개국이 비준해 공식적으로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는 2002년 7월 1일 이후 벌어진 모든 전쟁 범죄에 대해 사법권을 행사한다.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날 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마을을 폭격했다. 마을 결혼식에 참석한 아프가니스탄인 여성과 어린이들 대다수가 살해당했다.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를 달가와 하지 않는 이유는 아프가니스탄, 보스니아, 코소보 등에서 벌어진 미군의 만행 말고도 미국이 준비중인 대 이라크 전쟁 때문이다.

1990년대 초에 벌어진 이라크전은 20세기 미 제국주의가 자행한 피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사례 중 하나다. 걸프전 당시 미국은 이라크 민간인 수만 명을 학살했고, 그 뒤 10여 년 동안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경제제재는 매달 5백 명이 넘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미국은 최근 다시 대 이라크 전쟁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대 테러 전쟁”의 연장으로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는 7월 8일 백악관 연설을 통해 “독재 정권”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 어떤 방법도 불사하겠다고 다시 한 번 전쟁 의지를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 전쟁을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스마트 폭탄”을 준비해 놓았다. 펜타곤의 전쟁 계획은 〈뉴욕타임스〉가 밝혔듯이 적어도 25만 명의 지상군과 수백 대의 전투기가 대 이라크전에 사용될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은 공습 목표물에 군사 시설뿐 아니라 민간 시설도 포함시켰다. 미국이 국제법을 거부한 역사는 최근만이 아니다. 국제형사재판소 전에도 제2차세계대전 뒤에 주권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처리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가 있었다. 1980년대 미국이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 좌파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중앙정보국(CIA)을 앞세워 벌인 “콘트라” 작전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가 유죄 선고를 내리자 레이건 행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를 거부했다.

물론, 미국이 이런 국제 기구를 항상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국제 기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클린턴 정부는 두 차례의 발칸 전쟁에서 미군과 나토 연합군이 세르비아 지역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 만행을 덮어 버리려고 새로 구성된 유고 정부에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자신의 오랜 파트너이던 밀로셰비치를 납치해 국제 재판에 회부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완전한 소추 면책권 요구에 강하게 반발하며 마치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양 행세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해 다국상호개입주의를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유럽 강대국들의 반발은 결국 지금까지 미국이 단독으로 결정해 온 공격 표적을 자신들도 같이 고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직접 참여한 영국과 그 전쟁을 지지한 프랑스·독일 등 유럽 강국들이 미국에 일관되게 반대할 리 없다. 벌써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이 내놓은 타협책 ― 1년간 형사 소추 면제 ― 을 덥썩 물었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기 위해 국제형사재판소를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아래로부터 조직된 행동이 국제형사재판소를 무력화하려는 미 제국주의에 맞선 가장 효과적인 투쟁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