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말 한국 자본주의가 외환위기를 겪은 지 10년이 지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난 10년간 구조조정 명분 아래 진행된 급격한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회가 돼 버렸다.

1997년 경제위기는 1993년부터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패한 결과였다. 1990년대 초반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침체에 따라 이윤율이 급격히 하락한 한국 재벌들은 이자 비용을 지불하기에도 버거운 상태에 빠졌고, 김영삼 정부는 재벌들을 위해 소위 ‘세계화 전략’을 펼친다. 하지만 ‘세계화 전략’은 그 명칭과는 달리 대외지향적인 정책만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본질은 산업구조의 재편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재벌 규제를 완화해 재벌들이 기존 주력 업종을 넘어 비주력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줬다. 위기에 빠져있던 재벌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것이었다. 그런 확장의 대표적인 예가 한보철강, 삼성자동차, 인천제철 등이었다. 사실, 문어발식 확장은 한국 경제의 주력 업종인 자동차·철강·석유화학·반도체·조선 등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산업부문에서 일어났다. 이들 업종은 당시 세계적 차원에서 과잉생산 문제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문어발식 확장은 국내외 경쟁을 가속화했다.

다른 한편 김영삼 정부는 금융시장도 개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OECD 가입과 미국의 금융시장 개방 압력을 배경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자본을 싼 이자율로 차입할 수 있기를 원했던 재벌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기도 했다. 한국 재벌과 금융기관들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해외자본을 차입할 수 있도록 1997년경까지 단계적으로 규제를 완화한 것이었다.

세계화 전략

세계화 전략의 결과는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 한국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라 GDP의 40퍼센트에 육박하는 무리한 투자 붐이 일어났다. 그런 과잉투자의 결과는 1997년 초 한보철강 부도에서 시작된 재벌들의 연쇄 부도였다. 다른 한편 금융시장을 개방한 결과 과중한 단기외채가 누적됐다. 1997년 말 1천5백억 달러의 민간외채 중 1천억 달러 정도가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외채였다.

단기외채의 과중한 누적은 한국경제를 대외적 충격에 매우 취약하게 만들었다. 결국 1997년 중반 태국에서 시작된 동남아시아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해외 금융기관들이 한국 금융기관들의 차입에 대한 만기연장을 거부했고, 한국은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1997년 경제위기 당시에는 위기의 원인이 김영삼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과 그에 편승한 재벌들의 과잉투자와 금융기관들의 무리한 해외차입 때문이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지나친 규제에 따른 효율성 저하가 위기의 원인인 것처럼 왜곡됐다.

그 결과 재벌들의 과잉투자로 인한 부실은 구조조정 자금으로 구제받은 반면, IMF가 강요한 고이자율 정책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대규모 실업이 양산됐다. 당시에 시작된 정리해고 요건 완화와 비정규직 사용 확대, 파견근로제 등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용 불안정,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 문제, 청년 실업 등을 낳고 있다. 또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은 완전히 개방되고 자유화됐다. 특히 한국 주식시장은 투기장이 됐고 주요 은행과 기업 들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가 극도로 강화됐다. 

구조조정이 고용 불안정, 비정규직, 소득 불평등을 증가시켜 노동소득은 급격히 위축됐다. GDP 중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3.4퍼센트에서 2002년 58.2퍼센트로 급격히 감소했다. 노동소득의 상대적 감소는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GDP 중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980년 61.8퍼센트에서 2004년 50.4퍼센트로 감소해 미국과 영국 같은 신자유주의 본국(2004년에 각각 70.2퍼센트와 62.6퍼센트)보다 훨씬 낮아지게 됐다.

또한 민간소비 성장률은 2000~2004년 평균 GDP 4.9퍼센트에 훨씬 못 미치는 2.0퍼센트 정도로 급락한다. 특히 2003년 2/4분기부터 2004년 2/4분기까지 연속 5분기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극단적인 침체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소비 침체에 따라 1996~2000년 연평균 5퍼센트로 성장하던 설비투자도 2001~2004년 3/4분기에는 연평균 0.3퍼센트로 성장률이 급락하게 된다. 결국 IMF 구조조정은 내수 부진이라는 만성적인 위기 상황을 만들어 냈다.

부의 불평등도가 높아짐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했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빈자들의 소비 위축으로 내수가 부진하게 된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 유동자본이 형성됐다. 5백조 원 정도에 이르는 대규모 유동자본은 2000~2001년 IT붐의 붕괴 이후 주식시장에서 부동산으로 이동해 전국적 차원의 부동산 투기를 낳았다. 최근에는 부동산 시장의 상대적 위축에 따라 유동자본이 주식시장과 해외펀드 등으로 이동하면서 다시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또 다른 거시경제적 불안정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전방위적인 FTA 체결
 
한국경제는 이렇게 극심한 내수 부진에 시달리면서도 4~5퍼센트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중국의 호황과 유리한 환율에 기대 매년 15~20퍼센트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한 폭발적인 수출 증가 덕분이었다. 하지만 2005년 이후에 환율 하락의 영향으로 수출증가율이 10퍼센트 전후로 하락하면서, 만성적인 내수 부진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함께 점차 수출 부진이 다시 한국 경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양극화와 내수침체로 대변되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중단하고, 고용안정성 증대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통해 양극화를 해결하고 내수를 진작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겠다며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전혀 다른 정책을 추구했는데, 그것은 전방위적인 FTA 체결이었다.

한미FTA를 비롯해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FTA 정책의 목표는 IMF 구조조정이라는 외부적 충격에 의한 구조조정에 이은 또 하나의 ‘외부적’ 충격에 의한 구조조정일 뿐이다. 특히 한미FTA는 전기·가스·상하수도 부문의 공기업, 금융, 의료와 교육 등의 공공서비스 등 소위 ‘서비스 산업’ 전체를 민영화하고 구조조정해 서비스 산업을 재벌들이 지배하게 해 줌으로써, 다시 대내외적 위기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재벌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농업은 물론 국제적 경쟁력이 없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몰락하고, 인구 대다수가 극단적인 빈곤에 몰릴 것은 자명하다.

이제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도래한 듯하다. 자본의 세계적인 지배를 거부하고 막아내는 반세계화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반세계화 운동은 자본 자체를 넘어서는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