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인 대통합민주신당

대통합민주신당의 상황은 ‘백약이 무효’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배신과 그로 말미암은 대중의 불신과 환멸 탓에 대통합민주신당은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 정동영이 그나마 살아남으려면 노무현 정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 인기 없는 정부와 선을 그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동영이 최근에 파병 재연장 반대 입장 표명 등 ‘좌측 깜빡이등’을 켜는 까닭이다. 그러나 정동영은 열우당 지도부 시절에 파병 찬성 당론을 주도한 바 있고 지금도 여론이 파병 찬성으로 기울면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믿을 수 없는 자다.

또, 당내 입지가 취약해 내심 노무현의 지지를 얻고 싶어한다. 그런 만큼 노무현과 차별성 긋기도 일관되지 못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이 그나마 걸고 있는 유일한 ‘희망’은 범여권 후보단일화인 듯하다. 한나라당 집권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 말고는 범여권으로서는 달리 기댈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단일화를 향한 과정도 험난하겠지만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단일화한다고 해서 큰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이명박의 독주는 범여권의 분열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와 여권)의 무능과 실정 때문이다. 그러니 범여권이 ‘헤쳐 모여’ 한다고 해서 대중의 불신이 해소될 리 없다.
범여권 성향 교수들 27명으로 구성된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은 후보단일화 대상에 민주노동당까지 포함했다. 민주노동당한테 대선에 독자 출마하지 말라고 요구한 셈이다. 민주노동당이 독자 출마하면 “진보개혁” 성향의 표를 분산해 이명박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이면에 깔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도운 것은 노무현 정부와 여권이다. 지난 5년 동안 노무현 정부와 여권은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정책들을 펴 왔다 ―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지지, 한미FTA 추진과 비정규직 확대 등 신자유주의 ‘개혁’, 국가보안법 존속 등. 이런 노무현 정부의 ‘반개혁’ 정책들이 2004년 탄핵 후폭풍으로 코너에 몰렸던 한나라당을 소생시켰다.

또, 민주노동당이라는 선택이 없다면 그 표가 모두 범여권으로 갈 것이라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 진보적 대안이 없다면 역겨운 개혁사기꾼들에게 투표하기보다 아예 투표에 불참할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다.

한편,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은 민주노동당 강화와 한나라당 집권 저지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때문에 딜레마를 겪는 듯하다. 전자를 강조하면 후자의 목표를, 후자를 강조하면 전자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하더라도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 당선 가능한 비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4 남북 공동선언 이후 이런 주장이 부쩍 늘고 있는 듯하다.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는 아예 “반한나라당 3자연대”를 주장했다. “계급적 관점에서 본다면 개혁세력은 민노당과 재야 세력뿐”이지만 “수구반동으로의 회귀 저지”라는 “역사적 소명”을 위해 (연립정부를 전제로) ‘권영길-문국현-정동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실상 2007년판 ‘비판적 지지’인 셈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한나라당이 정권 탈환을 향해 내달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준 것은 노무현과 범여권이다. 그러므로 진보진영은 한나라당과 범여권 모두에 반대해야 한다.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한나라당

반노무현 정서의 오른쪽 수혜자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다. 그러나 이명박의 앞날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지지자 3명 중 1명이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이명박 지지자들 중 이명박의 도덕성과 관련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면 지지를 바꾸겠다는 사람이 45.1퍼센트다.

최근 잦은 이명박의 실수들이 결정적 사건과 만난다면 그의 지지율이 급강하할 수 있다는 뜻이다. 5년 전 이회창이 아들 병역 비리로 결정타를 맞았듯이, BBK 비리 등이 이명박을 고꾸라뜨릴 수도 있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한나라당도 불안해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유력 후보 유고시 선거일을 연기할 수 있도록 정치관계법을 개정하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회창 출마 논란이야말로 한나라당 일각의 불안감을 보여 주는 분명한 사례다. 이명박이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자신들을 홀대했다는 일부 보수층의 불신(특히, 대북 문제에서)과 불안(이명박의 비리 문제로 인한)이 이회창의 출마를 자극했다. 이회창이 12월 19일까지 완주할지는 불확실하지만, 정치 상황이 몹시 유동적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일부 사람들은 이명박의 높은 지지율이 “국민의식의 보수화 현상”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이것은 일면적 인식이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적 신자유주의 공세 중 하나인 비정규직 확산은 커다란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뉴코아·이랜드 노동자 투쟁은 높은 대중적 공감을 얻고 있다.
한미FTA도 노무현 정부 임기 내에 국회에서 비준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미FTA를 찬성하는 주류 정당의 대선 후보들도 이 문제가 선거에서 쟁점이 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반전 여론도 건재하다. 여론의 다수가 한국군 철수를 요구한다. 그래서 노무현은 생중계 방송을 통해 파병 재연장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야 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위기는 두 가지 상반된 그림을 만들어 냈다 ― 사회 상층부의 ‘수구화’ 경향 재촉과 아래로부터의 혼란스러운 급진화. 이명박은 전자의 발전을 대변하고 있다.

이렇게 정치적 양극화가 첨예하게 진행될 때에는 정치적 휘발성도 강해진다. 이런 시기에는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수시로 등장했다 사라질 수 있다. 이명박의 승리를 아직까지 확정적으로 볼 수 없는 까닭이다.


범여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는 문국현

문국현이 범여권의 지리멸렬 속에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주류 정치의 위기를 틈타 제3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서로 다를 바 없는 정동영과 이명박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을 거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국현은 진보의 핵심 잣대라고 할 수 있는 한미FTA·파병·국가보안법·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범여권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모호하다.

● “WTO 하에서 FTA는 당연한 순리”
● “전투병만 아니라면 [한국군 해외 파병도 괜찮다]”
● “[국가보안법은] 북미수교라는 빅뱅으로 … 통 크게 해결될 수 있을 것”
● 비정규직 법안의 개정을 주장하나 포항건설노조와 하중근 열사에 대해 “포스코가 직접 고용한 사람들은 아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진정성이 의심된다.

또, 그는 1백37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다. 문국현이 거액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진정한 문제는, “서민처럼 보이지” 않겠다는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가 자신의 자본가적 계급 배경을 고수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약자를 배려하는 건 좋으나 기업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문국현 전 사장의 시대정신은 기업가의 시대정신일 뿐”(권영길 선대위)이다.

종합해 보건대, 문국현은 민주노동당이 지난 6월 중앙위에서 결정한 바 있는 진보대연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국현의 ‘가치’와 민주노동당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국현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온정주의’라 할 수 있다. 그에게 노동자와 피억압자는 은전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가 지금까지 노동자와 피억압자의 운동에 대해 아무 말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피억압자의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일각에서는 문국현의 지지층이 당의 지지층과 겹친다는 점 때문에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 권영길 후보가 문국현에게 만남을 제안한 것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두 당이 ‘가치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미국 노동조합원들 중 상당수가 민주당을 찍는다고 해서 미국의 진보진영이 미국 제국주의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민주당과 ‘가치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왜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객관적 환경이 민주노동당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양당 구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겨났다. 또, 주요 사회 의제들(파병, 비정규직, 한미FTA 등)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당 지지율을 크게 상회하는 대중적 공감을 얻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대중 정서가 민주노동당 지지로 충분히 모이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 정체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상당수 개혁 염원 대중의 눈에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가망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이 핵심 원인이다. 부분적으로는 10·4 남북 공동선언의 효과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그로기 상태에 있던 노무현의 지지율이 반짝 올라갔다.

권영길 후보의 ‘범국민행동의날’ 조직을 위한 ‘만인보’는 이를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대중 행동을 건설하며 반신자유주의와 반전 쟁점을 최대한 부각해서 대선 국면에서 주류 정치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밖 좌파단체들 중 다수는 문성현 당 대표가 한국노총 지도부에 사과한 것을 문제삼아 민주노동당 지지를 거부하는 것 같다.(당 일각에서는 대선 운동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합리화하는 구실이 된 것 같다)

문 대표의 사과는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단순히 기권할 것인가? 이번 대선에서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는 정당은 명백히 민주노동당이다.

또, 선거는 계급 투쟁이 벌어지는 결정적 장소는 아니지만 계급 투쟁을 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계급 이익의 충돌이 선거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의 몇 백만 선진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런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에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 후보에 투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획득한 표는 주류 정당들에 대한 좌파적 반대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시위하는 효과를 낼 것이고, 다음에 운동을 건설할 때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